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의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대한민국 경찰이 X나 한가한 것도 아니고 텔레그램 가입자가 9억명이라는데 CEO 잡혔다고 방 다 털리면 전세계 사람들 다 조사해야 함. 게다가 방에 들어간 사람들 신원따는 것도 쉬운 게 아닌데 얘가 들어가서 뭘했는지까지 다 정리해서 수사 못함... (후략)” 포털사이트 딥페이크 관련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최근 '성전 카페'(성범죄 등 형사범죄 전문카페), '학교폭력딥페이크대책본부' 등 커뮤니티와 인터넷 유명 게시판을 중심으로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을 제작·배포·시청한 학생들이 '텔레그램'이란 메신저의 특성을 악용해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애가 호기심에... 잘 몰라서...' 등을 이유로 미성년자 처벌 여부를 묻는 학부모 등의 법률 상담도 증가했습니다.
'법정부터 세우라'고 맞받은 글이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에서 11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무분별하게 확산된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법망을 피할 수 있는지 팩트체크해 봤습니다.
(출처 : '학교폭력딥페이크대책본부' 카페 게시판)
“텔그(텔레그램)는 합성 따위랑 비교도 안되는 실제 성착취물 때도 협조안함. 덜덜 떨지좀 말고 현생 살아라” “텔레그램 수사 적발된 경우 N번방 빼고 있나?” “터진방(방장이 해체)에서 눈팅을 했다거나, 활동을 했던, 방장이였던간에 찾을 수 전혀 없다”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경찰을 조롱하는 글이 많습니다.
익명성 뒤에 숨고, 텔레그램의 특성을 활용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방조해도 수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인데요.
텔레그램이 경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서버 위치도 알려지지 않아 추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JTBC 팩트체크팀이 경찰 등 수사기관을 통해 확인해봤습니다.
텔레그램이 국내 수사기관에 협조 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의 요청에도 방관하거나 방조했다는 이유로 최근엔 파리에서 텔레그램 CEO가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국내 메신저는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조회가 가능합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X 등의 경우 경찰청과 협약을 통해 범죄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제공받아 수사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 제출받은 '텔레그램 자료제공 요청 내역'을 보면, 경찰은 'N번방' 수사를 위해 그해 2월부터 8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에 수사협조 메일을 보냈으나 한 차례도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범죄엔 흔적이 남는 법, 경찰은 텔레그램 외에도 스마트폰과 수많은 디지털 흔적을 쫓아 결국 관련자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텔레그램에서의 범죄가 신고, 캡처, 관련자 조사, 기타 SNS 기록, 스마트폰 포렌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비밀 아이디에 숨거나, 방을 없애는 등의 시도를 하더라도 검거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겁니다.
'N번방'과 '박사방' 사건 역시 지속적으로 추적해 주범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텔레그램 방에 참여했던 사람들 역시 상당수 찾아내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사이버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간부 A씨는 “디지털 흔적은 어떤 형태로든 남는다"면서 "텔레그램 내에서만 했다고 생각하지만 관련 조사를 하면 많은 곳에 흔적이 남아 있고 이런 단서를 역추적해 대부분 범죄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엔 텔레그램 본사의 변화된 모습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딥페이크 성범죄영상물 사태와 관련해 텔레그램측이 사과의 뜻을 밝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에 따르면 텔레그램과의 전용 이메일을 제공하고, 방심위가 긴급 삭제 요청한 디지털성범죄영상물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또 자신들은 "한국 당국으로부터 접수된 신고를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었다"면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사과한다고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텔레그램 방을 폭파하면 추적 못한다는 건 대체로 사실이 아닙니다.
텔레그램 방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정보를 캡처해 소셜미디어에 올린 자료가 지난 1일 유명 게시판에 올라왔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캡처〉
사이버 보안업체인 시큐리티히어로는 최근 공개한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에서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꼽았습니다.
보고서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많이 이용된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인 가수라고 밝혔습니다.
또 네덜란드 사이버보안업체 딥트레이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온라인 상의 딥페이크 영상물은 1만 4678개로, 이는 2018년 7964개를 기준으로 100% 증가한 수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상의 딥페이크 영상물의 96%가 포르노로 제작됐으며, 포르노가 아닌 영상물은 4%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피해 대상 국가는 미국이 41%, 한국이 25%, 영국 12%, 캐나다 6%, 인도 3%, 기타 국가가 13%로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딥페이크 포르노 대상국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텔레그램에선 영상을 다운로드해야 볼 수 있어 딥페이크 영상을 봤다면 휴대폰에 소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 : 텔레그램 캡처〉
이런 조사 결과처럼 딥페이크 영상물은 불법 영상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경찰 등 수사기관과 법원은 딥페이크 영상 자체를 디지털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이 조사한 2020년부터 2024년 7월까지 아동성착취물 관련 발생·검거 건수(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실 제공)에 따르면 올해 발생 사건 912건 중 751건이 검거로 마무리되는 등 지난 5년간 경찰에 신고된 사건 중 90.1%의 가해자가 검거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년간 아동성착취물 관련 총 검거인원 6890명입니다. 이중 경찰 수사에서 종결한 '불송치' 인원은 526명으로 7.6%에 그쳤습니다.
