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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B] 한국 불치병 환자 첫 '안락사' 헌법소원…'죽을 권리' 논쟁

입력 2023-12-31 18:18 수정 2023-12-3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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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꿀벌처럼 부지런히 취재하는 뉴스B 시간입니다. 사흘 전 국내의 한 불치병 환자가 처음으로 안락사, 즉 '조력사망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불치병이나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데요. 해 마지막 뉴스B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조명해봤습니다.

임지수 기자입니다.

[기자]

척수염 환자 이명식 씨의 하루는 거친 경련과 함께 시작됩니다.

3년 전 피부과 진료 중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배꼽 아래로 마비가 됐고

[이명식/척수염 환자 : 배변은 우리 딸내미가 항문에다가 손가락을 넣어서 배변을 빼죠.]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찾아옵니다.

[이명식/척수염 환자 : 이게 척추를 타고 올라와서 여기를 때려. 머리도 퉁 친데다가 몸은 확 굳어지고 이런 증상이 딱 와버리는 거야. 한참 누워있어야 돼. 근데 그 풀리기 전까지 어떤 생각이 드냐면 안 되겠다, 빨리 진짜 칼로 갖고 와서…]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제주에서 새 삶을 계획했지만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명식/척수염 환자 : 나는 레저 스포츠를 많이 했으니까 그러면 내가 관광 가이드를 하자. 근데 이렇게 이제 훅 인생이 한 방에 이렇게 간 거지.]

이씨는 스스로 인간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고 토로합니다.

[이명식/척수염 환자 : 보온팩을 여기 올려놨어요. 근데 마비환자들은 이런 거에 화상을 입어요. 물집 생기고 곪는 거예요, 이거 발가락이랑 다. 이거를 잘라냈는데…]

마약성 진통제는 이미 처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극단적 생각에 떠밀리다, 지난해 1월에는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하고 잠시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명식/척수염 환자 : 존엄사 무슨 이런 게 있어? 알아보다 보니까 스위스에 (조력사망) 이런 게 있네. 이걸 가는 거야. 이 희망이 생기니까, 그래 참아내자.]

하지만 스위스에 동행해야 하는 딸이 국내법에 따라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씨는 결국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습니다.

[김재련/변호사 (착한법만드는사람들·헌법소원 대리) : 자기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한 즉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결정까지가 개인의 자기결정권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거고 그거는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이니까.]

변호인단은 지난 28일 이씨를 대신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헌재에 공개변론도 요청했습니다.

[염성준/변호사 (착한법만드는사람들·헌법소원 대리) : 무조건적인 생명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자는 것은 아니고 치료 불가능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청구인에 한해서만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지난해 국회에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

이씨는 최근 국회의원 298명에게 도와달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의원 한 명이 답장을 했습니다.

의사 출신 신현영 의원입니다.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 : (반대하는 분들 생각은) 이런 제도가 섣불리 들어오면 오히려 요양병원 가고 요양원 가는 분들은 다 이런 길로 빠지면서 악용될 우려가 있는 거 아니냐…]

[이명식/척수염 환자 :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그런 거 하나만으로 (금지하면) 지금 우리가 지금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맞는 방식과 범위를 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 : 좀 실망스러우실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섣불리 그냥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조력존엄사)법안이 올라가게 되면 오히려 큰 저항이나 벽에 부딪혀서…]

가장 큰 반대는 종교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박은호/신부 : 죽음이라는 것이 개인의 권리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것이 권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이 먼저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박은호/신부 : 현대의학이 고통을 완화하는 능력이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죠. 완화적 진정이란 방식으로 환자의 의식을 상실시키는 방식도 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가야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현행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석배/단국대 법대 교수 : 우리나라는 임종 환자가 아니면 말기 환자도 내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갑자기 웬 의사 조력자살 법안을 갖다 내시는 거죠?]

하지만 이런 고민들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반박도 있습니다.

[윤영호/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 호스피스가 먼저 선행돼야 하느냐? (조력사망과) 동시에 해야 됩니다. 연명의료와 호스피스에 국한된 것들을 이제는 광의의 웰다잉으로 확대될 시기도 됐습니다.]

조력 사망 제도를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윤영호/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 그런 것을 우리가 시스템적으로 해주지 않으면 지금 계속 반복되는 간병 살인이라든지 비참한 자살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느냐는 거죠.]

이른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안락사법을 도입하라! 도입하라!]

[최서열/한국존엄사협회 회원 :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왜 우리는 경제대국인데 죽을 때만 되면 병원에 끌려가서 시름시름 아프다가 죽어야 하는 겁니까?]

한국존엄사협회 가입자는 100명을 넘겼습니다.

[최다혜/한국존엄사협회장 : 생애 말기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환자의 선택권을 하나 더 넓히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회원들은 스위스 현지 조력사망 단체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실반 룰라이/스위스 조력사망 단체 '디그니타스' 공동책임자 : 곧 여러분 한국인들이 스위스 디그니타스로 (조력사망을 위해)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아픔과 두려움을 나누기도 합니다.

[김영인/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 가입) : 저는 모르핀을 16㎖ 먹고 있는데 32㎖를 먹어야 된다고 얘기를 하시는데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거예요. 왜냐하면은 보험 처리가 안 되니까.]

[김영인/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 가입) : 통증 완화하고 싶으면 자비로 해야 돼요. (마약성 진통제가) 사회 문제 되고 이런 건 알겠는데 아픈 사람들한텐 절실하거든요. 그러니까 죽여달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남유하/스위스 조력사망 단체 '디그니타스' 회원 딸 : 죽고 싶은 사람은 없고요. 생명 경시가 아니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바로 조력사망이고 존엄사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철원/노년유니온 회원 : 삶의 마지막은 죽음이기에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죽음에 대한 논의가 멈춘 사이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 수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VJ 한재혁 이지환 허재훈 / 영상디자인 신재훈 / 리서처 이채빈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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