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우리 헌법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합니다만, 과연 장애인이 느끼기에도 그럴까요. 장애가 있거나 병에 걸려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 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후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후견을 받는 사람의 취업을 가로막는 법령이 우리나라에 무려 200개가 넘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 연속 보도, 오선민 기자입니다.
[기자]
지적장애인 A씨는 사회복지사를 꿈꿨습니다.
[A씨 : (사회복지사가 돼서) 저처럼 어려운 사람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평생교육원에서 강의 듣고, 120시간 실습을 하고.]
이렇게 2년을 준비했습니다.
[A씨 : (실습일지도 다 본인이 쓰신 거예요?) 네 제가 다 컴퓨터로 작성하고, 8시간 동안 일했던 거.]
사회복지사를 하는데 문제가 없는데도 A씨는 자격증을 받지 못했습니다.
[A씨 : (신청이) 안 된다고 딱 문구가 나오더라고요. 피한정후견인(한정후견을 받는 사람)은 결격 사유라고.]
관련법에서 후견을 받는 사람은 사회복지사가 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염형국/변호사 : (보호받아야 할) 내 권리가 아예 결격으로 작용한다? 자기결정권에도 부합하지 않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봅니다.]
후견 제도는 장애가 있거나 병에 걸려 의사 결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후견인에게 도움을 받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책임을 나누고,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자는 겁니다.
이 후견을 이유로 일자리에서 차별을 받은 건 A씨뿐만이 아닙니다.
25년간 검찰 공무원으로 일했던 김모 씨는 지난 2015년, 일을 하다가 가슴통증으로 쓰러졌습니다.
[마한얼/변호사 : (김씨 가족들이) 급하게 병원 치료비나 요양비 등을 마련해야 했고 (김씨의) 예금을 찾기 위한 방법이 성년후견을 신청하는 거밖에 없었고.]
후견인이 생긴 김씨는 자동으로 퇴직 처리됐습니다.
평소 원하던 명예퇴직도 못했습니다.
관련법에 따르면, 후견을 받는 사람은 공무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한얼/변호사 : 범죄 저지른 공무원과 동일하게 당연퇴직이라는 조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 위헌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시험이나 심사를 통해 검증할 수 있는데도 처음부터 공무원에 도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게 부당하단 겁니다.
오는 9월 9일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엽니다.
2년 전 법제처와 법무부는 "후견 받는 사람이 직무에서 배제되는 건 차별"이라며, "직무 수행능력으로 판단하도록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2019년을 기준으로 후견 받는 사람이 직무에서 배제되는 법과 시행령 등이 453개였습니다.
법제처가 이 중 395개를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최근까지 고친 건 210개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후견받는 사람을 차별하는 법과 시행령 등이 절반 이상은 남아 있는 겁니다.
이런 차별 조항은 일본의 독특한 법 제도인데 별다른 비판 없이 우리 법이 이어받았습니다.
[박준모/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장 : 원조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조차 최근 2019년에 결격조항을 일괄 삭제하는 법률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마한얼/변호사 : 장애인 고용을 증진해야 된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함게 일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담벼락을 만드는.]
후견 받는 사람을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차별 조항은 일상생활 곳곳에 차별을 확산하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채용공고부터, 심지어 장애인 관련 센터의 채용요건까지 이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A씨 : 똑같이 일을 할 수 있는데 국가나 사업체에선 인정해주지 않아요. 그냥 겉모습만 보고. 차별과 맞서 싸워야 되는 상황이 돼버리니까.]
(영상취재 : 박대권 / 영상디자인 : 신하림 이창환 / 영상그래픽 : 박경민 김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