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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다...벤투 감독의 '사람 축구'

입력 2022-12-14 16:47 수정 2022-12-1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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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뭉클해지죠. 벤투 감독도 비슷했습니다. 작별의 순간, 마지막 포옹을 하고서 그 역시 눈자위가 붉어졌습니다. 애써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려 했던 이유는, 최태욱 코치가 너무 펑펑 울었기 때문입니다. 2022년 12월의 어느 밤, 인천공항의 풍경입니다.

마지막은 웃었습니다.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자리, 팬들에겐 웃음을 보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마지막은 웃었습니다.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자리, 팬들에겐 웃음을 보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벤투 감독은 '사람 냄새'와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웃음 짓는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너무 무뚝뚝했고, 항상 뭔가 성이 난 표정이었죠. 표정 없이 그라운드만 응시하는 모습만 남겼습니다. 히딩크 감독만큼 멋진 말로 마음을 훔치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 인터뷰를 활용해 뭔가 메시지를 던지며 대중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과 거리를 뒀습니다. 그의 말은 메마르듯 늘 딱딱했고 건조했습니다. 뭔가 울림을 전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브라질과 16강전이 끝나고 선수들을 위로하는 벤투 감독. (사진=연합뉴스)브라질과 16강전이 끝나고 선수들을 위로하는 벤투 감독. (사진=연합뉴스)
한국에서 마지막 밤, 이별의 순간에 터져 나온 감정은 그래서 색달랐습니다. 벤투 감독이 남긴 것은 축구의 집짓기에 비견되는 '빌드업' 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되돌아보게 합니다.
선수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며 하나의 팀으로서 긴장을 유도했던 히딩크 감독,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카리스마라면 벤투 감독은 그런 타입은 아닙니다. 오히려 축구보다 때론 선수 개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면서, 선수의 마음을 붙잡았던 감독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최근 다큐멘터리 '국대:로드 투 카타르'에서도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난 1월, 두바이에서 시리아와 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을 준비할 무렵 팀미팅 장면이 눈에 띕니다. 이 자리에서 벤투 감독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의 책무는 여러분의 감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면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선수로 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먼저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뚝뚝했던 벤투 감독은 선수들에겐 가깝게 다가섰습니다. (사진=연합뉴스)무뚝뚝했던 벤투 감독은 선수들에겐 가깝게 다가섰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대표팀과 동행했던 이동준과 이동경을 독일 클럽과 계약을 위해 보내준 뒤 내놓은 소회입니다. 사과부터 했습니다. 선수들과 상의 없이 결정했다면서. 그러나 축구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위해 두 선수에게 대표팀을 벗어나 독일에 다녀오라고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대표팀은 당시 홍철이 코로나 19 확진으로 이탈하고,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이 경고 누적으로 나설 수 없어 어수선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시리아전을 준비하던 차였습니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결정을 앞두고 팀보다 선수를 중시하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장면도 잊을 수 없죠. 가나전이 끝나고 심판에게 불같이 항의한 벤투 감독은 결국 레드카드를 받았습니다. (사진=신화통신) 이장면도 잊을 수 없죠. 가나전이 끝나고 심판에게 불같이 항의한 벤투 감독은 결국 레드카드를 받았습니다. (사진=신화통신)
#2019년 1월에도 비슷한 선택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죠. 아시안컵 16강전을 앞두고 벤투 감독은 이청용을 서울에 다녀오게 합니다.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고 오라고 했죠. 잠깐 결혼식만 참석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이런 허락을 해주는 건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 축구의 문화에서. 선수에겐 대표팀 못지않게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죠. 팀을 위해 가족의 중요한 대소사를 뒤로하던 우리 축구의 오랜 관습을 되돌아봤습니다. 선수 개인이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였죠.

4년 전을 기억하나요. 2018년 8월,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4년 전을 기억하나요. 2018년 8월,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벤투 감독이 부임 이후 본인의 기자회견에 다른 코치들을 동행하게 한 장면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감독의 이야기를 코치가 같이 들으면서, 우리 축구가 나아가는 방향을 코치진이 서로 확인하는 기회로 삼았죠. 감독과 코치 사이 위계의 벽을 허물고 같이 하려는 동행의 자세가 마지막 이별의 순간, 최태욱 코치의 눈물보를 터뜨리게 한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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