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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사도광산 전문가 "연구자 거의 없어 앞으로가 더 문제"

입력 2024-07-29 07:31 수정 2024-07-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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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됐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일본 정부와 협의를 통해 전시관 설치 등을 관철해 보다 진전됐다고 자평했습니다.


JTBC는 국내에서 사도광산을 가장 오래 연구해 온 전문가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정 대표는 지난 2015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산업유산 잠정 목록에 후보로 올라왔을 때 강제동원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방송 분량상 담지 못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출처 JTBC]

[출처 JTBC]

 

66곳 중 2곳 끝났을 뿐..."여전히 길고 어려운 싸움 남았다"


정 대표는 이번에 다소 진전을 보였다면서도 "여전히 길고 어려운 싸움이 남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07년 일본은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를 위해 경제산업성 주도하에 각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대화 산업 유산군 66개를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2015년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섬', 27일 등재된 사도광산이 모두 목록에 포함돼 있는데, 이 66곳 중 30여 곳이 한국인의 강제징용과 관계가 있는 장소들입니다. 앞으로도 적어도 수십년간 일본과 강제징용 기록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난 2015년 하시마섬 산업유산 등재 때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요.
 
2015년 당시에는 한국 쪽이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이런 일을 처리해 본 경험이 없었어요. 당시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을 한 게 아닌, 자의에 반해서 강제적으로 동원됐다는 '강제성'만 인정하게 하면 된다에 올인을 했어요. 정권에도 의지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단히 관심이 많아서 매일 지시도 내리고 체크하고 이랬죠.
 
게다가 당시에는 생존자가 있었지만, 이번 사도광산 건 같은 경우는 생존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어요. 광산에서 좋지 않은 환경에서 분진을 마셔 생긴 진폐증으로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2015년 중국이 난징 대학살 기록유산을 통과시킬 때 일본이 반발하면서, 유네스코 내부에 역사 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들의 당사 간 협의를 반드시 거치는 조건을 만들게 했죠. 그 때문에 오히려 이번에 한·일간 협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던 거예요. 몇 번이나 후보에서 탈락됐고, 우리와 협의를 피하기 위해서 시기를 전체가 아닌 에도 시대만으로 한정해서 다시 제출하는 '꼼수 등재' 논란도 일었던 거죠.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출력해서 담당국에 보냈고 그 내용을 근거로 제시해서 일부 반영된 걸로 알아요. 당시에 사도 광산에 1500명 정도가 강제 동원됐는데 제가 750명가량 이름을 찾아내서 공개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번에 협의를 통해 설치하기로 한 전시관. 사도광산과는 2km 떨어져 있다. [출처 JTBC]

이번에 협의를 통해 설치하기로 한 전시관. 사도광산과는 2km 떨어져 있다. [출처 JTBC]

 
이번 사도 광산 산업 유산 등재 결과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진전된 부분도 있지만 후퇴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2015년에는 큰 틀에서 '강제성을 기록한다'는 약속을 확보했다면, 이번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할 수 있게 된 점이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게 중요하겠지만 사도시 향토박물관에서 조선인 광부에 대한 전시를 하고, 조선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추도식을 하게 됐어요. 특히 숙소 중 한 곳에 강제동원된 곳이라고 하는 설명이 담긴 게시판을 세우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2015년에는 일본 쪽에서 현장마다 그런 시설을 만들기로 약속했는데 일반인은 갈 수 없는 곳에 설치가 됐거든요.
 
사실상 2015년 등재 당시 한 약속은 잘 지켜졌다고 보기 어렵군요.
 
그거는 약속을 잘 (안) 지킨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약속을 어긴 거죠. 2015년 7월 5일 유네스코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세계기구에서 전시 강제동원을 최초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돌아서서 당일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은 강제가 아니라 일하게 됐다는 자발적 노동의미”라고 부정하고, 5일 후 아베 신조 총리 전 총리는 “일본 대표단 성명에 포함된 forced to work는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징용된 경우도 있다는 의미”라며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곧바로 부정했죠. 쉽게 말해 노동자들이 강제로 동원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는 건, 그냥 (돈을 받고) 일을 하러 왔다는 의미예요. 당시에 일본이 내세운 논리는 연합군이나 중국인은 강제 동원을 일부 인정할 수 있지만 조선인은 식민지였으니까 강제적인 게 아니라는 거였죠.
 
[출처 JTBC]

[출처 JTBC]

 
두 번째로는 산업유산 현장마다 추도공간을 만들기로 했는데 지키지 않고 도쿄 정보센터라고 해서 우리로 치면 행안부 안에 있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고, 사전에 허가를 받아서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전시관을 만들어 놓았죠. 저도 못 들어가 봤어요. 명단을 먼저 제출해야 하는데 허가가 떨어지겠어요? 한국인 일반 관광객도 들어가면 옆에 해설사가 붙어서 "조선인과 일본인은 대단히 사이좋게 잘 지냈습니다"라고 설명해서 한국이 세계유산위원회에 계속 문제를 제기했죠. 2021년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당사국(일본)이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결정문을 통과시켰는데도 일본은 지금까지도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만 계속 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2015년 경우는 여러 가지 씁쓸한 교훈을 남겼죠.
 
