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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기에 갇힌 대만해협…드러나는 중국 군사력 확장의 '표식' [화양연화]

입력 2024-04-03 08:00 수정 2024-04-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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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0일 중국 인민해방군 전투기가 대만해협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 중국 신화통신〉

2023년 4월 10일 중국 인민해방군 전투기가 대만해협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 중국 신화통신〉



화양연화 〈1〉 대만해협, 짙어지는 전운

현상 변경은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영역부터 조금씩 밀려 들어옵니다. 지난 1월 30일 중국 민간항공국(CACC)이 대만해협 상공을 오가는 민간 항공의 비행 노선을 조정했습니다.


 

말은 정당한 행위…그러나 중국의 일방통행


M503으로 알려진 이 노선은 원래 상하이에서 홍콩을 오가는 항공기가 대만 해협 중간선에서 중국 본토 쪽으로 8해리 떨어져 운항하도록 한 경로입니다. 2015년 중국은 이 노선으로 운항하려다 대만의 반발과 시위에 부딪혀 본토 쪽으로 더 이동한 대체 경로에 합의하고 사용해 왔습니다.
 
중국이 대만해협 중간선에 인접한 M503 노선을 사용하겠다고 대만에 일방 통보했다. 〈사진 타이베이 타임즈〉

중국이 대만해협 중간선에 인접한 M503 노선을 사용하겠다고 대만에 일방 통보했다. 〈사진 타이베이 타임즈〉


그런데 9년 만에 중국은 M503 노선을 이용하겠다며 일방적으로 대만에 통보했습니다. 이는 대만 해협 중간선과 거의 일치합니다.

차이잉원 총통에 이어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신임 총통에 선출된 지 3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대만 민간항공국(CAA)은 깊은 유감과 강력한 항의를 표명했지만 국제적 이슈로 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지정학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최근 중국 조치 중 하나입니다. 해당 노선으로 중국 민간 항공기 65편이 운항될 예정입니다.


중국 군용기가 지속적으로 해협 중간선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대만 군은 민간 항공기까지 식별해야 해 군사적 부담이 커집니다. 중국 전투기가 민간 항로를 따라 들어올 수 있어 대만 침공의 전략적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대만과 묵시적으로 합의해왔던 사실상의 군사분계선인 해협 중간선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는다는 광범위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대만 포위 전략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2022년 8월 2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의 접근 방식을 180도 바꿔 놨죠.

대만 포위한 중국 정찰 영역


그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은 “대만해협에는 중간선이 없다”고 선언했고, 경계선을 넘나드는 인민해방군의 군사 작전은 중국 입장에서 '뉴노멀'이 됐습니다.


중국군의 전략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 시계열로 배열해 본 움직임입니다. 대만 국방부는 매일 오전 9시 홈페이지에 중국 군용기, 무인기의 정찰 경로를 발표합니다. 휴일과 관계없이 매일 업데이트됩니다.


또 하나, 일본 방위성도 군용기와 중국 해상 전력의 궤적을 모니터링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움직임이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대만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보도자'(報導者·The Reporter)가 이 공개 자료를 위도와 경도에 맞춰 지도 상에 올려놓는 데이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022년 8월부터 1년 1개월간의 데이터를 쌓았습니다. 중국 군용기의 항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1) 2022.8.1~2022.11.30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2022년 8월 7일부터 중국은 펠로시 의장 방문에 항의해 세차례 대규모 군사 훈련을 했습니다. 영공을 넘기는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며 대만을 위협했습니다.


이후 넉 달 동안 정기적으로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나듭니다. 촘촘하게 반복적으로 정찰구역을 형성해 본토·대만간 중간선이 약 30km 이상 대만 쪽으로 밀린 듯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


(2) 2022.12.1~2023.3.31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2022년 12월 23일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만에 군사 원조 100억 달러를 승인하는 국방수권법에 서명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 중국 군용기의 움직임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대만해협 중간선 위주에서 대만 남서쪽, 남쪽, 동남쪽까지 돌아듭니다. 대만을 남쪽과 서쪽을 에워싸는 모양새죠.


