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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안구단]"뼈와 살을 내려놓고 피와 땀을 흩뿌린 윤영하 선배님을 기억한다."

입력 2021-03-10 17:16 수정 2021-03-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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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온라인 기사 [외안구단]에서는 외교와 안보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알찬 취재력을 발휘해 '뉴스의 맥(脈)'을 짚어드립니다.

오늘(10일) 오후 3시, 인천 송도고에서 '제 2연평해전' 영웅인 고 윤영하 소령의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과 유가족, 그리고 윤 소령을 기리며 창단된 '해군 주니어 ROTC' 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10일 오후 인천 송도고등학교에서 열린 고(故) 윤영하 소령 추모행사에서 송도고 해군주니어 ROTC 대원들이 윤 소령 흉상에 헌화하고 있다.  10일 오후 인천 송도고등학교에서 열린 고(故) 윤영하 소령 추모행사에서 송도고 해군주니어 ROTC 대원들이 윤 소령 흉상에 헌화하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6명의 용사가 서해 바다 위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입니다.
그들의 값진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보겠습니다.

◇월드컵 3-4위전을 앞둔 축배의 날...기습 포격은 시작됐다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1분, 이 날은 모든 국민이 월드컵 3-4위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도 이날 만큼은 흥분과 설렘 속에서 경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도발은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겁니다.
처음에는 북한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는 듯 하더니, 그대로 영해를 침범해 계속 남하했습니다.
명백한 도발이었습니다. 그보다 3년 전인 1999년 6월 15일에 벌어진 '제 1연평해전'과 똑같은 상황이 펼쳐진 겁니다.
경계 근무 중이던 참수리-357정. 참수리-358정이 즉각 대응 기동을 했습니다.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에 전시된 참수리호.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에 전시된 참수리호.
2km 거리까지 접근을 해 경고 방송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경비정은 뱃머리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357정을 향해 기습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85㎜ 대구경 포를 이용해 경고 방송도 없이 사격을 시작한 겁니다.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357정은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조타실은 불타고 선체 곳곳은 부서졌습니다. 그리고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이 북한군의 조준 사격으로 전사했습니다.
부정장인 이희완 중령(당시 중위)이 지휘권을 물려받았습니다. 포격으로 오른 다리가 절단된 상태에서 이를 악물고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모든 선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10시 43분 북한 경비정은 선체 절반이 부서진 채로 퇴각했습니다. 교전은 10시 50분에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 전투로 우리군 6명이 전사했고 19명이 다쳤습니다.
북한군은 13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영웅 윤영하 소령.. 대를 이어 헌신

"서해의 영웅이 되어버린 그 이름과 대한의 가슴속에 영원토록 새겨질 아들, 우리는 알고 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다에 맹세한 사나이, 뼈와 살을 내려놓고 피와 땀을 흩뿌린 윤영하 선배님을 기억한다."

윤영하 소령의 고교 후배들은 그를 기억하기 위해 모교에 흉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담아 비문을 새겼습니다.

윤 소령이 전사한 6월 29일은 32년 전(1970년 6월 29일) 그의 아버지 윤도호 씨가 북한 무장간첩선을 격퇴한 날이기도 합니다.
 
고(故) 윤영하 소령의 흉상을 바라보는 부친 윤두호(왼쪽)씨. 윤씨는 1970년 인천 영흥도에서 무장간첩선을 격파했다. 고(故) 윤영하 소령의 흉상을 바라보는 부친 윤두호(왼쪽)씨. 윤씨는 1970년 인천 영흥도에서 무장간첩선을 격파했다.
정부는 대를 이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자의 공훈을 기리며 훈장을 수여 했습니다.
아버지는 인헌무공훈장을, 아들은 충무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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