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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이젠 시간이 없다' 애만 태우는 이산가족들

입력 2014-02-02 22:46 수정 2014-02-0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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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나흘 간의 설 연휴가 끝나가는데요. 이산가족들은 명절이 되면 북에 두고 온 혈육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산 상봉 행사를 하자면서도 우리가 내놓은 일정에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죠. 이 때문에 상봉이 또 무산되는 건 아닌지 이산가족들은 애간장을 태우고 있습니다.

손용석, 한영익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장춘/이산가족(83세) : 내가 83살이예요. 19살에 집을 떠났어요. 70년 가까이 만나지 못하다가 처음 상봉하니까 얼마나 반가울 거야. 안 그렇겠어요? 기대가 상당히 컸는데 그게 수포로 돌아가니….]

한국 전쟁 당시 가족들과 헤어진 장춘 할아버지.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는 낭보를 들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동생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재회 3일 전에 상봉이 무산됐습니다.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지금은 지팡이를 짚어야 간신히 걸어다닐 정도입니다.

북한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장춘/이산가족(83세) : 이제 담담하죠. 한 번 그렇게 속았으니까. (안 된다) 이야기를 들어도 담담해요.]

다른 이산 가족들도 북한의 소극적 자세가 아쉽기만 합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9월 최고령 상봉자로 뽑혔던 93살의 강능환 할아버지를 만나 봤습니다.

그는 63년 전 이북에 두고 온 부인에게 주려고 선물만 한가득 준비했습니다.

[강능환/이산가족(93세) : 그 때 준비한 게 한 보따리 되는데 전부 처분했죠. (상봉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참 답답하죠.]

초조해진 마음 탓일까. 몇 개월 만에 얼굴이 수척해졌습니다.

상봉 대상자로 뽑히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 합니다.

박수길 전 국립오페라단장은 매번 상봉을 신청했지만 한 번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박수길/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 신청은 처음부터 했죠. 저같은 사람이 10만 명은 되겠죠.]

6남매 중 장남이었던 그는 1951년 1.4 후퇴 직전 고향을 떠났습니다.

흥남 부두에서 주문진으로 향하는 명태잡이 어선에 오른 겁니다.

부모와 다섯 형제는 북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박수길/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 흥남 철수 유명하잖아요. 그 현장에서 배를 탔어요. 배 떠나기 전날 밤새도록 엄마 보고 싶다고 울었던 것 같아요.]

그리운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수길/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 (어머니는) 제가 살았다는 말을 듣고 16년이나 더 사셨어요.]

시각 장애 2급인 조장금 할머니의 보물 1호는 잘 보이지도 않는 수 십년 전 가족 사진입니다.

[조장금/이산가족(82세) : 이게 내 보물이예요. 나는 재산이 이것밖에 없어요. 둘째 언니는 짖궂고 심술이 있고 못됐어요. 반찬이 입에 거의 들어간 걸 확 뺏곤 했어요. 그래도 그 정이 더 그리워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언니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할머니를 더 절박하게 만듭니다.

[조장금/이산가족(82세) : 죽기 전 고향이라도 한 번 가서 언니들 없으면 조카 피붙이들 냄새라도 맡고 싶어요. 어떨 때는 울고 싶어도 못 울어요.]

+++

[앵커]

현장을 취재한 손용석 기자 나와 있습니다.

손 기자, 이제 이산가족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기자]

예, 그렇습니다. 지난해 선정된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의 평균 연령이 85살, 이 중 27명이 90살이 넘습니다.

한 분은 그 사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앵커]

이번에도 이산가족 상봉을 정말로 하겠다는 건지 북한의 속내를 알 수가 없네요.

[기자]

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한은 군사 위협과 대화 공세를 번갈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이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지난 1월 1일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한TV와 라디오를 통해 신년사를 발표합니다.

[김정은/제1위원장 :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며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신년사를 시작으로 연이어 평화 공세를 취한 북한은 지난 25일엔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까지 수락합니다.

[조선중앙TV/지난 24일 : 우선 올해 설 명절을 계기로 북남 사이에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 행사를 진행하자는 것을 남측에 제의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2010년 10월을 마지막으로 3년 넘게 중단됐습니다.

