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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만 100분…'26회 BIFF' 봉준호X하마구치 류스케, 역대급 韓日 영화인 만남

입력 2021-10-07 19:10 수정 2021-10-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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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만 100분…'26회 BIFF' 봉준호X하마구치 류스케, 역대급 韓日 영화인 만남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났으니 할 이야기도 넘쳐났다.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부산에서 영화제의 정체성에 걸맞게 오로지 영화 이야기를 꽃피우며 100분을 꽉 채운 대담을 완성했다.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X 봉준호 감독' 스페셜 대담이 열렸다. 이날 대담은 봉준호 감독이 끝없이 질문하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돼 영화 팬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질문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나도 묻고 싶은게 많은데…"라며 봉준호 감독의 진행 아닌 진행에 이끌려가 웃음을 자아냈다. 봉준호 감독은 "오늘은 본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어느 때보다 상기된 표정으로 현장에 등장한 봉준호 감독은 시작부터 "나 자신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직업적 비밀을 캐내고 싶은 많은 욕심을 갖고 있다. 아마도 (오늘 대담이)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지리라 생각한다. 관객 분들이 질문할 시간이 있을가 싶다. 내가 미친듯이 계속 질문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말한 바를 명확히 지키는 봉준호 감독은 100분이 넘는 시간동안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탈탈 털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대담 과정에서 "점점 내가 옷을 한장 한장 벗는 느낌이 든다"며 혀를 내둘렀다.

시네필들에게 이날 하루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날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두 작품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이 줄줄이 상영됐고, 작품 별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됐다.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은 두 작품을 포함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그의 영화 세계를 뜯어보는 종합선물세트가 됐다.

패키지를 함께 한 봉준호 감독 역시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창작자의 깊은 밑바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다. 이 곳에 앉아 계신 분들도 하루종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전체 패키지를 모두 찾아 볼 정도로 이미 숙련된 영화 마니아 분들이 모이셨을 것이라는게 내 추측이다. 때문에 약간의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오로지 영화을 교집합으로 두 감독은 깊이있는 대화를 나눴고, 영화 팬들에게는 꿈과 같은 최고의 추억이 됐다.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유의 자동차 신과 대화, 대사, 캐스팅과 배우들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다양한 질문을 쉼없이 던졌다. 봉준호 감독의 평이 반영된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배우들에 대한 감상은 배우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 감독의 질문에 "정말 감사하다"고 여러 번 인사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디테일한 답변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두 감독은 더위에 지쳐하면서도 대담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 서로의 이야기에 흥미로워했다.

이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에서 모두 눈에 띄는 자동차 신과 대화들에 대해 "내가 대사를 쓰는 것 밖에 잘 못한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도 대사를 쓰는 작업에서부터 밖에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 내 특징이자 약점이라는 생각도 한다. 대사를 쓴다고 할 때, 움직임이 있지 않으면 재미가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학생 때부터 했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들이 영화에 녹아드는것 같다. 특히 자동차로의 이동은 공중에 붕 뜨는, 말랑말랑한 시간이자 언젠가는 끝날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이 말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작업 방식을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을 논하며 "자동차 신을 가장 독특하고 몽환적이면서 시그니처처럼 찍는 분이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이다. 최근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님의 '스파이의 아내' 각본을 쓰기도 했는데, 평소에도 그 분을 영화적 멘토로서 영감 받고 따르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아예 작업을 같이 했으니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도 던졌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은 스크린에 자동차를 투영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차는 멈춰있는 상태에서 찍는다. 내가 차가 주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찍는 이유 중 하나가 어딘가에서 '구로자와와 달리 해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수 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분이다. 나에게는 대학원 스승님이기도 했는데, 거기에서 배운 것이 '구로자와를 따라하거나 흉내낸다고 하면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배움이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봉준호 감독에게 ""봉준호 감독도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지 않냐"는 질문을 던졋고 "워낙 대단한 분이고 그의 작품 세계 자체가 좋다. 아시아에서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이 팬클럽을 만든다면 나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팬클럽 회장 자리를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고 단언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특히 '큐어'라는 작품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살인의 추억'을 준비할 때, 지금은 살인범이 교도소에 있지만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영구 미제 사건으로 관련 형사를 만난다거나 주민, 기자만 리서치 할 수 있었지 가장 만나고 싶은 범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상상을 많이 했다. 그때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에 나오는 살인마 캐릭터를 보면서 실제 세계에서는 만날 수없었던 연쇄살인범에 대한 해소를 한 것 같다. '저런 인물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마미야라는 이름의 살인마가 경찰이나 일본 관료들과 하는 기막히고 이상한 대사들이 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홍상수 감독에 대해 언급하며 "내가 여기에 있어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 자리에 내가 아니라 홍상수 감독이 있었다면 에릭 노메르 감독을 빼놓지 않고 말했을 것 같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말한 에릭 노메르 감독에 대한 설명이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한 답변도 되는 것 같은데, 홍상 수 감독도 아마 '극장전' 때부터 시그니처 촬영 방식인 줌 기법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님도 많이 좋아하지 않냐"고 물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너무 좋아한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보면서 '정말 현대 거장이구나' 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드라이브 마이 카' 속 빨간 차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스태프와의 협업을 강조하자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에피소드로 화답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서 거실 난투극을 찍을 때, 스태프들이 LP 소품 30개 정도를 갖다 놨는데 불현듯 '저 중에서 음악을 골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뒤적여보니 깐소네 컨플레이션 앨범이 있었고, 내 귀에 꽤나 익었던, 아버지가 과거에 들었던 것 같은 곡이 있었다. 그것이 이탈리아에서는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고 하더라. 비교하자면 이탈리아 영화가 서울에서 개봉했는데 남진, 나훈아 노래가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분이 이탈리아 국민 가수라고 하더라.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그 분을 만나기도 했다. 이것 역시 결과적으로는 스태프가 소품으로 LP를 추려왔는데 발견한 것이다. 영화는 분명한 공동 작업이자 예기치 못하게 남겨지는 흔적이 있다는 것을 또 한번 묘미로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후 5시에 시작한 두 감독의 대담은 무려 6시 40분이 되어 끝났다. 이후 이날 행사에 참석한 200명의 관객 중 단 두 명이 질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행사 중 하나로 꼽혔던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만남은 두 감독의 영화만큼, 한 편의 영화와 같은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했다.

부산=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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