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박 대통령 탄핵 가결에 커다란 힘을 실어준 건 바로 국민적 분노와 함성이었습니다. 최순실씨 태블릿 PC 보도가 나온 뒤 국정 개입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청와대와 광화문 광장 일대는 촛불을 든 성난 민심으로 가득했죠. 퇴진 거부로 일관하는 대통령을 상대로 지난 주엔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2배를 넘는 232만 명의 시민이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촛불 민심의 뜨거운 힘을 정제윤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JTBC가 최순실씨 태블릿 PC를 보도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연설문과 홍보물 표현 등에서만 도움을 받았다는 해명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후속 보도를 통해 정부 인사는 물론 국가 안보와 관련한 문건 등도 최씨 손에 들어간 게 확인된 겁니다.
1차 담화 후, 성난 민심 2만여 명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첫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최씨 등 국정 개입 사건의 핵심 연루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출석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며 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역시 진정성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어진 2차 촛불집회엔 10배 많은 20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고, 3차 집회부턴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어린 자녀 손을 잡은 부모, 대학생, 회사원 등 자발적 시민들의 거센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3차 촛불집회/11월 12일 :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
검찰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박 대통령을 공범이자 사실상 피의자로 적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담화에서 국회가 퇴진 시점을 정해달라며 승부수를 던집니다.
하지만 진퇴를 국회에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국민적 공분은 더 커졌고, 6차 집회엔 사상 최대인 232만 명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청와대 100m 앞까지 접근하며 대통령을 압박한 촛불 앞에서 정치권도 민심을 읽었고 결국 탄핵 가결이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