김정은 취임 이후 개성공단을 가동 중단시키는 등 대남 초강경 노선을 이어온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이승열/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 장성택 숙청 이후 정치적으로 국제사회 냉소가 많아졌고 남한과 대화를 통해서 이 상황을 풀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취재진이 북중 국경지대를 가본 결과,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 측 경비가 한층 강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동안 개방을 통해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의 경제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김강일/옌벤대 교수 : 북한이 기업들의 자율성을 제고하고, 군부가 경제에 너무 관여하는 행태도 좀 개선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이번에 장성택 사건 나면서 이런 개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경제적인 고립이 이어지자 국경지대에선 북한 주민들은 물론, 군인들도 구걸과 밀수에 나선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애초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금강산 관광 재개와 연계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입니다.

[김용현/동국대 교수 : 이번엔 형식적으로 연계는 안 됐지만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이 북한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북한의 갑작스런 구애 공세를 펴자 우리 정부는 오히려 경계심을 강조합니다.

[김민석/국방부 대변인 : 군사적 도발을 북한이 감행해 온다면 우리 군은 가차 없이 단호하게 응징할 것입니다.]

이 와중에 하루, 하루 시간이 갈수록 애가 타는 건 이산가족들입니다.

매번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추첨에 탈락한 송창수 할아버지.

60년 전 고향 개성에 두고 온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송창수/이산가족(83세) : 96년 12월 26일에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 5살이었던 막내 동생이 지금도 눈에 아른 거립니다.

[송창수/이산가족(83세) : 동생이 울면서 내가 나가니까 형가면 언제 오냐고. 죽기 전에 동생 만나봤으면 하는 소원이 그것 밖에 없어요. 이렇게 평생 만나지 못하는 동생을 내가 왜 때렸나 하고 (후회돼요.)]

+++

[앵커]

그렇다면 이번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지가 관심사인데요. 어떻게 될까요?

[기자]

아직 북한에선 우리 정부가 제시한 구체적인 상봉 일정에 대해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

박순녀 할머니가 꿈에 그리던 동생을 만난 건 2010년 10월입니다.

[박순녀/이산가족(80세) : 처음에 통지 전화가 왔을 때 정말 고맙더라고요. 마음이 설레고.]

한국전쟁 이후 64년 만에 만난 동생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박순녀/이산가족(80세) : (동생 이름이) 그냄이었어요. 그래서 니가 그냄이냐? 하니까 그렇다 그래요. 나 언니다, 그렇게 손 붙잡고 대성통곡했죠.]

짧은 만남에 아쉬움은 오히려 컸습니다.

[박순녀/이산가족(80세) : 며칠은 눈에 선한 게 동생을 본 게 맞나 싶었어요. 전화라도 있으면 전화하면 얼마나 좋겠나….]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물꼬가 트여, 지금까지 이산가족 2만 1천여 명이 직접 또는 화상으로 그리운 가족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중단됐고, 결국 박 할머니가 참가했던 18차 상봉 행사가 마지막이 됐습니다.

이후 남북한 대화가 있을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지만 매번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 부침이 심했습니다.

지난해 9월엔 만남 사흘 전에 상봉이 결렬되기도 했습니다.

올 초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북한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김철우/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키리졸브, 독수리훈련 등 한미 정례적인 군사연습이 있는데 그것을 빌미로 자기들이 밀고 당기기를 할 걸로 예상됩니다.]

북한이 자신들의 치부를 쉽사리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박건하/NK지식연대 사무국장 :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부담이죠.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하자면 아무때나 나갈 수 있잖아요. 북한은 그렇게 안 된다 이거죠. 북한에서 나오려면 얼굴도 통통하게 만들고 (사상) 주입도 시켜야 되니까 준비기간이 필요하죠. 최소 한 달은 돼야 할 겁니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강일/옌벤대 교수 : (박근혜 정부) 신뢰 프로세스는 한국이 주도할 때 의미가 있다. 한국이 북한만 기다리면서 신뢰 쌓겠다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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