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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미혼남녀' 만남 주선?…서울시 조례안 통과

입력 2024-01-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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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캡처〉

〈사진=JTBC 캡처〉

"앞으로는 미술관이 미혼 남녀 만남을 주선할 수 있는 거예요. 같이 전시회 관람하고 티타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기회를 주는 거죠." (이종배 서울시의원)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재단의 역할 수행과 관련한 내용 중 '시민의 문화향수 및 창의력 증진'이라는 문구를 '청소년·청년·미혼남녀·장애인·노인 등 시민의 문화향수 및 창의력 증진'으로 바꾸는 내용이었습니다.

'미혼남녀'를 구체적으로 조례에 명시한 이유는 뭘까.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종배 시의원은 "서울시가 역사박물관, 미술관,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혼남녀가)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적령기인 미혼남녀의 만남 기회가 줄고 있고, 소개팅 앱이나 결혼정보회사 등 민간 영역에서의 만남 주선은 부작용이 많다"며 "공공 영역이 나서면 신원 확인 등을 통해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이 가능하다. 서울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 조례안을 발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팅' 꺼내 들었다 비판 여론 거세자 취소


사실 서울시가 청년들의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나선 게 처음은 아닙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서울팅'을 추진했습니다. 요리, 고궁 탐방 등 프로그램을 통해 미혼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한다는 거였죠.

청년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고 결혼 문화를 장려하는 한편, 저출생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이 거셌습니다.

"청년들이 만남의 기회가 없어 연애나 결혼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만남이 출산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민간 영역이 아닌 공공 부문에서 만남을 주선하는 건 세금 낭비다" 등등 비판 여론이 터져 나왔죠.

결국 서울시는 이 사업을 재검토한다고 밝혔고, 이후에도 만남 주선 프로그램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성남시 '솔로몬의 선택'은 흥행…"커플 99쌍 탄생"

성남시의 청년 만남 주선 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은 총 99쌍의 커플을 탄생시켰다고 성남시는 밝혔다. 〈사진=성남시 제공〉

성남시의 청년 만남 주선 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은 총 99쌍의 커플을 탄생시켰다고 성남시는 밝혔다. 〈사진=성남시 제공〉


하지만 여론과 달리 막상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흥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서울팅과 비슷한 시기, 경기 성남시는 비슷한 미혼남녀 만남 주선 프로그램인 '솔로몬(SOLO MON)의 선택'을 기획해 운영했는데요.

지난해 하반기 5차례에 걸쳐 행사를 진행한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성남시민이거나 성남시에서 근무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신청자 수만 총 2571명에 달했습니다. 평균 경쟁률은 6대 1. 회차마다 경쟁이 치열해 추첨제로 참가자를 뽑아야 했습니다.

행사 이후 탄생한 커플은 총 99쌍. 커플 매칭률은 43%라고 성남시는 밝혔습니다.

프로그램 흥행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판교에 IT 기업들이 많았고,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신청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성남시에 따르면 프로그램 참가자 중 30%는 IT 기업 종사자였으며, 20%가 공기업 근로자·공무원이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 프로그램을 저출산 대책으로 보지 않았다"며 "그저 청년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을 목표로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성남시는 올해도 '솔로몬의 선택'을 5차례 진행할 예정입니다.

만남 주선 프로그램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2012년부터 '만남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유독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관계자는 "예전에는 신청 인원이 50명 안팎이었는데 지난해는 신청 및 문의가 2000여건 넘게 들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올해에도 만남 템플스테이를 4~6회에 걸쳐 진행할 계획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만남 템플스테이'는 지난해 큰 관심을 받았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만남 템플스테이'는 지난해 큰 관심을 받았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신뢰도 높고 비용 낮아 청년들 호응했을 것"


최근 지자체 등 공공 영역에서의 청년 만남 주선이 흥행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이성을 만나기가 어려워진 현실을 꼽았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이성을 만나지 않고도 삶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또 결혼정보회사가 우후죽순 늘어났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데이트폭력 등 이성을 잘못 만났다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들이 알려지면서 이성과 관계를 맺고 싶어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청년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낮은 비용으로 신원 확인을 거쳐 만남을 주선해주니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다는 겁니다.

구 교수는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만큼 어느 정도 신뢰도는 있을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비용은 별로 들이지 않고 이성을 만날 기회가 한 번이라도 늘어나니 청년들이 호응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려 목소리도…"정말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부터 발굴해야"


한편으로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만남과 연애라는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에 공적 영역의 개입이 커지는 데 대한 우려죠.

실제 성남시에서 만남 주선 프로그램이 흥행한 뒤 여러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갖고 정책 추진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미혼 남녀가 만나지 못해 결혼을 못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알 것"이라며 "예산을 쓰려면 목적과 정당성, 효율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정확한 목적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신 교수는 "공공의 영역이 청년들의 만남과 결혼을 도우려면 직장 여건이 좋지 않아 이성을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발굴해서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성남시 사례처럼 직장 탄탄한 사람들에게 예산을 쓰며 만남을 지원해주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만남 주선은 민간 영역에서 하면 되는 일"이라며 "차라리 기업에서 동호회 등의 활동을 지원해 청년들의 만남을 활성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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