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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안 겪으면 모른다' 치매 환자 가족의 비극적 삶

입력 2014-01-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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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얼마 전 치매 때문에 일어난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씨 가족의 비극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치매 환자에 대한 보호망이 너무 취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무서운 병의 실태를 김관, 신혜원, 임진택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의 한 치매치료센터에 다니는 86살 임정옥 할머니. 경증 치매에 걸린 임씨는 여섯 달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자꾸 기억을 잃어갑니다.

[임정옥(86)/경증 치매환자 : (어머니 지금 누구랑 같이 사세요?) 나 혼자 살아. 아들은 따로 살아.]

집으로 따라 가봤습니다. 그런데, 안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큰 아들 67살 김인규씨.

사업도 접고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은 서운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인규(67)/임정옥씨 (경증 치매환자) 아들 : 혼자 계신다고 했다면서요? 나랑 있는 거 4개월째인데. (몰라.) 저렇게 모른다고 하신다고. 환장하지.]

불과 30분 전 일도 기억나질 않습니다.

[임정옥(86)/경증 치매환자 : (오늘 건강센터에서 뭐했어요?) 모르는데. (어머님 아까 퍼즐 맞추기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임정옥(86)/경증 치매환자 : (처음에 치매 진단받았던 거 기억하세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치매 왔었나?]

어머니의 증세가 날로 악화돼 아들의 속은 타들어 갑니다.

[김인규(67)/임정옥씨 (경증 치매환자) 아들 : 내가 된장찌개를 잘하니까 해 드리면, '죽으면 된장찌개 먹던 생각이 날 거'라고 어머니가 얘기하실 때 제일 슬프지….]

이번엔 서울 중림동 박승철씨 집으로 가봤습니다.

어머니 94살 임종순 할머니는 10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중증 환자.

시간이나 계절 감각이 없고,

[임종순(94)/중증 치매환자 : (지금은 여름이에요? 겨울이에요, 가을이에요?) 한 4월일 거야. (지금이?) 응.]

할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온 자식들에 대한 생각마저도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임종순(94)/중증 치매환자 : (자녀 몇 명이나 되세요?) 9남매나 돼. (그중에 아들은요?) 아들이 여섯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아들 박씨가 힘들어진 건 어머니가 용변을 가리지 못하면서입니다.

[박승철(73)/임종순씨 (중증 치매환자) 아들 :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이불에 변을 봐놓아요. 그럴 때는 내가 숨이 터지고 미치지. 하루에만 팬티를 12개, 13개씩 입어요.]

요즘 이어진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는 마음이 남다릅니다.

[박승철(73)/임종순씨 (중증 치매환자) 아들 : 치매 환자하고 같이 있으니까 우울증이 터지잖아. 무슨 마음이 드느냐면, 어머니 그냥 돌아가시게 하고 내가 그냥 자살해버릴까….]

그럴 때마다 박씨는 홀로 뒷산에 올라갑니다.

[박승철(73)/임종순씨 (중증 치매환자) 아들 : 야호~! 야호~! 이렇게 소리 질러야 마음이 평온해져.]

암으로 아내를 잃고 어머니까지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박씨의 간병인 생활은 15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

[앵커]

현장을 취재한 김관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 기자, 조금 전 리포트를 보니 가족들이 너무 힘들 거 같아요.

[기자]

네, 거기에 치료 희망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다보니 수시로 절망감에 휩싸인다고 합니다.

이특씨 부친도 그런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내용 보시겠습니다.

+++

새해 초 전해진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씨 가족의 비극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웃 주민 : 어머 104동 사고 난 것 같아요. 경찰이 오고. 그래서 넘어와 보니까 막 과학수사대 오고 그래서 이거 보통 사고가 아니구나. 너무 놀랐죠.]

부모를 먼저 보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특씨의 아버지 박모 씨는 평소에 부모를 성심껏 모셔왔기에 충격이 더 컸습니다.

[담당 경찰관 : 유서 내용 말씀드렸잖아요.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다 모시고 간다'고 했어요.]

