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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입력 2023-05-08 08:00 수정 2023-05-14 09:4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2)

지구의 '몸살', 2022년에 이어 2023년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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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2)

지구의 '몸살', 2022년에 이어 2023년도? (상)

건조하디 건조했던 겨울과 봄을 지나다 갑작스러운 비가 찾아왔습니다. 마치 장마처럼, 전국엔 종일 비가 내렸고, 일부 지역엔 시간당 20~30mm 안팎의 매우 강한 비가 쏟아졌습니다. 지난 어린이날 내린 비로 광주에선 지하철 1호선 공항역의 대합실이 침수됐고, 전남 장흥군의 밀과 보리를 키우던 경작지 525ha에선 비바람에 작물들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충남 천안에선 갑작스러운 강수에 하수구가 역류했고, 그 바람에 하천의 물고기 5백여 마리가 집단 폐사했습니다.

어린이날 연휴, 전국에 내린 비로 곳곳에서 비바람 피해가 잇따랐다.

어린이날 연휴, 전국에 내린 비로 곳곳에서 비바람 피해가 잇따랐다.

비가 찾아오기 전까지, 전국은 여름을 방불케 한 이른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3일, 충북 오창과 경기 여주의 낮 최고기온은 각각 29.9℃, 29.8℃까지 치솟는 등 수도권과 강원 영서, 충청권과 경북 곳곳의 기온은 25℃를 넘었습니다. 4일에도 비가 시작된 제주와 전남, 경남 등 남부지방을 제외하곤 중부지방 곳곳의 기온이 28~29℃에 달했죠. 그러다 전국적인 강수가 본격화한 5일, 전국의 낮 기온은 25℃를 밑돌았습니다. 산간과 해안 지역의 경우, 한낮에도 20℃를 넘기기 어려울 정도였죠. 불과 하루 이틀 사이, 온탕과 냉탕을 오간 겁니다.

기후변화는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가 더욱 잦아지도록 만듭니다. 이상(異常)은 일상(日常)이 되고,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는 거죠.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2022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고, 이 보고서엔 앞으로 이러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과학적 근거가 담겼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당장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온실가스는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등 주요 온실가스의 대기 농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이죠. 해마다 증가하는 정도가 달라질 뿐, 연간 변화량 자체가 음의 값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산화탄소의 대기 농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배에 달했고, 메탄의 농도는 무려 2.6배 수준이었습니다. 아산화질소 또한 24% 증가했고요. 이 3가지 온실가스는 한번 뿜어져 나오면 짧게는 12년(메탄), 길게는 200년(이산화탄소) 동안 대기 중에 머뭅니다. 우리 인간의 행동에서 비롯된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해서 대기 중에 누적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열을 머금어 지구를 온실처럼 만드는 이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점차 많아짐에 따라, 지구의 기온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화 이후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하면서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 또한 더욱 빨라졌고, 이러한 상승세는 지난해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5년 이후 8년 연속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1℃ 높은 상태를 이어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구를 달구는 열기는 비단 기온, 다시 말해 '대기의 온도'만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에 저장되는 열기는 전체 열기의 2%에 불과하죠.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4%의 열기는 극지방 등 빙권을 향하고, 5%는 지구 곳곳의 땅이 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에 해당하는 89%의 열은 '생명의 어머니' 바다가 품게 되죠.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온은 평년보다 낮았습니다. 라니냐의 해였던 겁니다. 본래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온은 다른 태평양 바다에 비해 낮습니다. 적도 부근을 따라 부는 무역풍의 영향 때문입니다. 무역풍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적도 부근에서 동에서 서로 부는 바람입니다. 바람을 따라 적도 부근 태평양의 바닷물 또한 동에서 서로 이동하게 되죠. 때문에, 적도 부근의 동태평양에선 햇빛을 받아, 혹은 뜨거워진 대기의 영향으로 따뜻해진 해수면의 물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다 아래에 있던 상대적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해수면을 향해 올라오게 됩니다. 이를 용승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무역풍이 언제나 일정하게 부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보다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죠. 무역풍이 강하면 용승 현상도 강해지고, 결국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평소보다 더 낮아지게 됩니다. 반대로 무역풍이 약해지면 용승 현상이 줄어들고,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온은 평소보다 높아지죠.

용승은 바닷물의 활발한 순환을 의미하는 만큼, 이 지역 어민들의 어획량과도 직결됩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철, 이 용승이 활발하지 않아 해수온이 오르게 됐고, 결국 어민들은 어업을 잠시 쉬고, 뭍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게 됐습니다. 평년 대비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온이 평년보다 높은 현상을 엘니뇨(El Nino, 남자 아기, 아기 예수)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현상은 라니냐(La Nina, 여자 아기)라고 부르게 됐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5개 대양 가운데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전 세계 바다 면적의 반을 차지하는 만큼, 태평양의 온도가 지구 평균기온을 좌지우지할 정도죠. WMO는 이번 보고서에서 “라니냐가 찾아왔음에도 지난해 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대비 1.15℃나 높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외의 지역이 그만큼 더 더웠다는 겁니다.

