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번 수능 시험의 당초 지원자 수는 50만9천여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험을 치른 학생은 45만2천여 명으로 10%가량이 나름의 사정과 이유로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수험생들은 어제(18일)도 필적 확인을 위한 문구를 똑같이 적었는데 열심히 공부하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도 힘겹게 싸워야 했던 학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됐을 한 수녀의 기도문과 같은 시구였습니다. 수능 시험을 치렀거나 치르지 않았거나 또는 대학 대신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우리 모든 학생들의 멋진 비상을 응원합니다.
이선화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올해는 이 열두 글자였습니다.
['작은 노래2' - 이해인 : 어느 날 비로소 큰 숲을 이루게 될 묘목들.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갓 태어난 어린 새들.]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담은 이해인 수녀의 시집, '작은 기도'에 수록된 시입니다.
[이해인/수녀 : 내가 쓴 시가 아닌 줄 알았다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구절이라서. 모든 수험생이 이걸 썼다고 생각하니까 내 가슴이 막 울렁거리더라니까.]
내내 마스크를 쓰고, 가슴 졸였던 한 해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제 넓은 하늘로 날아오를 일만 남았습니다.
[이해인/수녀 : (시험장에서) 이렇게 쓰는데 종을 쳐서 불안한 그런 꿈을 아직도 꾸거든요. 정말 그렇게 힘들면 나한테 편지라도 좀 써라 하고 싶을 만큼 굉장히 격려해 주고 싶은…]
필적 확인 문구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2006년 도입됐습니다.
모두가 일제히 시험을 쳐야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라며 지난해에는 나태주 시인의 사랑시가,
['들길을 걸으며' - 나태주 (2020년) :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한 주 연기된 2017년엔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이 문장이 놀란 수험생들의 긴장을 풀어줬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수험생들을 위로할 수 있는 문구이되, 필체가 드러나는 ㄹ, ㅁ, ㅂ이 두 번 이상 들어가야 합니다.
매 시간 또박또박 적어내려가야 하는 필적 확인 문구.
같은 해 시험을 치른 또래들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한편, 재치있는 패러디로도 기억됩니다.
57년 전 수녀가 됐고 13년 전 직장암 수술을 받았던 일흔여섯 시인은 수험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해인/수녀 : 우리가 이 시간을 이렇게 함께 살아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참 장하다. 시험을 잘 쳤든 못 쳤든 쳤다는 것만 해도 훌륭하다.]
(영상그래픽 : 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