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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다단계처럼 조사·취재…진심 통해 감사"

입력 2021-08-15 15:56 수정 2021-08-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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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모가디슈' 성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전해 드립니다."

류승완 감독이 돌아왔다. 스케일, 에너지, 색깔 모두 그대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치기 직전 모로코로 날아갔던 류승완 감독은 4년만에 관객들이 열광할만한 작품으로 완벽히 복귀했다. 영화계 입장에서는 현 시국 개봉 자체가 고마운 '모가디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지만 '모가디슈'는 당당히 출사표를 던지고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의 최고 기록을 줄줄이 써내려가고 있다. 기록보다 더 감사한건 역시 관객들의 진심어린 호평과 성원. 류승완 감독은 어떤 사족보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더 많이 표하고자 노력했다. 현재 촬영 중인 차기작 '밀수' 현장이 한창 돌아가고 상황에서 뒤늦게 인터뷰를 택한 것도 결국 감독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고마움을 직접 전달하고자 한 의지였다.

관객들의 가슴을 오랜만에 뜨겁게 만든 영화에도 그 진심은 모조리 담겼다. 4년 전 '군함도' 이후 또 한번 시대적 실화를 바탕으로 탈출이라는 소재를 택한 류승완 감독은 이번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담백해서 더 먹먹한 영화적 재미를 완성했다. 약 300억원의 제작비가 아깝지 않은 결과물이다. "무의식의 결정"이라며 본인이 직접 연출한 각 영화들과의 운명적 만남을 정의 내린 류승완 감독은 100% 해외 로케이션이라는 시작점부터 다른 영화들과는 다소 달랐던 '모가디슈'와의 인연을 상세하고 솔직하게 아낌없이 털어놨다. 다단계 수준으로 조사하고 또 조사하고 취재했던 '모가디슈' 실화의 모든 것, "다시 도전하라 그래도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좋은 기억만 남긴 모로코의 시간, 감독으로서 울컥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배우들의 앙상블까지 자랑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이젠 최악의 시기, 기록될만한 도전 정신으로 관객들이 기억할만한 최고의 결과물을 내 놓은 '모가디슈'가 류승완 감독에게는 자랑거리 그 자체로 남게 될 전망이다.

**이 기사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코로나19 시국, 모든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되고 있고, 그 사이 올림픽까지 있었다. 이 와중에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한편으로는 '기적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개 후 많이 응원해주시고, 관객 분들께서도 좋아해 주셔서 우리가 잘해서 그랬다기보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잘 된 것 같다'는 마음이 크다. 요즘은 하루하루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촬영은 무사히 마쳤지만 개봉까지는 어려움이 있었다.
"많은 분들이 지난해 여름 개봉할 것이라 이야기 했는데 우리는 공식적으로 어떤 언급을 안했다. 사실 지난해 여름에도 작업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떈 개봉을 할 수 없었고 '겨울은 어떨까' 했는데 영화라는 것이 '어떤 계절에 보느냐'도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코로나19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나 역시 개봉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작비에 따른 흥행 부담도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
"맞다. 제작비 굉장히 많이 들었다. 하지만 기록적인 흥행 스코어를 만들려고 한 작품은 아니다. 그런 욕심은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비싼 돈을 준다 하더라도 스트리밍(OTT)으로 이 영화를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무조건 극장에서 체험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 극장 개봉을 끝까지 고수했다. 이번 여름 개봉도 당연히 고민됐다. 하지만 흥행 스코어라는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온전히 즐기는 관객이 있다면 그 관객을 위해서라도 개봉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사실상 첫 대작으로 물꼬를 튼 셈이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 영화계가 정말 힘들다.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후반 작업하는 스튜디오들의 하드디스크가 꽉 차 난리다. 우리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잘못돼 봐야 어디까지 잘 못 되겠어'라는 마음으로 개봉을 추진했다. 다행히 우리의 진심이 통한 것 같아 대단히 감사하다."

-영화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는 것도 흡족한 분위기다.
"칭찬 받으면 다~ 좋다.(웃음) 배우 분들 연기 좋다고 할 때도 좋고, 로케이션과 풍광 부분에 대해 좋은 말씀 해주신 것도 좋다. 공들인 부분에 대해 좋은 말씀 해주시면 뭐든 안 좋을 수 없다. 정말 모든 평이 다 좋았다."

-관객들을 이끄는 '모가디슈'의 힘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하하. 열심히 만들어서 좋게 봐주시는 것 아닐까.(웃음) 우리 배우 분들 연기 뛰어나고. 전 스태프가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고. 그러한 태도나 마음들이 잘 찍혀서 전달 된 것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이심전심이다."

