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불은 새벽에 일어났지만 이웃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에 나섰습니다. 잠옷바람으로 올라가 사람을 구하기도 했고, 창틀에 매달린 이들이 떨어져 다칠까봐 힘을 합쳐 밑에 자루를 쌓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정진명 기자입니다.
[기자]
어두운 아파트 벽면에 한 사람이 가스 배기관을 밟고 창문에 매달려 있습니다.
불이 난 집에 사는 홍모 씨의 딸이 불길을 피해 나왔지만 뛰어내리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상황입니다.
그 옆 계단을 통해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간신히 매달려 있다 힘에 부쳐 떨어지려는 순간 아래층에서 누군가가 몸통을 끌어 안쪽으로 당겼습니다.
건너편 동에 살던 46살 양만열 씨가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잠옷바람으로 뛰어 올라온 것입니다.
[양만열/화재 피해자 구조 : 매달려 있으니까 위험하니까 구해야 되겠다라는 생각 때문에 무조건 뛰어간 거예요. 저도 모르고.]
하지만 딸이 무사히 구조되는 사이 아버지 홍씨는 버티지 못하고 끝내 추락해 숨졌습니다.
창문 아래 화단에는 재활용 수거장에서 볼 수 있는 자루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홍씨 부녀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이웃 주민들이 혹시 떨어질 것에 대비해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일종의 '에어매트'를 깐 것입니다.
하지만 홍씨는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자루가 아닌 2층 콘크리트 지붕으로 떨어져 참변을 당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양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의 딸을 구했지만 끝내 홍씨를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