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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염 덮친 날 명동 가보니…문 열고 냉기 뿜는 가게들

입력 2023-06-19 17:35 수정 2023-06-2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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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오늘(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과 지면의 열기에 맞서듯 길 옆쪽에선 냉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문을 열어놓은 채 냉방을 하는 가게들에서 나오는 냉기였습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신발가게가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신발가게가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이날 취재진이 명동거리 일대를 돌아다녀 봤습니다.

명동 지하쇼핑센터 쪽에서 출발해 명동성당까지 이어지는 약 370m 거리와, 명동역 6번 출구부터 을지로입구역 방면으로 이어지는 약 600m 거리를 걸었습니다.

거리 쪽으로 입구를 두고 영업 중인 1층 매장 총 75곳 중 56개 매장(73.2%)이 문을 열어둔 채 냉방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게 측 "손님 들어오게 하려면 어쩔 수 없어"


문을 열어둔 채 냉방을 하면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런데도 '개문냉방'을 하는 이유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입니다.

한 대형 의류매장 관계자 A 씨는 "영업을 준비하는 시간이나 폐점시간 빼고 영업시간 중에는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있다"면서 "문을 열어둬야 손님들이 더 쉽게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장 안의 시원한 공기가 밖으로 전달돼야 손님들이 한 번이라도 더 들어오지 않겠냐"고 덧붙였습니다.

개문냉방 중인 화장품 가게 매니저 B 씨는 "장사가 잘 안되니까 다들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그래도 우리는 문을 열어둘 땐 냉방을 반만 틀어놓는다"며 가동 중인 에어컨 두 대 중 하나를 껐습니다.

개문냉방을 하면 전기를 더 많이 쓰게 되고 전기요금도 더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달부터 전기요금이 오른 탓에 비용 부담도 커질 전망입니다. 그래도 영업을 생각하면 문을 닫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명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C 씨는 "이곳은 유동인구가 많으니 문을 열어두고 영업하고 있다"면서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더라도 그냥 문 열어두고 손님을 더 받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식료품을 파는 한 가게가 문을 활짝 열어놓은 모습. 이 가게는 10여대에 달하는 에어컨을 모두 가동하고 있었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식료품을 파는 한 가게가 문을 활짝 열어놓은 모습. 이 가게는 10여대에 달하는 에어컨을 모두 가동하고 있었다. 〈사진=이지현 기자〉


식료품을 파는 한 가게는 천장에 달린 10여 대의 에어컨을 모두 가동한 채 가게 전면 유리문 세 개를 모두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게 직원 D 씨는 "손님들이 편하게 들어오게 하기 위해 항상 문을 열어놓는다"며 "문을 한 개만 열면 답답하고 좁아서 전부 열어놨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문을 닫아놓고 있던 한 화장품 매장은 4개의 에어컨 중 2개만 틀어놓은 채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화장품 매장 직원 E 씨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오후에는 가급적 문을 닫아놓으려고 한다"면서 "문을 닫으면 에어컨을 다 켤 필요도 없어 앞쪽 두 개만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명동 거리에서 문을 닫고 영업을 하고 있는 한 화장품 가게. 〈사진=이지현 기자〉

명동 거리에서 문을 닫고 영업을 하고 있는 한 화장품 가게. 〈사진=이지현 기자〉

 

매년 되풀이되는 '개문냉방'…전력 소비, 문 닫았을 때보다 최대 4.4배 증가


번화가 상점들의 개문냉방은 매년 여름만 되면 곳곳에서 되풀이되는 일입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성수역·강남역·명동역·홍대입구역 일대를 둘러봤더니, 111개 매장 중 52개 매장이 개문냉방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명동역은 31개 매장 중 22곳(70.96%)이, 강남역 일대는 27개 매장 중 16곳(59.25%)이 문을 열고 냉방을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전기료를 지불하고 영업을 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낭비되는 건 한 번쯤 생각해볼 점입니다.

한국건축친환경설비학회에 따르면 개문냉방을 할 때 문을 닫고 영업을 할 때보다 전력 소비가 최대 4.4배까지 증가합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문을 닫고 냉방을 하면 하루에 4.41kWh, 한 달에 114.8kWh의 전력을 아낄 수 있습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가게들이 문을 열어놓은 채 냉방을 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가게들이 문을 열어놓은 채 냉방을 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정부 "전력수급량 보면서 단속 여부 결정할 것"


전력 낭비를 막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개문냉방 단속을 시작했습니다. 전년도인 2011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뒤였죠.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 사용의 제한에 관한 공고'를 내리면 지방자치단체들이 개문냉방을 단속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경고로 시작해 여러 번 위반하면 최대 3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2012년~2016년 다섯 차례에 걸쳐 공고를 내고 개문냉방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2016년 이후에는 단속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엔 코로나 19 때문에 내부 환기를 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단속을 유보했죠.

전력 수급량이 불안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상점들의 영업 방식을 제한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영업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된 자유이기 때문에 이를 제한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에너지 수급 상황을 보고 단속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으로써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개문냉방을 막을 수 있을지, 단속 외에 어떤 방법이 있을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각 지자체는 홍보와 교육에 나서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150명 규모의 '에너지 서울 동행단'을 만들었습니다. 내일(20일) 명동 일대에서 개문냉방 영업 자제 캠페인을 시작으로 8월까지 명동·홍대·강남역 등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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