박씨는 평소 밝고 이웃에도 친절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박씨 동창 : 활발하고 아주 좋은 친구예요. 아들을 아끼고.]

이특씨와 뮤지컬 배우인 딸을 언제나 자랑스러워 했던 박씨.

[박씨 동창 : (아드님 말씀도 많이 하셨을 거 같아요.) 달력도 돌리고 그런 것도 많이 했었죠.]

그런 박씨를 무너뜨린 건 노부모의 치매였습니다.

치매를 앓던 부친에 이어 지난해 모친까지 폐암 합병증으로 치매가 찾아온 겁니다.

[이웃 주민 : 할머니 요새 어떠세요 했더니 '죽겠어요' 해. 불쌍한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영감보고 저 3층 아드님 참 힘들겠다고 그랬죠.]

오래 전에 이혼해 이특씨 모자와 따로 살아온 박 씨는 설상가상으로 경제적 시련까지 닥쳤습니다.

[박씨 동창 : IMF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업을) 끌고 오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고 그런 말은 했어요.]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

[담당 경찰관 : 우울했다는 건지,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녔다는 건지.]

결국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치매가 한 가정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간 사건은 바로 다음날 대전에서도 벌어졌습니다.

55살 김모씨가 치매를 앓던 96살 모친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김 씨의 옆에는 "어머니를 부양할 사람이 없으니 함께 가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둔산경찰서 관계자 : 나이가 96세고, 또 치매기도 있고 하니까.]

[이웃 주민 : 치매기 있는 것 같긴 하던데. 여기가 난 막 어쩌고저쩌고… 그러기도 하고.]

+++

[앵커]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지, 뭔가 대책은 없을까요?

[기자]

당국이 예산을 계속 늘리고는 있지만 노령화 추세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보시죠.

+++
10년 넘게 치매 남편의 병수발을 해 온 권대희 할머니.

[권대희/중증 치매환자 보호자 : 내가 바깥에서 뭘 못 사 먹어요. 이 양반이 걸리고, 자꾸 생각이 떠올라서요. 내가 굶어도 배가 안 고프고….]

8년째 간병을 하고 있는 이말선 할머니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3대가 단란했던 가정은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오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권대희/중증 치매환자 보호자 : 왜 울어? 바보같이. 아이고, 예뻐라. 아이고, 예뻐라.]

현재 60만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지금 30~40대가 노인이 되는 2050년에는 무려 270만명으로 3배 넘게 늘어납니다.

현재 노인요양보험 수혜자는 3분의 1 수준. 증세가 심해야 요양 시설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늦은 밤, 치매 환자 50여 명이 있는 서울의 한 요양 시설.

[요양시설 간호사 : 이제 들어가서 주무세요. 10시 넘었어요.]

[중증 치매환자 : 귀에서 소리가 그렇게 나. (어떤 소리가 나세요?) 바람 소리, 천둥소리, 나중에는 사이렌 소리가 나면….]

알 수 없는 얘기들이 오갑니다.

[중증 치매환자 : 도둑놈 세 명이 와서 나를 때렸어. 집문서 내놓으라고. 요만한 쇠망치로 막 패. 돈 내놓으라고. 여기까지 왔어.]

이런 환자들을 24시간 집에서 돌보는 건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양시설 간호사 : 밤새 혼자서 대화도 잘하세요. (집안에서 간병하기는 쉽지 않겠네요?) 그러니까 이런 데로 모시지, 집에서는 힘들어요. 더구나 치매 어르신들은….]

치매는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보다 치료비만도 6배 이상 듭니다.

정부는 올해 경증 환자를 위해 1,000억원 넘는 예산을 새로 책정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김기웅/국립중앙치매센터장 : 고령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5배 압축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속도 차이 때문에 치매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으려면 가족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성희/한국 치매가족 협회장 : 치매를 경험해보지 않은 분들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병이 2년에서 20년 가는 병인데다가….]

[김모씨/치매 모친 부양 중 : 그런 상황에서는요. 저도 약간 돌아버리는 것 같아요. 엄마를 위하는 마음도 없어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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