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서울의 봄×12·12' 싱크로율 따져보니

입력 2023-12-12 17:15 수정 2023-12-12 18:02

5공 전사(前史)·과거사위 보고서·대법원 판결문으로 검증
박희도 1공수여단장 "12·12는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쿠데타 아니다"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5공 전사(前史)·과거사위 보고서·대법원 판결문으로 검증
박희도 1공수여단장 "12·12는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쿠데타 아니다"



[영화 '서울의 봄']
"조금 전에 박 대통령 각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노태우 씨는 친구 전두환 씨가 "10.26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을 체포할 결심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일찌감치 반란을 계획했단 겁니다.

하지만 반란군의 주역 1공수여단장 박희도 씨는 '우발적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박희도/12·12 당시 1공수여단장]
"사전에 계획적으로 했다는 건 정치적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이지."

전 씨는 줄곧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인간이라는 동물은 안 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주기를 바란다니까."

하지만 기록엔 전 씨가 반란을 일으킨 건 그런 대단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계엄사령관이 전 씨를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려 하자, 개각 전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영화 '서울의 봄']
"그카면 쿠데타야."
"이왕이면 혁명이란 멋진 단어를 쓰십시오."

신군부는 '혁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차규헌, 최세창,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이 반란을 모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이 기막힌 논리를 들고, 전 씨의 최측근 허삼수·우경윤 대령이 앞장섰습니다. 12월 12일 저녁 7시, 계엄사령관을 전격 체포합니다. 그런데 반란군에도, 진압군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시간을 끌면 어떡합니까. 초동대처가 가장 중요한데!"

국방부 장관이 숨어버린 겁니다. 기록엔 노재현 장관이 총소리가 들리자 피신했고, 결국 공수부대가 찾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장관과 연락이 끊어진 밤 11시 40분,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반란군을 막기 위해 인천에 있던 9공수여단을 서울로 불러들입니다.

그러자 최세창 준장이 지휘하는 3공수여단이 특전사령관을 체포해버립니다. 영화 속 김오랑 소령은 기록에도 이 장면에서 극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박희도 준장이 지휘하는 1공수여단은 13일 새벽 1시 52분 국방부를, 새벽 2시 15분 육군본부를 접수합니다. 박희도 씨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폭주를 막고 서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박희도/12·12 당시 1공수여단장]
"장태완이가 막 날뛰면서 청와대를 보고 총을 쏘라 그러고 장군들한테 탱크로 뭉개버리겠다고 욕을 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이후 동선을 보면 신군부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전 씨가 친구 노태우 9사단장이 이끌던 서부전선 최전방 병력을 서울로 불러들인겁니다. 9사단은 새벽 3시 3분 구파발 검문소를 통과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
"김일성이 때려죽여도 안 내려옵니다. 오늘 밤은 여기가 최전방이야."

영화 속 이 대사는, 반란을 성공시키기 위해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최전방 부대를 빼돌린 신군부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특전사령관이 불러들인 9공수여단과 노태우 씨가 최전방에서 빼 온 병력이 서울에서 맞붙을 상황이 됐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오늘 밤 승부처는 누가 먼저 서울로 전투 병력을 진입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 대치는 새벽 3시 10분, 윤성민 참모차장이 '수경사 전투 중지'를 선언하면서 허무하게 끝납니다. 새벽 4시 17분,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연행되면서 반란군의 세상이 됐습니다.

다음날 아침, 반란군은 보안사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노태우, 감사원장을 지낸 황영시, 국회의원을 지낸 박준병, 국방부 장관을 지낸 최세창,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박희도, 청와대로 들어간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과 장세동.

이들은 대부분 대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채 여전히 12·12를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박희도/12·12 당시 1공수여단장]
"(12·12 군사반란은) 합수본부장(전두환)이 전직 대통령(박정희)을 살해한 살해현장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우연한 사건이지. 이것은 절대 쿠데타가 아니라고…."

(영상취재 : 신승규, 영상편집 : 김영석)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