-전 특수관도 '모가디슈'를 위해 열렸다. 감독으로서 추천하는 포맷이 있다면,
"한 포맷만 꼽기에는 다른 포맷들에 미안하고 또 각 포맷의 강점이 다 다른데…. 하하. 이번에 모든 포맷 담당자 분들이 '모가디슈'를 위해 애써주셨다. 일단 아이맥스(IMAX)는 내가 찍었는데도 나 조차 처음 보는 장면들이 보여 놀랐고, 돌비 애트모스는 실제 비행기 안에 있는 기분이 들면서 음악 파워가 달라져 만족스러웠다. 스크린X는 배경 확장 뿐만 아니라 특정 장면들에 있어 공들여서 연출된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굉장히 신경 많이 써줬구나' 싶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각각 다른 장점들이 있어서 '무엇이 가장 좋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다. 개성들이 아주 강하다. 때마다 마치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업은 절대 아니다. 하하하."

-'군함도' 이후 4년만에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그 감회도 남다를 것 같은데.
"음…. 시간이 정말 금방 지나가더라. 새 작품을 선보일 땐 항상 긴장되고 떨린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한마디로 설명 드리기가 힘들다."

-'군함도'에 이어 또 한번 탈출과 생존을 다뤘다.
"그 부분 역시 딱 떨어지는 답을 드리기가 힘들다. 화장실에서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나를 잡아 끌 때도 있을 만큼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의식의 작용으로 이끌어지는 것 보다 무의식에 끌려가는 경우가 있어서…. 다만 내가 '고립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단 뭐가 있는 것 같다."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모가디슈'는 덱스터스튜디오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다.
"덱스터가 갖고 있던 각본을 의뢰 받았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과거 이 소재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덱스터에 판권이 있다는 것 알고 '내 것이 아닌가보다' 싶어 오랜시간 관심을 끊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나에게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받게 된 각본은 지금 완성된 영화와 방향이 달랐다. 영화가 갖고 가는 목표 지점은 같지만 가는 길이 되게 달랐다. 의뢰을 받은 후 '각색과 영화를 완성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율권을 준다면 해보겠다'고 했는데, 덱스터에서 그 지점에 대해 '오케이' 사인을 줬다. 그때부터 전면적으로 다시 취재하고 만지면서 지금의 틀이 완성됐다."

-원래는 영화 제목도 '탈출'이었다.
"상업적으로 보면 '탈출'이라는 제목이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작진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 해 주기도 했다. 근데 난 이 이야기의 제목을 '탈출'로 딱 정하는 순간, 관객들이 자칫하면 미리 자신들의 원하는 영화를 그리고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가디슈' 당연히 어렵다. 처음엔 '모가디슈'라고 하니까 내가 '짝패'를 만들고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충청도와 관련된 무언가로 생각하기도 하고 '모가됐슈?'라면서 말장난을 치기도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감독으로서 고집했던 부분이다."

-억지 신파가 없다는 점이 더 큰 먹먹함을 남겼다.
"너무 드라마틱한 소재일 수록 만드는 사람들의 대상에 대한 거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항상 '이성적으로 사람과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실제 사건이 정말 말도 안되게 영화 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오히려 영화적으로 조율하기도 했다."

-영화적 상상력은 어느 정도 가미된 것일까.
"일단 남북 대사관 사람들이 탈출할 때 책을 덮어서 방탄차로 만드는 것. 실제 인물들은 정부군과 반군 모두에게 오해받아 사격을 받았다. 근데 치열한 전쟁 상황에서 대사관 앞 50m까지가 최소 마지노선이었다고 하더라. 50m 앞까지 쫓다가 차량이 50m 안으로 돌파하면서 사격을 멈췄다고. 처음엔 '이렇게 했는데 한 사람만 죽었다고?' 싶었다. 너무 가짜같은 현실을 경험하면 '과연 이 상황을 믿어줄까?' 하는 의구심부터 생긴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볼 때 설득력이 있을까'를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영화같은 현실이 영화가 됐다.
"조사를 해보니 AK 소총은 반동이 심해서 명중률이 낮더라. 당시 정부군과 반군 모두 훈련이 잘 안 된 상태라 총알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총알도 전화번호부 책 한권을 뚫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런 자료를 찾게 되면서 '책을 활용하면 영화 안에서 사실감을 높일 수 있겠다' 싶어 설정했다. 인물 구성에 있어서는 첨가되고 빠진 것들이 여럿이다. 실제로 북한 대사관은 8번 정도 습격을 당했는데, 같은 장면을 반복시키고 힘든 상황만 계속 보여주면 관객들도 지쳐할 것 같아 압축했다. 한국 대사관에서는 12일간 같이 지낸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 시간도 줄였고, 남북 대사들의 만남도 각색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취재 분량도 상당했을 것 같다.
"맞다. '모가디슈' 뿐만 아니라 매번 영화를 만들 때 은근히 취재를 엄청 한다.(웃음) 연출팀이 하는 첫번째 일이 관련된 주변부 상황들에 대해 인터뷰 하고, 자료를 찾는 것이다. 엔딩크레딧을 보면 우리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자료들이 쭉 나온다. 외교관, 종군기자, 북한 관련 전문 기자 등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고, 추천 받은 서적과 자료를 끊임없이 구해 읽었다. 그래도 부족한 것들이 나오면 흡사 다단계 하듯이 소개받고 소개받아 관련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만났다. 100%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 기자 분들이 취재하는 흉내를 내면서 작업했다."