이처럼 지구가 달궈짐에 따라, 그 열의 89%를 바다가 품으면서, 해양열용량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해양열용량은 바다에 저장된 열에너지의 양을 의미합니다.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은 평소보다 식었다 한들, 전체 바다 깊숙이 내재된 에너지는 늘어난 겁니다. 이 에너지가 어디에, 얼마나 분포되어 있느냐에 따라 기압 배치가 달라지고, 이는 곧 육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날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WMO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대기의 온도를 높이고, 이는 곧 지구 시스템 전반에 걸쳐 열에너지의 축적을 부른다”며 “이렇게 축적된 열에너지 가운데 90% 가량이 바다에 저장되고, 이는 곧 해양 온난화로 이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폭우, 정반대 같은 둘 사이 공통점은?〉을 통해 WMO의 2021년 기준 보고서를 전해드렸듯, 2021년 전 지구 해양 열용량은 전년 대비 14ZJ 증가하며 역대 최고를 경신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전년 대비 17ZJ 증가하며 이 기록은 또 다시 깨졌고요. WMO는 앞으로도 이러한 기록 경신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기후변화에 따른 온난화는 '얼어붙은 바다', 해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해빙 면적의 감소세가 지속되는 겁니다. 2022년 9월 기준, 북극 해빙의 면적은 위성관측 이래 11번째로 적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이때 면적은 467만㎢에 그쳤는데, 1980년 754만㎢뿐 아니라 2021년의 472만㎢보다도 적은 수준입니다. 남극의 경우, 2022년 2월 기준 192만㎢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스위스 피즈로제그와 치에르바 빙하의 과거(1935년)와 현재(2022년) 비교. (자료: WMO)

스위스 피즈로제그와 치에르바 빙하의 과거(1935년)와 현재(2022년) 비교. (자료: WMO)

해빙만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만년설로 뒤덮인 산 곳곳의 빙하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WMO는 “세계빙하모니터링서비스(WGMS, World Glacier Monitoring Service)가 40여 빙하의 장기 관측을 실시한 결과, 최근 10년새 평소보다 훨씬 큰 규모로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알프스 빙하의 부피는 2000년 76.5㎦에서 2001년을 제외하곤 줄곧 줄어들어 2022년 49.2㎦로 관측 이래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20여년 사이 3분의 1이 사라졌고, 한 해에만 6.2%나 감소한 겁니다. WMO는 ① 겨울철 적설 부족으로 여름 기간 빙하를 지켜줄 눈이 없었고, ② 2022년 3월 사하라에서 불어온 모래 먼지가 빙하 표면을 어둡게 해 태양열의 흡수가 늘었고, ③ 2022년 5월과 9월의 폭염으로 대량의 빙하가 녹아버렸다며 '역대 최저 부피'와 '역대 최대 감소폭'의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유럽 알프스에서 만년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0℃ 선' 덕분입니다. 고도가 너무도 높다보니 한여름에도 높은 고도의 산에선 기온이 0℃ 아래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유럽 알프스의 '0℃ 선'은 해발 5,000m보다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몽블랑 정상에선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이 세워졌죠. 2022년 7월 25일, 스위스 파예른에서 기상관측 풍선을 띄워 기온을 측정해본 결과, 고도 5,184m에 이르러서야 0℃가 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이렇게 바다의 얼음과 산 위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1993년부터 최근 30년간 해수면은 해마다 3.37mm씩 높아져왔습니다. 그런데, 30년의 세월을 10년 단위로 끊어보면, 해수면 상승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1993~2002년, 연평균 2.27mm였던 해수면 상승 속도는 2003~2012년 3.3mm로, 2013~2022년엔 4.62mm로 급격히 빨라졌습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할수록 해수면의 상승속도 또한 빨라진 겁니다. 그런데,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생각보다 다양했습니다. WMO는 “2005~2019년 사이 해수면 상승에 있어 북극과 남극의 해빙과 육지의 빙하가 녹아내린 것의 기여도는 36%”라며 “이밖에 해양 온난화로 인한 바다의 부피 팽창의 기여도는 55%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지난해, 세계 곳곳에선 강수의 양극화 또한 심각해졌습니다. 위의 지도는 지난해 연 강수량을 색으로 나타냈습니다. 갈색은 지난 50년(1951~2000년) 사이 가장 건조했던 시기의 강수량을, 녹색은 가장 비가 많이 내렸던 시기의 강수량을 의미합니다. 색의 진하기에 따라 강수량 최하위 10~20%와 최상위 10~20%를 구분했습니다.

지난해, 북미 대부분과 유럽,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선 50년새 손꼽힐 만큼 강수가 적었습니다. 반면 중앙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부분에선 도리어 손꼽힐 만큼 많은 양의 비가 내렸죠.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 남부는 아시아 지역에서 예외적으로 강수가 부족했습니다. WMO는 “엘니뇨-라니냐 감시해역의 남방진동(ENSO, El Nino-Southern Oscillation)과 인도양 쌍극자(IOD, Indian Ocean Dipole)의 영향으로 세계 각지에서 이러한 강수량 차이를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기후변화를 비롯해 이같은 대기-해양 결합현상은 앞으로 강수와 기온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이상 기상 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WMO는 이번 보고서에서 단순히 2022년에 있던 기상 현상만을 전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한 내용을 담아냈습니다. 지난해 공개한 〈2021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가 '문제 지적'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안 제시'에 나선 겁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WMO가 내놓은 목소리는 무엇인지, 다음 주 연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온, 해수면, 해빙과 빙하 모두 '악화일로'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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