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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내로남불' 국회만? 시의회도 마찬가지

입력 2021-03-08 09:32 수정 2021-03-08 09:4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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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8)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선언 이후 관계부처뿐 아니라 입법기관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장 집권 여당은 2050 탄소중립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지방의회에서도 관련 특위가 만들어졌죠. 그런데, 이 모습을 보며 다시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내로남불' 국회만? 시의회도 마찬가지

#온실가스_줄이자더니_국회는_예외?
간단히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탄소' 또는 '기후'로 검색만 해보더라도 꽤나 많은 입법 움직임이 목격됩니다. 저탄소·탈탄소 관련 안만도 전체 10건 중 9건이 계류중이고, 기후 관련 안은 전체 12건 중 7건이 계류중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을 하기 위한 기본법부터 금융, 이행, 기술개발, 청정에너지, 중소기업 혁신 등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자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의원발(發) 입법·개정안이 다가 아닙니다. 법률은 아니더라도 행정규칙을 개정하며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모습도 보입니다. 환경부는 〈공공부문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 운영 등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지난 연말부터 시행하고 나섰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공공부문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관리대상 시설을 더 확대하기도 했고요.

 
공공부문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 운영 등에 관한 지침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공공부문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 운영 등에 관한 지침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그런데 여기서 보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국회입니다. 만장일치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관련 법안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 말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대 국회 당시엔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었죠. 송옥주 의원은 지난 2017년,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대상을 '국가'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에서 '①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및 국가인권위원회, ② 중앙행정기관' 등 구체화하는 내용이었죠.

"현행법은 공공기관이 범국민적인 에너지 절약과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효율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적용 대상을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기관으로만 명시함으로써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및 국가인권위원회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같은 개정안의 제안 이유였습니다.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개정안 심사 결과 (자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너지이용 합리화법 개정안 심사 결과 (자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당시 언론들은 앞다퉈 이 같은 변화의 움직임을 소개했고, 시민사회의 기대를 전하는 기사도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결국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걸까요. 회의록을 살펴봤습니다.

수석전문위원: 개정안은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및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에너지 이용 효율화 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지난 소위에서는 헌법기관이 스스로 에너지 이용 효율화를 위한 규칙 등을 정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삼권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대표발의한 의원실에서는…

소위원장: 제가 그냥 설명드리겠습니다. 57항 송옥주 의원 발의 법안이 있고요 58항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관련된 결의안이었습니다. 59항도 5?6호기 건설 중단 관련된 결의안, 60항도 공론화위원회 중단 촉구 결의안인데 이미 사안들이 다 지나간 것이라서 저희가 폐기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부 측 의견 말씀해주세요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이견 없습니다.

소위원장: 이견 없으시지요? 그러면 57~60항까지 4건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는 것으로 의결하고자 합니다.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개정안 발의 당시 송 의원은 "국회기관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연간 약 10% 가량으로, 국가 평균 증가율인 3%에 비해 3배 이상 높다"고 했습니다. 과연, 지금은 어떨까요.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더라도 자발적으로 감축노력을 이어왔을까요. 기후위기 비상 대응을 여야가 한목소리로 촉구한 만큼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달라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회는 최근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역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처럼 여야가 합심했죠. 앞선 결의안에 환경단체들이 한목소리로 환영한 것과 달리 이번 특별법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비난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국토부, 기재부, 해수부 등 정부 부처에서 안정성, 시공성, 환경성, 경제성 등에 대해 우려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부처의 의견도 묵살한 채 선거를 위한 정치 논리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며 "여야가 합심해 처리한 특별법으로 국가 재정사업의 원칙인 예비타당성 조사도 생략한 채 전국 어디서나 공항을 건설할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됐다"고 비판했습니다.

녹색연합은 "서민들의 삶을 지원하는 법안,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법안, 그리고 기후재난을 막기 위한 정책, 이런 시급한 조치들 앞에서 항상 '엄중히 지켜보며' 좌고우면만을 거듭하던 게 여당의 모습이었다"며 "'신공항'이라는 토건삽질 앞에서 이토록 단합하여 신속히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들의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새로이 환경부장관이 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138명의 의원을 대표하여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안)'을 발의했다는 것은,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을 말해온 정부 여당의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죠.

#또_다른_내로남불?
국회의 기후위기 결의안 채택에 앞서 전국 기초자치단체장들은 기후비상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전세계 최초였죠. 그런데 선언과 행동이 다른 모습은 비단 여의도뿐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엿보입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에선 21명의 시의원이 '서울특별시 금고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기후위기 및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 시 금고 선정기준에 탈석탄 투자 실천여부를 반영하여 공공 및 금융부문의 사회책임 투자를 촉진하고자"하는 목적이었습니다. 금고 지정에 참여하는 금융기관을 선정하는 데에 '탈석탄 투자 선언 여부 및 이행실적'이 배점 기준으로 추가되는 내용이었고요.


 
(자료: 서울시의회)(자료: 서울시의회)


다수의 시의원이 참여했고, 탈석탄 금고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한 만큼 개정안은 예정대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이를 보류키로 결정했습니다. 행정자치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탈석탄'이라는 단어부터 벽에 부딪힌 것으로 보입니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포괄적인 개념인 '녹색금융'으로 변경하고 세부 평가기준 및 방법으로 '탈석탄'을 넣는 것이 적정할 것으로 사료된다"는 겁니다. 또한, 평가 항목에 탈석탄 등을 추가하는 데에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위원회 입장입니다.

시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곳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시민 개개인의 탄소중립 동참을 불러올 수나, 바랄 수나 있을까요. 지난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기초단체에서 국회, 정부,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목격됐던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자칫 그 생기를 잃어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과거 '녹색◇◇'이 '창조◇◇'으로 순식간에 바뀐 사례처럼, 지금의 그린뉴딜, 탄소중립 역시 조만간 없어질 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탄소중립 선언 이후 석 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저 '말'뿐인 선언이 아니었다면 이제는 진정한 움직임을 보여줄 때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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