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제, 3시간 반 정도 뒤면 우리 모두 1살 더 먹게 되죠. 강원도 양양의 시인, 이옥남 할머니도 내일(1일)이면 아흔 여덟입니다. 여든을 바라보고 또 아흔을 훌쩍 넘긴 할머니 시인들은 지나가는 시간들 그리고 한해의 끝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요.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콩을 심다 들려온 뻐꾸기 울음 소리가 아흔 일곱, 이옥남 할머니에게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어릴 적 부지깽이로 몰래 익힌 기역 니은.
여자가 무슨 글을 배우냐는 호통에 참고 참다 예순넷이 돼서야, 도라지 판 돈으로 공책을 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삐뚤빼뚤 꾹꾹 눌러쓴 글자 속에는 쉼 없이 호미질 해온 일상 너머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정신이 없어서 배운 것도 다 잊게 되니 아무 생각도 없네.]
-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30년 넘게 쓴 글은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됐습니다.
[이옥남 (97세) : (글을 안 썼다면) 세월이 그저 어둡게 지나갔겠지]
일흔 여섯 김명자 할머니, 지난해부터 자신의 삶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 또 어머니로 살며 겪었던 기억들이 담겼습니다.
그 일상이 책이 됐습니다.
[김명자 (76세) : 쓰면 쓸수록 제 안에 있는 게 다 나온 거 같아요.]
3년 전부터 한글을 배워 시를 쓰는 평균 나이 여든 넷, 경북 칠곡 할머니들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다큐영화 '칠곡 가시나들' : 글자를 아니까 사는 게 더 재밌다!]
평생을 희생과 헌신으로 보낸 할머니들은 뒤늦게 배운 글로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뭔가를 써내려가는 것만으로 이제야 나만의 인생을 찾게 됐다고 말합니다.
(화면제공 : 김재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