[출처 JTBC]

[출처 JTBC]

 
이번에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독도 문제처럼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드는데요.
 
일단 하나는 일본을 과연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거죠. 유네스코 본회의에서 그 많은 회원국을 상대로 해서 2015년에 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지금 2024년에 한 약속도 지킨다는 보장이 있는가 하는 거죠. 2015년처럼, 당장 일본 정부의 높은 관료가 "그건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을 우리가 이야기하는 겁니다"라는 식의, 부정하는 프로세스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또 하나는 아주 구체적인 부분인데 이번에 한국 쪽에서 등재를 동의한 건 향토박물관에다 전시하고 게시문을 만들고 추도식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전시관의 게시물 게시판에 강제성의 부분이 들어가 있는가를 잘 봐야 해요. 그다음에 지금 전시를 하는 곳은 독립적인 조선인 강제동원에 관한 전시 공간이나 추도 공간이 아니에요. 사도시의 박물관에 다른 박물관 전시물 속에 이것이 일부 들어가는 거죠. 추도식을 하는 곳도 추도 공간이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총관사라는 일반 광부를 위한 공양탑에서 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러면 앞으로도 이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출처 JTBC]

[출처 JTBC]

 
유네스코를 설득하려면 사실과 자료를 축적해야 하는데, 해당 분야 연구자도, 지원도 거의 없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요.
 
일본에서도 사도 광산을 가지고 논문을 쓴 분은 딱 한 분밖에 없었어요. 히로세 테이조라는 분인데 그분이 2000년에 논문 한 편을 쓰고, 재작년에 사도광산 관련 논문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급서를 하셨어요. 이 논문인데, 사도 광산 등재 논의가 나오면서 우익들의 공격을 받고 압박을 받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아요. 이 분이 2000년에 논문을 내시고 한참 쉬셨다가 다시 논문을 재개를 한 이유가 바로 사도광산이 지금 같은 상태로 등재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강한 의지가 있으셨기 때문이에요. 코로나19 시기에 줌으로 발표를 하시면서 '강제성을 담아야 된다', '전체 역사를 기술해야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우익의 공격을 받게 되자 그러면 내가 더욱더 글로써 남겨야 된다라고 해서 돌아가시기 전에 쓴 이 논문도 50페이지가 넘어요. 한국에서는 사도광산 관련 논문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앞으로도 한·일 합의가 필요한 산업 유산이 30곳이 넘는다고 하셨는데,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구로베가와 댐, 아시오 동광산 같은 부지도 문제가 될 거로 보여요. 그런데 이 분야 조선인 강제동원에 관해 연구하는 논문이 한 편도 없고 연구자도 없어요. 유네스코를 설득하려면 사실과 자료의 힘이 필요해요. 그런데 1~2년 바짝 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후속 세대를 양성하고 연구에 집중해야 더 진전된 상태로 협의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지원이 없어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66개 지역 중에 강제동원 관련이 30개 정도 된다는 사실도 얼마 전 동북아역사재단이 밝혀낸 내용이에요.
 
또 2015년까지는 한국에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위원회)가 있었어요. 사실관계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면 전화를 받으면 바로 제출할 수 있는 전문 조직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위원회가 없어서 저 같은 개인 연구자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일본 측 담당자들이 2015년 당시에도 '강제동원위원회는 언제 없어지느냐'고 물어봤던 게 기억이 나요. 그만큼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기관이 일본 입장에선 불편했던 거예요.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에 1만 개가 넘는 전쟁 유적을 남겼는데, 한반도에도 8700곳 정도가 있어요. 이런 곳을 우리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출처 JTBC]

[출처 JTBC]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킬 게 뻔한데도 일본이 이 지역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건 관광지로의 개발이에요. 주관부처가 경제산업성이잖아요. 역사와 문화는 곧 돈이 된다, 경제가 된다는 거죠. 이 지역이 땅은 넓고 인구는 적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곳이라 경제 활성화를 꿈꾸는 거죠.
 
특히 니가타는 일본 내에서도 우익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이에요. 그래서 산업유산으로 등재가 되면 자국민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자주 언급했던 '아름다운 일본'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습니다.
 

군함도 전체가 세계유산? 사실 아니다

 
[출처 JTBC]

[출처 JTBC]

 
많은 분이 군함도(하시마섬) 전체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걸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탄광이 세계 유산이 아니고, 호안벽이라고 하는 작은 벽 하나만 등재가 됐어요. 그 벽이 아교를 가지고 돌을 이어 붙여 쌓았어요. 그래서 특수한 벽을 만드는 축조 기술이 인정된 거예요. 그런데 군함도를 가보면 들어가는 배 안에서부터 홍보 멘트가 나오는데 '군함도의 탄광이 블랙다이아몬드다. 석탄이 일본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를 이끈 효자다"라고 설명하면서 전체가 등재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근데 그것을 아는 일본 국민은 거의 없어요. 그것처럼 사도 광산의 경우에도 전체를 세계유산이라고 소개하면서 방대한 유적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자체적인 연구로 힘을 기르고, 이번처럼 외교력을 발휘해야 건강한 한일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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