-모로코 촬영은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을 것 같은데.
"힘든데 좋았다. 다시 가서 하라면 또 할 수 있다. 하하. 의외로 돼지고기 못 먹는게 진짜 힘들었는데 밥차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베를린' 때 현지에서 음식 고생을 꽤 많이 해 이번에는 무조건 밥차를 공수했고 도움이 많이 됐다. 음…. 그리고 국적을 떠나 영화라는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언어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다. 나를 비롯해 집에서 말 안 듣는 사람들이 영화 하겠다고 나와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많다. 하하하. 현지 스태프들과 손발을 맞추는데도 처음엔 당연히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정도 지나니까 서로 손짓 발짓 하면서 알아서 잘 살게 되더라.(웃음)"

-기본 남북 대사들의 탈출 이야기를 담았지만 소말리아 내전 상황도 돋보인다. 현지 배우들도 대규모로 참여했고.
"우리가 찍은 곳이 우리나라로 따지면 속초 정도인데, 대도시와 다르게 인력 수급이 힘들었다. 조감독들이 일일이 오디션을 보고 사람들을 모아 통제하며 블로킹을 짰다. 그 모든 것을 우리 팀이 다 했다.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일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해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착하고 열정적이었다는 것, 환경이 좋고 안전하다는 것, 태양이 항상 일정하게 뜨고 져서 촬영 계획을 세우는데 피곤하지 않았다는 것 등 돌이켜보면 힘든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훨씬 많다."

-허준호도 현장에 대한 감탄을 금치 못하더라. 그렇게 만족스러웠다던데.
"배우들에게는 그저 좋은 면만 보여주는 것이다. 뒤에서 준비 안 된 것들은 하나도 안 보이게 감추고. 하하. 허준호 선배가 도착한 첫날이 나도 기억나는데,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모로코까지 가는 여정이 만만치않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도 현장이 있는 곳까지는 험한 길을 7시간 넘게 건너와야 했다. 도착하면 바로 쓰러진다. 선배님도 어렵게 도착하셔서 다음날 아침 준비한 현장을 둘러 보셨는데 좋아하시는게 말 그대로 눈에 보였다. 우리 팀을 위한 텐트부터 차량 통제까지 80년대, 90년대 험악한 상황에서 해외 로케이션을 많이 다니셨다 보니까 지금의 현장은 더 좋아보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웃음) 훨씬 경험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니까 나도 감사하더라."

-심지어 현재가 아닌 80년대 말 90년대 초 과거다. 그 시대를 완벽하게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도 눈에 띄었다.
"미술 감독이 노력을 많이 했다. 해외 소도구를 비롯해 80년대 한국 소품을 기가막히게 구해냈다. 의외의 것들이 CG고 '저건 CG겠지' 할만한 것들은 대부분 그냥 촬영했다."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의 명연기와 앙상블이 함께 빛난 작품이기도 하다.
"나 역시 또렷하게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다. 김윤석 선배가 조인성·구교환 배우가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조적으로 웃는 것도 아니고 인상을 쓰는 것도 아닌 표정을 탁 내비칠 때가 있다. 그 촬영날이 내 생일이었고, 그 신의 마지막이었다. 내 생일에 찍는 신의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내가 생일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너무 신났다. 그리고 조인성 씨가 '유 아 페이보릿 시가렛~'하는데 여러분이 영화를 보며 느낀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영어 대사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빵 해소를 하고 돌파를 해버리니까 그 쾌감이 좋았다. 허준호 선배의 '한대사 갈 곳이 없소' 대사는 정말 영화 찍는 기분이 났다. 스크린에서 그 얼굴을 본다는 상상을 하면 현장에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우리 배우들 모두가 되게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이 많은데, 눈빛 행동 하나하나 맞춰 줄 때 그런 쾌감이 없더라. '영화 감독 하는게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세상에서 이 모습을 내가 제일 먼저 보고 있다니' 불현듯 체감될 때다. 진짜 좋았다."

