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위원회에는 군이 창설된 이후부터 벌어진 의문스러운 군 사망 사고들이 접수돼 있습니다. 몇 안되는 자료와 몇 안남은 증언자들을 찾아내서 1960년대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공다솜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황승순 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1963년,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복무 중 사망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의심스러워 재작년 출범한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를 찾았습니다.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황승순/고 황승채 병장 아들 : 세월이 너무 많이 갔잖아요. 제가 나이가 내일모레 저도 육십이에요. 제가 한 살 때 아버님이 운명하셨는데…]
사건을 맡은 정윤하 조사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윤하/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 목격자가 누구인지, 어떤 총기를 사용했는지, 그 총기가 누구 것인지에 대한 자료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부터 찾아 나섰습니다.
[정윤하/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 중대원들의 전체 인적 사항을 파악해서. 하루에 20~30명씩 가까이 전화하면서 소대원을 파악해나가는 거죠. '그게 언제 적 사건인데 이제 와서 이걸 제기하냐'며 굉장히 불쾌해하는 반응들이 상당수 되십니다.]
사고 장소는 사라진 지 오래, 약도를 그려가며 기억을 더듬습니다.
이렇게 모은 그날의 조각이 당시 보고서와 전혀 달랐습니다.
가설병이던 황 병장은 사고 당시 시설물 정비를 위해 야간 사격장에서 대기 중이었고, 총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수차례 찾아간 당시 소대장에게서 결과를 바꿀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정윤하/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 군의 위상을 대단히 중시 여겼던 시절이고. 장병의 희생을 강요…'끝내는 사고사다' 라고 진술을 해주셨습니다.]
[황승순/고 황승채 병장 아들 :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소식을 받을 수 있어서. 섬에 계시는데 잘 안 나와요. 이 소식 듣고 나서 처음 나오셨어요. 말을 못잇죠. 너무 기뻐서.]
지난 2년간 위원회는 223건의 사인을 밝혔고 아직 1100여 건은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위원회의 활동은 내년 9월 종료됩니다.
(영상그래픽 : 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