[앵커]
과거 부랑인들을 선도하겠다며 아무나 잡아다 강제로 가두고 학대했던 형제복지원 사건이 있었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또 하나의 형제복지원이 있는데, 바로 '덕성원'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 역시 구타와 강제노역, 성폭행에 시달렸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안지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부산 해운대에서 수십 년 간 운영됐던 '덕성원'.
원생들은 그곳을 '감옥'이라 불렀습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A씨/1990-2000년 수용 (입소 당시 10세) : 90년대에 (덕성원에) 들어갔는데 표현을 하자면 '울타리 없는 감옥'이라 저는 생각이 들어요.]
노역이 일상이었다는 원생들.
원장 일가를 위한 일에도 동원됐다고 합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B씨/1992-2000년 수용 (입소 당시 7세) : 저는 이사장님 방에서 일을 했어요. 오줌통 같은 거 비우고… 그냥 집안일을 했어요, 몸종처럼.]
[덕성원 보육원생 C씨/1989-2001년 수용 (입소 당시 8세 ) : (원장 일가가) PC방이 장사가 안되니깐 '무빙주'라고 동물원을 했어요. 월급이고 뭐고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돈을 안 주고 일만 시킨 거죠.]
원생들은 원장과 직원 뿐 아니라 가족들도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E씨/1991-2000년 수용 (입소 당시 7세) : 집합을 시켜요, 나무 창고로. 가면 형님들이 매달려요, 자루에. 그걸 저희 보고 보게 하거든요. 몽둥이로 진짜 막 미친 듯이 때려요.]
어떤 어른도 이들을 위해 나서지 않았습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A씨/1990-2000년 수용 (입소 당시 10세) : 그때 우리 옥상에서 한참 맞을 때 아파트 위에서 사람들이 보거든요. 다리 다 터지고 하니깐 옥상에서 매달려서 위를 봤는데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신고를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
보육원 내에서 성폭행이 이뤄졌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G씨/1979-1993년 수용 (입소 당시 5세) : 이 사람(원장 아들)이 왜 나한테 이런 짓 하지. 왜 피가 나지…]
[덕성원 보육원생 H씨/1979-1992년 수용 (입소 당시 5세) : 보육원이라는 데 이런 게(성폭행) 다 있구나. 부모들이 우리를 갖다버려서 이런 데로 왔으니깐 이런 데서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 돼…]
취재진이 입수한 1997년 당시 원생의 일기장입니다.
6학년이었던 원생은 매일 고된 작업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반복되는 하루'라는 10월 19일 일기에선 도서실에서 일과가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수님만 알 것"이라고 적어놨습니다.
검사를 피해 폭행을 암시한 대목입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I씨/1991~2000년 수용 (입소 당시 7세) : 그날이 마치고 집합이 있어서 그냥 맞고만 끝나는 건지…그런 의미로 썼던 거로 기억을 해요.]
이같은 정황은 수사기관 기록에도 남아있었습니다.
JTBC 취재진이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낸 부산 경찰 내사종결 보고서입니다.
1989년 당시 원장 김모 씨가 보육원생들을 수시로 폭행했다는 내용입니다.
원생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폭행하거나, 옷을 벗겨 구타했다는 등 아동 학대 사건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검경은 원장 말을 듣고 "교육상 필요할 때 매를 때린 사안"이라고 판단해 내사 종결 처리했습니다.
[임재성/변호사 (집단수용시설 피해자 법률지원) : 신체적으로 구타까지 한 상황이라면 이건 폭행을 넘어서 상해인데 게다가 미성년자 상해가 어떻게 내사 종결이 될 수 있어요. 당시 지역에서 그러한 시설을 운영했던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지위는 지역 유지예요. 영향력을 미친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앵커]
이렇게 나이 어린 원생들을 학대했던 덕성원, 당시 이곳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입장일지, 반성은 하고 있는지 저희 취재진이 추적해 봤습니다. 이들은 '증거가 있냐'고 되묻거나 '할 말이 없다'며 답을 피했습니다.
계속해서 안지현 기자입니다.
[기자]
덕성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3년 전 국가 진실화해 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보육원생 출신 안종환 씨.
[안종환/보육원생 (1982~1995년 수용·입소 당시 7세) : 마음속 응어리 있지 않습니까? 그게 안 없어지더라고요. 아무리 풀려고 해도… 남들이 겪지 못한 삶을 겪다 보니 너무 참담하고 비참한 일들이지요.]
보육원엔 정부보조금이 지급됐지만, 원생들은 배고팠던 기억뿐입니다.
종교를 앞세워 고기나 생선도 주지 않았습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B씨/1992-2000년 수용 (입소 당시 7세) : 고기 자체를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덕성원 보육원생 E씨/1991-2000년 수용 (입소 당시 7세) : 성경책에 보면 돼지고기랑 등푸른생선을 먹지 말라고 해서 그게 나와 있대요. 그래서 생선도 못 먹어 봤어요.]
하루 종일 일을 해야했던 토요일에는 학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덕성원 보육원생 B씨/1992-2000년 수용 (입소 당시 7세) : 원장 아들은 유학도 보내주고 막 그랬잖아요. (보육원생) 애들은 맞고 못 먹고 그런 게 전혀 마음 아프지 않았었는지… 이게 최선이었는지 그거를 정말 듣고 싶어요, 진짜.]
취재진은 안씨와 덕성보육원 일가가 현재는 이름을 바꿔 노인요양사업을 하고 있는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안종환/보육원생 (1982~1995년 수용·입소 당시 7세) : 법 없으면 죽이고 싶지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
덕성원 설립자의 딸이자, 현재 요양원의 대표이사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종환/보육원생 (1982~1995년 수용·입소 당시 7세) : 우리가 보호를 받아야 되는데 그곳에서 우리가 왜 일을 해야 됩니까? 왜 우리가 토요일에 학교를 못 가야 됩니까?]
[덕성원 설립자의 딸/현 노인요양원 대표이사 : 보육원은 옛날 사업이고 제가 받았을 때는 노인요양원 사업이었어요. 나는 그 상황을 들은 바도 없고 저 사람이 그렇게 주장하고 하는 거 저것도 누가 들었어요? 봤어요?]
원생들과 생활했던 덕성원 설립자의 손자는 답을 아예 거부했습니다.
[덕성원 설립자의 손자/현 노인요양원장 :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끊어졌어요.}]
[임재성/변호사 (집단수용시설 피해자 법률지원) : 사회복지단체는 당연히 국가의 관리 감독을 받아야죠. 일차적으로 당연히 그 시설을 운영했던 주체들의 책임이겠지만 관리 감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사실상 공범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다음 달 덕성원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작가 김나현 / VJ 이지환 / 영상디자인 조승우 / 영상자막 김형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