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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6주년I왜,독일②] 100세 나치 부역자 처벌…교과서엔 히틀러 만행 낱낱이

입력 2021-08-17 18:28 수정 2021-08-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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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8·15 광복 76주년입니다. 일본은 아직 책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적극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그래서 JTBC는 같은 전범국 독일을 다시 주목했습니다. 망각하는 국가와 반성하는 나라. 이 차이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저희 취재진이 독일 현지를 찾아 그동안 덜 알려진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 100세 노인, 70년 전 '나치 부역' 혐의로 재판 중
독일 내 전범 처벌은 계속 진행중이다. 지난 2016년 법정에 들어선 라인홀트 하닝(당시 94세). 아우슈비츠 경비병으로 근무할 당시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았다.독일 내 전범 처벌은 계속 진행중이다. 지난 2016년 법정에 들어선 라인홀트 하닝(당시 94세). 아우슈비츠 경비병으로 근무할 당시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았다.
법정에 들어선 피고인은 100세 노인이었습니다.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재판정에 선 건 74년 전 일 때문입니다. 지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했습니다. 이 기간에 수용소에선 3518명이 학살됐습니다.

이 노인, 직접 사람을 숨지게 하거나 살인 작업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잡일을 하고 수용소 곳곳을 지켰을 뿐입니다. 하지만 독일 검찰은 '살인을 도운' 걸로 판단하고 3518건 살인 종범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재판은 오는 10월부터 시작합니다.

독일에서 전범 처벌과 추적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전쟁 범죄에 크건 작건 역할을 했다면 끝까지 찾아내 책임을 묻는 겁니다. 전범 처벌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 '히틀러 후계자'도 1946년 뉘른베르크에서 처형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기념관 내 600호 법정.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실제로 열렸던 곳이다. 현재는 일반 법정으로 사용된다.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기념관 내 600호 법정.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실제로 열렸던 곳이다. 현재는 일반 법정으로 사용된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참석한 나치 전범들 모습.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참석한 나치 전범들 모습.
아직 이어지고 있는 전범 처벌, 시작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였습니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첫 전범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이 재판정은 그대로 기념관으로 남았습니다.

나치 정권 핵심 24명이 기소돼 19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중 히틀러의 후계자로 불렸던 괴링, 외무 장관 리벤트로프 등 12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히틀러는 체포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슈테판 립셰어 뉘른베크르 전범재판기념관 연구원.슈테판 립셰어 뉘른베크르 전범재판기념관 연구원.
취재진은 슈테판 립셰어 연구원을 만나 기념관을 세운 이유를 물었습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범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보여줍니다. 처벌은 정의의 일부이며 우리의 삶의 일부입니다." -슈테판 립셰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기념관 연구원

■ 도쿄 전범재판의 한계…전범들,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기념관 내 일본 도쿄 전범재판 관련 전시.뉘른베르크 전범재판기념관 내 일본 도쿄 전범재판 관련 전시.
기념관 한쪽엔 일본 도쿄 전범재판 관련 자료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도쿄 전범재판은 1946~1948년 진행됐습니다. 일본 A급 전범 28명이 기소됐고, 도조 히데키 등 7명이 사형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도쿄 전범 재판 판결은 매우 비판받았습니다. 처벌이 너무 약했습니다." -슈테판 립셰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기념관 연구원

일본군 총원수인 히로히토 일왕은 기소 단계서부터 빠졌습니다. 그나마 이 재판이 사실상 일본 전범을 처벌한 처음이자 마지막 처벌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나머지 모든 전범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재판인 겁니다. 지금까지도 전범 추적과 처벌을 이어가는 독일과는 완전히 반대 길을 택했습니다.

지난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특히 사형된 7명은 일본 우익의 성지로 여겨지는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됐습니다. 광복절이던 지난 15일 아베 전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 전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이 참배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현재 일본 총리는 지난 10월과 올해 4월에 이어 이번에도 공물을 보냈습니다. 국제적인 비난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독일 역사 교과서엔 "600만 유대인 학살" 솔직 기록

독일이 역사에 사죄하는 방법은 '처벌' 말고도 또 있습니다. 과거 잘못을 미래세대에 숨김없이 전하는 겁니다. 취재진은 베를린 현지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교과서를 살펴봤습니다.

현지 9~10학년용(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 역사 교과서.현지 9~10학년용(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 역사 교과서.
나치 태동부터 전개, 부흥, 몰락의 과정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 범죄 내용이 교과서 절반 가까이일 정도입니다. 독일이 저지른 만행을 구체적으로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독일인 대부분이 이런 범죄를 알면서도 눈감았다고도 지적합니다. 모두 공범이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화물 마차에 빽빽하게 실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중략) 가스를 마셨고, 시체는 불태웠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쓰러질 때까지 일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영양실조, 질병, 학대, 고문으로 숨졌다." -독일 역사 교과서 중

취재진이 만난 독일 시민들, 스스로 민낯을 드러내는 이런 교육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잊게 되고,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코넬리우스 셰펠, 독일 시민

■ "군함도에서 삶의 수준 높아" 왜곡하기 바쁜 일본

일본 지유샤 중학교 역사 교과서.일본 지유샤 중학교 역사 교과서.
그러면 일본 역사 교육은 어떨까. 지난 3월, 일본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36종이 문부성 심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교과서 모두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했습니다. 영토 확장 야욕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거나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고도 서술했습니다. 반면 강제동원과 위안부에 대한 내용은 축소하거나 아예 생략했습니다.


극우 역사단체 회원이 참여한 지유샤 중학 교과서는 아예 역사 왜곡을 시도합니다. 조선인 1000명이 끌려가 노역에 시달렸던 대표적인 강제동원지, 군함도에 대한 서술입니다.

"하시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본토보다 높았고, 탄광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은 서로 도우면서 온정을 나누면서 살았다." -일본 지유샤 중학교 역사 교과서 중

〈관련 기사 = 독도·군함도 '왜곡 교과서'에도…미쓰비시 물밑 지원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4033〉

■ 오늘날 독일 만든 건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

"독일 역사 교육이 갑자기 있었던 게 아니라 지난한 과정의 토론, 논쟁을 통해서 현재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

독일도 처음부터 부끄러운 과거를 그대로 교과서에 기술했던 건 아닙니다. 사과와 반성도 패전국으로서 자의 반 타의 반 선택일 수 있습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피해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잊으려는 국가와는 분명히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일본이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산 교훈을 언제든 배울 수 있습니다.

강희연 기자 kang.heeyeon@jtbc.co.kr

(제작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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