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걷는 게 쉽지 않은 어르신들이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마음만큼 몸이 안 따라줘서 스스로도 답답하지만, 무엇보다 미안하다는 어르신들의 심정을 이희령 기자가 직접 겪어봤습니다.
밀착카메라로 보시겠습니다.
[기자]
횡단보도를 건너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수십 초입니다. 이 시간이 유독 짧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인들에게 횡단보도는 얼마나 안전한 공간일까요. 밀착카메라가 돌아보겠습니다.
서울 탑골공원, 빠르게 걷는 사람들 사이로 노인들이 천천히 걸어옵니다.
아직 다 건너지 못했는데 이미 바뀐 신호. 차량과 오토바이가 바로 뒤를 지나갑니다.
열심히 걷지만, 빨간불이 되고서야 건넜습니다.
[노인 보행자 : 불안하지, 중간쯤 왔는데 꺼졌으니까. 그냥 걸어가야지. 걸어가면 (차 쪽으로) 손 들고 미안하다고.]
[박상근/서울 하계동 : (국가유공자인데) 부상당한 게 있어서 걷기가 힘들어. 신호등이 조금 길어지면 좋겠다.]
노인과 청장년의 걷는 속도를 재봤습니다.
노인은 평균 41초 청장년은 평균 29초.
노인이 12초 정도 더 걸렸습니다.
제 뒤에 있는 횡단보도는 9개의 차로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었는데요.
제가 평소 걷는 속도대로 걸어보면요. 21초가 걸립니다.
이 장비는 노인 체험 장비입니다.
보행이 쉽지 않은 80대 노인의 신체 조건을 갖추게 해주는 건데요.
이 장비를 입고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어떨지 직접 한번 착용해보겠습니다.
횡단보도 앞까지 걸어오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벌써 몸이 많이 무겁고요.
시야가 좁아져서 잘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빨리 걷기가 도통 쉽지 않습니다.
아직 다 건너지 못했는데 신호가 바뀝니다.
도착했는데 46초 걸렸습니다. 두 배 넘게 걸린 겁니다.
이번엔 또 다른 횡단보도에 와봤습니다. 길이가 상당히 긴데, 이렇게 걷다가 신호가 바뀌거나 숨이 차서 멈추고 싶어도 중간에 보행섬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서, 이렇게 차로 한복판에 서 있어야 합니다.
횡단보도 길이는 70m 가까이 되는데 보행신호는 56초입니다.
1초에 1m 넘게 걸어야 하는 겁니다.
[함옥윤/경기 하남시 : 빨리빨리 가야 하니까, 겁나지.]
대학생 2명도 같은 장비를 입고 이 횡단보도를 건너봤습니다.
[한지운/대학생 : (시야) 폭이 너무 좁아서 좌우를 확인하기가 많이 힘든 것 같습니다.]
처음 출발한 학생 한지운 씨, 신호가 끝난 직후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1분 3초가 걸렸습니다.
[한지운/대학생 : 일단은 생각보다 시간이 엄청 모자란 게 스스로도 느껴져서 마음도 조급하게 되는 것 같고.]
다음으로 출발한 장원호 씨,
[장원호/대학생 : 그래도 제시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걸어갑니다.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뀐 뒤에도 한참 더 지나 도착합니다.
1분 10초가 걸렸습니다.
[한지운/대학생 : 이 정도면 갈 만하겠지 했는데, 마음은 급한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장원호/대학생 : (어르신들이) 그냥 느릿느릿하게 걷는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직접 체험을 해보니까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정말 그렇게 안 되셨던 거구나.]
시간 안에 건너야 한다는 부담감, 지금 당장 느끼지 못해도 언젠간 우리에게 다가올 이야깁니다.
안전한 보행 환경과,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 습관. 모두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VJ : 최효일 /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인턴기자 : 이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