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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뒷것' 故김민기와 작별 "싱어송라이터·저항의 상징"

입력 2024-07-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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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별세한 가수 김민기의 빈소가 22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제공=학전〉

지병으로 별세한 가수 김민기의 빈소가 22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제공=학전〉

'나 이제 가노라.'

스스로를 '뒷것'이라 부르던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인물 故김민기가 영면에 들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이 진행됐다. 이후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으로 떠나기 전 김민기가 애정했던 대학로와 학전 자리였던 아르코꿈밭극장을 들러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현장에는 학전 출신인 설경구·장현성을 비롯해 수많은 동료들이 자리해 눈물을 쏟았다. 그만큼 김민기의 학전은 많은 이들의 꿈을 심어주고 실현시킨 무대였고 상징이었다. 그 공을 인정 받아 2018년한국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20년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 등을 받기도 했다.

공연예술계 뿐 아니라 가요계에 남긴 업적도 상당하다. 1971년 데뷔한 김민기는 포크계의 대부로 불린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내놓았는데 이 곡들이 시대에 저항하거나 민주화 운동의 대표적인 곡들로 재조명되며 활동 당시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신은 '뒷것'으로 부르면서도 함께하는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앞것'이라 칭하며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을 자청했다. 두려움 없이 용감했고 도전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피플]'뒷것' 故김민기와 작별 "싱어송라이터·저항의 상징"
'가수'라고만 정의하기엔 더 큰 사람, 김민기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임진모 대중문화 평론가는 JTBC엔터뉴스에 "가장 중요한 건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이다. 김민기 첫 앨범은 사실상 소리 없는 충격이었다. 그 앨범이 많은 주목을 받거나 팔린 건 아니었지만 가수가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는 개념 자체가 이전 대중가요에선 볼 수 없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싱어송라이터의 등장을 높이 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틀즈 정도였다. 곡을 쓰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이 분리돼 있었다. 그만큼 음악적으로 효율도 떨어지고 가수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서도 "김민기가 등장하면서 이후에 이장희·송창식이 등장했다. 새로운 패턴의 시작인 것이다. 노래 자체도 당시에 하기 어려웠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성이 있는 곡들이다. 자기주장을 펼칠수 없는 시절에 젊음의 저항이 담긴 일기장 같은 것들을 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전했다.

김민기의 진정성과 용기는 통했지만 그 시절의 설움과 제약도 간과할 수 없다. 임진모 평론가는 "위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김민기가 가수로 활동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거다. 당국의 견제와 억압들이 있어서 노래 활동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더 이상 본인이 싱어송라이터로 노래할 수 없을 때도 있고 그렇게 대학로로 무대를 옮기고 학전이 탄생했다"고 바라봤다.

김민기의 인생 후반전을 책임진 학전 역시 많은 결과를 낳았다. 임 평론가는 "황정민·설경구·윤도현 등을 길러낸 게 김민기의 또 하나의 업적이 됐다. '지하철 1호선'이라는 히트 뮤지컬도 만들었다"며 "아직도 회자될만큼 남기고 간 것이 참 많은 우리 대중문화사에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애도했다.

김선우 엔터뉴스팀 기자 kim.sunwoo@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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