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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성전환'을 법으로 금지한 이유는?

입력 2023-07-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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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성전환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성전환 수술을 금지하는 법안에 최종 서명했습니다. 이 러시아 법안은 모든 공문서와 공공 기록물에서 개인의 성별을 바꾸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성별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의학적 개입도 금지했습니다.


성전환 수술이 허용되는 유일한 예외는 선천성 기형을 치료할 목적으로 하는 수술뿐입니다. 더불어 법안에서는 커플 두 명 중 한 명이 성전환을 하면 결혼을 무효로 하고, 성전환자가 자녀의 양육자가 되거나 입양 부모가 되는 것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앞서 법안을 발의한 표트르 톨스토이 의원은 법안을 낸 취지에 대해 "러시아의 문화적, 가족적 가치와 전통을 보호하고 서구의 반 가족 이념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법안은 러시아 상·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지난 2015년 러시아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 시위 현장. 〈사진=AP/연합뉴스〉

지난 2015년 러시아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 시위 현장. 〈사진=AP/연합뉴스〉


“동성애 알리는 모든 행위 금지”…10년간 이어진 성소수자 탄압


성전환자를 포함해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에 대한 탄압이 러시아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10년 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적 가족 가치를 지키겠다고 선언한 뒤부터 본격화됐죠. 2013년 러시아는 미성년자들에게 '비전통적인 성관계', 즉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한 선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아이들에게 비전통적 성 관념(동성애)을 형성하거나 관심을 갖게 하는 정보를 유포하는 걸 금지한 겁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성년이 되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면서 "어떤 것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가 여자아이가 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정말 괴물 같은 일"이라고도 했죠.

하지만 미성년자만을 대상으로 했던 성소수자 선전 금지 법안은 지난해부터 성인들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과 영화, 서적, 광고, 공공장소 등에서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알리는 행동 모두를 금지한 겁니다. 이를 어기면 개인은 최대 40만 루블(약 567만 원), 법인은 최대 500만 루블(약 7085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실제 동영상 공유 애플리케이션 틱톡에 '성소수자 주제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 루블(약 4250만 원)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동성 간 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혁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러시아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서의 결혼 제도를 보호한다'는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이성 간 결혼만을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한다고 명시한 셈입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 의원에서 성전환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 의원에서 성전환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성소수자에 부정적인 러시아…종교·전쟁 영향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성소수자에 우호적이다' 52%.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전 세계 12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이 여론조사는 지난 2006년 시작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호적이라는 응답은 21%, 비우호적이라는 응답이 54%였습니다.

여론은 서서히 바뀌어 지난 2020년 처음으로 우호적(49%)이라는 응답이 비우호적(35%)이라는 응답을 넘어섰고, 올해 처음으로 우호적이라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선 겁니다. 지역·종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시각이 점차 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왜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는 걸까요?

우선 국민 다수가 보수적 성향의 기독교 정교회 신자인 러시아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시하고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한때는 동성애를 처벌 대상인 범죄 행위로 보거나 정신질환으로 분류할 정도였죠. 동성애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건 1993년, 정신질환 목록에서 공식 삭제한 건 1999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구조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여론은 여전히 비우호적입니다. 현지 언론인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한 여론조사 기관이 지난 2021년 실시한 조사에서 러시아 성인의 69%가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의 영향력을 막으려 성소수자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성소수자 문제에 개방적인 서방 국가들이 진보적인 젠더 개념과 동성애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전통적 가치와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법안이 통과된 뒤 국제사회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그레임 리드는 "러시아는 정치적 목적으로 성소수자를 집요하게 공격해왔다"면서 "국가가 성전환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나탈리아 즈비아기나 국제앰네스티에서 러시아 담당은 성명을 내고 "이 법안은 러시아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면서 "이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고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박탈하며, 정신 건강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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