특히 대만 남서부 정찰이 활발한데 이는 필리핀 북부와 대만 남부 사이 바시(Bashi) 해협에서 활동하던 중국 군용기가 이 지역에 투입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3) 2023.4.1~2023.8.31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2023년 4월 10일 차이잉원 총통이 미국을 방문했고 중국은 다시 한번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입니다.


그리고 비행경로로 보다시피 중국 군용기와 무인 정찰기들이 항적이 이제 대만을 360도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1년 만에 대만 전체를 정찰하는 범위까지 확대된 사실이 궤적을 통해 확인됩니다.


(4) 2023.9.1~2023.9.15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사진 대만 매체 보고자(The Reporter)〉


2023년 9월에 달라진 건 중군 군용기가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잠시 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만 측 중간선 영역에서 길게 정찰하고 있다는 것이죠. 대만 북부에선 정사각형 형태로 처음 보는 항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1년 1개월 간 대만을 교란한 중국 군용기 출격 횟수는 2231회였습니다. 전투기가 69%(1541회), 정찰기 16%(357회)였고 333회(15%)는 무인기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월 중국이 대만 해협 중간선에 민간항공기까지 띄우겠다는 건 이상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9년 전 대만의 항의 정도에 피했던 일이지만 이제 중국은 신경 쓸 의사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중국은 예전의 중국이 아닙니다.

 

해양관할권 다툼없다…무조건 중국 우선

 
지난달 23일 중국 해경 함정(오른쪽)이 남중국해상에서 필리핀 보급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사진 필리핀 군 제공〉

지난달 23일 중국 해경 함정(오른쪽)이 남중국해상에서 필리핀 보급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사진 필리핀 군 제공〉

사실 이런 징후는 지금도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중국 어선이 대만 해안 경비대 추격을 받다가 전복돼 2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만은 중국 어선이 금지 수역에 진입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중국은 “무슨 소리냐 금지 수역은 없다”고 되레 큰 소리쳤죠 .



자국민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지만, 중국은 호재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대만과의 경계 수역들, 특히 중국 본토와 거의 붙어 있는 진먼다오(金門島) 주변 해상 이참에 본토 해안경비대가 관할할 테니까 왈가왈부 하지마라고 대놓고 대만을 무시하는 모양새니까요. 대만이나 서방국가 입장에선 '중국의 도발'이고 중국 입장에선 대만 통일로 가는 '정상화 과정' 쯤으로 보고 있을 겁니다.


지난달 23일 중국 해경 함정이 필리핀 함선에 물대포를 뿌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은 국제법적으로 논란이 많습니다. 중국과 필리핀 어느 쪽의 입장이 맞느냐를 따지기 전에 중요한 것은 중국이 어깨를 과시하면서 힘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도 충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대놓고는 아니었습니다.

 

중국 군사적 부상…미,일,필,대만 '잰걸음'


그래서입니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 세 과시에 미국과 일본, 대만, 필리핀 모두 움직이고 있습니다. 탕화(唐華) 대만 해군 사령관이 이번주 미 워싱턴에서 리사 프란체티 미국 해군 참모총장과 만나 비공개 회의를 갖습니다. 중국 위협에 대한 공조 방안이 논의될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오는 11일 처음으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합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3국 합동 해상 순찰도 처음으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22년 5월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정상회담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 연합뉴스〉

22년 5월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정상회담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 연합뉴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작전계획과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주일미군사령부 개편 계획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대만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서죠.


어제(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전화로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비슷한 발표문 속에 눈길이 갔던 건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실질적 협의 채널을 확보”가 주요 의제였다는 대목이었습니다.


2022년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 이후 미중 군사 핫라인이 끊겼습니다.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이 복원하겠다고 상호 합의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건데요. 양국 발표문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지만 그보다 일단 최소한의 안전장치부터 다시 복구시켜놓는 게 가장 먼저일 것 같습니다.
화양연화(華洋連話)
동서양을 잇는 이야기,
한 걸음 더 들어가 글로벌 이슈를 탐사합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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