-디테일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처음 조인성이 등장할 때 담배신부터 흥미로웠다.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항에서 혼자 오래 기다린 상황 아닌가. 사람이 혼자 있으면 별짓을 다하기 마련이다. 담배 꽁초를 아무렇게 늘어뜨려놓는 것보다 있는걸로 장난도 치고, 그 사이 아프리카 지역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나도 흥미롭더라. 거북이가 다가오는 것을 탁 돌려주는 것. 인물을 설명하는데 있어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깻잎 신도 인상 깊었다. 어쩌면 가장 불안한데 가장 평화로운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깻잎을 비롯해 식탁 장면의 모든 디테일은 시나리오부터 담겨 있었다. 내 개인적인 우리 밥상 문화의 느낌과 경험을 녹여내게 된 것 같다. 림대사(허준호)가 자기보다 조금 떨어져 있는 김치를 잡으려다 촛불 때문에 뜨거워서 놓치면 한대사(김윤석)가 보지도 않고 김치를 탁 밀어준다. 남북 사람이 같은 반찬으로 손을 내밀었다 떼기도 하고. 사실 그건 어린시절 할머니와의 경험담이다. 장조림에 젓가락이 가면 장조림을 내 앞에 놓아주셨고, 김치로 손이 간다 싶으면 장조림과 김치 순서를 바꿔 주셨다. 치기어린 마음에 할머니에게 반항하려고 일부러 멀리 있는 반찬을 집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모든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더라. '베를린'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하정우와 전지현이 밥을 먹는 신에서 지현 씨에게 '반찬을 슬쩍 밀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요청했었다. 깻잎도 혼자 먹으려고 하면 잘 떼어지지 않는데 슬쩍 잡아주기만 하면 쉽게 먹을 수 있다. '남북이 언어 공유 뿐만 아니라 먹고 사는 것도 공유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따뜻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그런 기억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북한 대사는 자막 처리했다.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베를린'을 만들고 '북한 사투리가 잘 안 들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북한에서 쓰는 단어와 어투, 사투리 억양 등이 점점 낯설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렇다면 배우들에게 이도 저도 아닌 사투리를 쓰게 하는 것 보다 일단 말하게 하고 자막으로 또 처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베를린' 작업 때 한석규 선배님께서 아드님이 뉴스에서 나오는 북한 사람들 인터뷰 보다가 '저 나라 사람들은 왜 우리랑 같은 말을 써요?'라는 말을 해 되게 충격 받았다고 하신 적이 있다. 분단 이후 세대가 몇 번이나 바뀌지 않았나. '지금 젊은 세대들은 북한을 타국으로 인식할 수도 있겠구나. 북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분단 상태에서 존재하는 그 자체로 접근한다면 이 영화가 북한 외교관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 시키는데 있어 새로운 시선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고 적용시켰다."

-대사관 앞 시위 진압 장면은 우리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연상되기도 했다.
"우리가 아마도 우리 현대사에서 그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무의식 중에 작용한 것일 수도 있고. 근데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너무 연출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방식으로 완성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연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기억이 없거나 아니면 전혀 모르는 분들은 다른 식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상황 자체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기본 느낌은 비슷할 것 같다. 실제 우리가 겪었던 과정의 유사점도 있고, 여성과 아이들의 고통 등 분쟁 지역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행위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은 폭력성과 야수성을 우리 스스로 제어하지 않는 한 언제든 반복될 것이라 생각한다."

-총을 든 아이들의 모습도 슬펐다.
"감독의 의도가 중요할까. 총을 든 아이들의 모습….영화를 보면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밀수'다. 현재 촬영에 한창인데.
"70년대 서해안 군천이라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찍고 있다. 일단 당장의 작품이 제일 중요하긴 하다. '모가디슈'를 해보고 나니까 국내든 해외 어디에서든 영화는 찍을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모가디슈'가 300만 이벤트로 생각해둔 것이 있을까.
"일단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끝나야 관객 분들도 직접 만날 수 있을텐데 지금은 모든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그냥 우리까리 서로 전화하고 좋아할 것 같다. 하하. 아직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로 4년만에 완벽히 스크린 복귀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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