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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지킨 우리 땅"…일본 트집 다음날 '독도 대첩' 추모

입력 2021-11-1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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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953년. 일본 함선은 수시로 독도 영해를 침범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관심이 독도에까지 못 미치자 호시탐탐 침탈의 기회를 엿본 것입니다.

홍순칠 대장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홍 대장은 6·25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고향인 울릉도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우리 땅 독도는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참전 용사들과 울릉도 주민 등 33명이 뜻을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1953년 4월 2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창설됐습니다.

포대경으로 동해를 감시하는 홍순칠 대장. 〈사진=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포대경으로 동해를 감시하는 홍순칠 대장. 〈사진=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의용수비대는 무장 상태가 열악했습니다. 가늠자가 없는 박격포와 기관총 2정과 소총 10정 등이 가진 무기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다섯 차례에 걸친 일본 함선의 불법 침입을 잘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1954년 11월 21일. '독도 대첩'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일본의 무장 순시함 헤쿠라호와 오키호가 독도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중무장을 한 채 독도 상륙을 시도했습니다.

의용수비대는 목숨을 걸고 이를 막았습니다. 가늠자가 없는 박격포였지만 정확하게 일본 순시함을 타격했습니다. 기관총과 소총으로 조준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결국 일본 함정들은 독도에 발 한 번 제대로 딛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독도 대첩' 이후 일본이 다시는 독도를 불법 침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독도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 받아 나라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독도의용수비대원. 〈사진=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독도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 받아 나라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독도의용수비대원. 〈사진=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우리 정부는 매년 11월 21일을 '독도 대첩일'로 지정했습니다. 해마다 '독도 대첩일'에는 대전 현충원에서 추모식을 열고 희생된 대원들의 넋을 기립니다.

특히 올해는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이유로 일본이 한·미·일 외교차관 공동기자회견을 거부한 상황에서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독도 수호를 위해 헌신한 독도의용수비대 및 유가족의 예우와 명예 선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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