딥페이크 제작·배포·시청·금전거래, 추가 범죄 등 죄질에 따라 구속 여부, 형량 등이 달라지지만 아동성착취물 관련 검거율은 90%가 넘었고, 검찰이 기소한 사건도 93%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2020년~2024년 7월 경찰 아동성착취물 검거 건수 (경찰청,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실 제공)
경찰청은 가해자가 벌금형 이상을 받을 경우 최소 10년 이상 신상정보가 등록돼 관리 대상이 된다며 매년 경찰서에 출석해 사진 촬영, 주소·직장 변경 시 20일 내 신고를 해야 하며 이를 불이행할 시 1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딥페이크가 처벌 안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딥페이크를 제작하고, 보는 텔레그램 방 등에 우연히 들어갔다. 보기만했다.' 이른바 '눈팅'은 괜찮을까요?
최근 논란이 된 딥페이크 사건은 피해사례가 대부분 중학생과 고등학생입니다.
현행 법은 피해자를 성인과 아동청소년으로 구분해 처벌의 강도를 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N번방 사건 이후 2020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아동청소년과 관련한 영상물에 대해선 불법촬영 및 경제적 목적과 유포 등 외에도 갖고 있거나(소지), 보기만 해도 (시청)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법률은 1년 이상을 형량으로 정하고 있는데, 죄질에 따라 법원이 형량을 훨씬 높게 선고할 수 있도록 해뒀습니다.
아동 청소년의 얼굴을 붙여 만든 음란물의 경우, 아동 포르노로 판단해 강하게 처벌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 성인에 대한 딥페이크 포르노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반면 아동 청소년에 대한 범죄는 평생 교도소에서 지내야 할 정도로 무겁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N번방-박사방 사건 때 텔레그램 방 등을 통해 불법 영상을 보기만 한 경우에 조사를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 A씨는 "수백명이 입건되어 조사를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시청만 한 경우엔 괜찮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피해를 입었다는 학교명을 검색할 수 있는 '딥페이크 피해학교 지도'.
중학생 개발자 2명이 온라인상에 공개된 자료와 제보를 토대로 만들어 화제가 된 '딥페이크 지도'에 따르면 피해는 전국 초·중·고·대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습니다.
현재까지 피해가 접수된 학교는 630개교입니다.(9월 6일 오후 4시 기준)
경찰 등 정부 차원에서 관련 영상을 차단하고, 제작 및 유포 등 가해자를 추적하고 있지만 성인인지, 청소년인지 특정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온라인상에서 각종 법률상담 사이트와 변호사들을 상대로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앞서 팩트체크한 것처럼 음란물이거나 그에 준하는 경우, 청소년이라도 처벌을 피해 가긴 어렵습니다.
연령과 만들어진 영상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재판을 받는 곳과 처벌의 종류가 달라질 뿐입니다.
이른바 촉법소년으로 불리는 만 10세에서 13세까지는 우리 형법이 '형사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형벌이 규정된 범죄를 저질러도 그에 따른 처벌을 받진 않습니다.
대신 가정법원에서 법이 정한 1호에서 10호 처분을 받게 됩니다.
죄질이 좋지 않으면 최대 2년간 소년원에서 지내는 처분을 받기도 합니다.
전과가 남진 않지만, 처벌의 한 종류로 볼 수 있습니다.
만 14세에서 18세까지는 죄가 무거울 경우 성인과 같은 재판을 받습니다.
사안이 가벼울 경우 소년부로 송치되어 재판을 받는데, 이 경우엔 법원이 형량의 하한과 상한을 함께 선고합니다.
교도소에 수감될 경우, 생활을 잘하는지 등의 여부에 따라 하한에 맞춰 내보낼지, 상한까지 더 복역할 수 있도록 할지 결정합니다.
다만 같은 범죄라도 성인보다 상대적으로 형량을 낮게 선고합니다.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건 '범법소년' 뿐입니다.
만 10세 미만의 아동입니다. 이 경우엔 보호처분도 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딥페이크 사건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면 규정에 따라 조사를 받아야 하고, 학교 차원의 징계, 민사 손해배상 청구 등의 제재를 피해갈 순 없습니다.
따라서 청소년이 처벌 받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자료조사·취재지원 이채리 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