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법을 너무 잘 알아서 이리저리 빠져나간다는 뜻의 '법꾸라지' 이런 수식어까지 붙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오늘(9일) 국회 청문회를 거부했습니다. 법조인답게 '법적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수사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높다"라는 이유였습니다. 오늘 팩트체크팀은 그럴 듯해보이는 이 논리를 하나하나 확인해봤습니다. 그리고 피해갈 수 없는 허점들을 발견했습니다.
오대영 기자 나와 있습니다. 먼저 '위증', '고발', '소환'… 이런 법률 용어들이 뒤섞여 있는데요. 해석부터 좀 해 볼까요?
[기자]
간단하게 얘기하면 내가 위증죄로 지금 고발을 당했다, 또는 수사 의뢰를 받고 있다, 그래서 국회에 나가서 내가 얘기를 하면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불출석해야 된다.
더 줄이면 '특검이 위증죄 수사 중이어서 못 나간다'라는 뜻인데, 언뜻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앵커]
'언뜻 보면' 이 말이 핵심이군요. 그러니까 수사 중이라서 못 나간다, 사실 이건 청문회나 국감 때 단골멘트 아닙니까?
[기자]
그렇죠, 단골이죠. 오늘 조윤선 전 장관도 오전 내내 이런 이유로나오지 않다가 뒤늦게 오후에 불려나왔거든요. 오늘 출석이 예정돼 있었던 증인이 모두 2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4명만 나왔습니다, 상당히 저조했습니다.
같은 이유를 다 밝히지는 않았지만 우 전 수석의 경우에는 이 주장이 근거가 완전히 없는 건 아닙니다.
국정감사 및 조사법 8조.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된다"
그러니까 수사받고 있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겁니다.
[앵커]
그러니까 역시나 법을 너무 잘 알아서 이번에도 청문회를 피해 간 거군요.
[기자]
네, 그런데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수사 중, 수사 중인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병우 전 수석의 위증죄 수사, 수사 중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오늘 특검팀에 확인했습니다. '수사 착수 단계 아니다' '소추 요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수사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앵커]
국회에 나오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니 수사도 받고 있지 않는 거군요.
[기자]
심지어 많은 언론이 지금 고발당했다, 고발장 접수됐다라고 표현해서 보도하고 있는데 고발장도 접수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저 수사의뢰서만 접수돼 있는 상황이었죠.
수사의뢰는 이렇게 왼쪽에 검토단계 (위증 의혹→국회 수사의뢰→특검 검토) 입니다. 수사가 시작되려면 국회가 다시 고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특검이 나설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대법원 판례도 있습니다. 위증죄의 경우에 국회 고발이 꼭 있어야 된다. 고발이 전제되어야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앵커]
그러면 아까 불출석 사유서를 다시 한 번 보여주실까요. 여기에 보면 '고발(또는 수사의뢰)'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표현을 해 놨군요.
[기자]
보통 불명확한 것을 저 괄호 안에 넣잖아요. 그런데 괄호 안에 정확한 걸 넣고 불명확한 걸 괄호 바깥에 넣습니다.
저 고발, X. 다 지워야 합니다. 수사 의뢰, O. 맞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대로 수사 의뢰는 수사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고, 그래서 왼쪽에 수사 영향 우려로 불출석한다라는 우 전 수석의 논리가 깨진 겁니다.
오늘 위증죄 수사를 사유로 내세우면 안 됐던 것이었습니다.
[앵커]
그런데 아주 혹시 우 전 수석이 앞으로의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이런 얘기를 한 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잖아요.
[기자]
안나경 앵커 말대로 그런 가능성을 한번 전제는 해 보겠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런데 일단 가정을 하더라도 헌법에 누구나 형사상 방어권은 보장이 돼 있죠. 그래서 오늘 불출석을 일종의 방어권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성립되지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 국회증언감정법은 모두 이렇게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런데 모두 출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문회 나와서 얘기하라는 겁니다. 나와서 행사하라는 겁니다. 불출석 사유의 근거가 아니라는 얘기죠.
[박상기 교수 (형사법)/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 국회의원들이 묻는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질문이 있는데 그중에 어떤 질문에 대해서 자기가 거부를 할 수 있겠지만, 출석부터 거부한다고 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이유는 없잖아요. 견강부회로 끌어다 붙이는 거죠.]
[앵커]
아무리 법에 능통한 우 전 수석이라지만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빈틈이 좀 많이 보이는데요.
[기자]
여기저기뿐만 아니라 더 있습니다. 빈틈 하나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법을 떠나서 이번에는 기초 논리로 봐도 말이 안 됩니다.
지난달 22일 청문회에서 '최순실은 모른다, 현재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국회는 당시 위증으로 판단했습니다.
첫 번째, 그때처럼 오늘도 몰랐다고 같은 내용을 유지한다면 향후 수사를 하더라도 영향은 없습니다. 일단 거짓이든 사실이든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죠.
둘째, 오늘 말이 뒤집혔다면 그렇다면 수사에 영향을 받습니다. 둘 중 하나는 위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 전 수석의 불출석 사유 위증을 스스로 인정한 걸로도 볼 수가 있다는 거죠.
23년간 검사였던 우 전 수석, 하지만 사실관계도 틀렸고 법적 근거도 미약했고 상식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한 법조인이 저희에게 오늘 딱 한마디로 이런 단어를 얘기했습니다.
"궤변"
[앵커]
'궤변', 공직에서 법을 23년 동안 다룬 사람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죠. 팩트체크 오대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