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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려원 "운명처럼 다가온 '졸업' 내겐 인생작"

입력 2024-07-10 11:24 수정 2024-07-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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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배우 정려원(43)이 tvN 주말극 '졸업'을 자신의 인생작으로 꼽았다.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을 통해 '불확신'에서 졸업했고 후회보단 스스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란 생각이 들게 한 첫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안판석 감독과의 작품이 너무 행복했다는 그는 환한 미소로 기자들을 반겼다.


지난 6월 30일 종영한 '졸업'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성장을 이루는 인물들의 결말로 여운을 남겼다. 최종회는 수도권 평균 7.4%, 전국 평균 6.6%를 기록, 케이블과 종편을 포함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극 중 베테랑 스타 강사 서혜진 역을 맡은 정려원은 3주 연속 출연자 화제성 1위를 찍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끝난 게 실감이 나나.

"교무실을 같이 쓴 배우분들이랑 함께하는 단체 SNS 방이 있는데 그 방이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하니 아쉽더라. 그래서 시간 되는 사람들 나오라고 같이 밥 먹자고 했다. 헛헛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졸업'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사실 안 고를 수가 없었다. 평소 일기를 쓰는데 작년 3월쯤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님, 감독님에 대해 쓰고 5월 12일 대본을 받았다. 9월에 촬영 들어가는 안판석 감독님 작품이라고 하더라. 뭔가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상태에서 이렇게 만날 수도 있구나 싶더라."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멜로라고 들었는데 멜로가 어디 있지 싶었다.(웃음) 좀만 참으면 나오겠지 했는데 4회까지 잘 안 나왔다. 잘못 들었나 보다 했지만 이미 읽으면서 빠져들었다. 멜로의 공식 루트를 따라가지 않아서 좋았고, 나오는 대사들이 너무 좋았다. 그간 검사 역할도 하고 변호사 역할도 하고 대사가 많은 역할을 해서 멜로를 할 거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중 대사가 제일 많더라. 그럼에도 하고 싶었다."


-안판석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주변에 선배님들이랑 동료분들이 '안 감독님과 작업하면 너무 좋아하고 잘할 것 같다'라고 하더라. 이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니 더 궁금했고 나도 안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었다."


-함께 작업을 마친 소감은.


"난 계속 질문하는 스타일이다. 근데 안 감독님은 질문에 대한 답보다 질문 자체에 대한 해석을 한다. 특히 함께 작업하며 배우의 자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줬다. 배우는 문화를 가까이하고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내가 원하는 답은 이게 아닌데란 생각이 들었다가 방송이 끝나고 난 뒤 감독님이 얘기해 줬던 것들이 딱 가라앉더라. 그간 감독님의 얘길 잘 못 알아들었는데 이제 알게 됐다고 다시 (작품) 하자고 했다.(웃음)"

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극 중 국어 강사 역할이었다.

"처음에 학원 강사라고 해서 영어 강사라고 생각했다. 근데 국어 강사더라. 내게 생소한 과목이긴 했다. 그래서 조금 더 긴장하며 준비했던 것 같다. 실제로 학원 가서 강의 듣는 학생들 뒤에서 몰래 듣기도 했다. 오후 10시 30분 정도였는데 한국 학생들은 흐트러짐이 없더라. 강의실이 꽉 찼는데 방대한 공부량에도 집중력이 대단하다 싶더라."

-현실적인 연기였다는 평을 들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부분은 현실과 동 떨어지면 안 되겠다 싶었다. 마이크를 잡고 강의하는 리얼리즘은 대본에서 오는 게 아니라 대본 사이 오디오가 비지 않는 게 중요하겠더라. 그런 애드리브는 자문해 준 부부 강사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분이 강의하는 대로 했던 것 같다."


-기분 좋았던 반응이 있다면.

"가장 기분 좋았던 반응은 'X(구 트위터)'에 달린 댓글이었다. '대박' '좋다' 이런 게 아니라 '뭔가 극 중 수업 방식은 이 나라에서 생존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옳은 길이란 건 우리는 알고 있다.. 서혜진 선생님이 보물을 찾아 덩달아 기쁜 밤이다' 이런 서술형 감상평을 남겼더라. 진짜 너무 좋았다. 소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드라마 자체가 메시지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지 않나. 그거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 그런 지점도 좋았다."


-연기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힘들었던 건 솔직히 없었다. 멜로 치고는 대사량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전에 검사, 변호사 역할을 많이 하지 않았나. 그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고 바로 '졸업'을 한다고 했으면 많이 헤맸을 것 같다. 다행히 대사 외우는 것엔 노하우가 생겨 어렵지 않았다."


-애정신이 많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보이는 게 딥하지 실제로는 딥한 게 없었다. 준호는 멜로가 처음이라고 하더라. 자긴 능숙하게 할 수 없다고 하니까 같이 만들어가면 되겠다 했는데 서혜진은 모태 솔로이지 않나. 그 순간 생각을 멈추고 너무 능숙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엄청 뚝딱거렸다. 뚝딱거리며 찍어서 NG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감독님이 괜찮다고 썼다. 감독님이 '얘네는 서툰 연애가 예쁜 거야'라고 했는데 방송을 보고 감독님이 OK 한 이유에 동감하게 됐다."


-방송 초반 극 중 서혜진의 음주운전 장면이 있어 논란이 일었다.

"모두가 놓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꼼꼼히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파트너 위하준과의 호흡은 어땠나.

"처음엔 10살 나이 차가 난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근데 처음 실제로 보니 엄청 어려 보이지는 않더라. 그래서 '감사합니다'라고 그랬다.(웃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 찍을 때라 얼굴이 태닝 되어 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태라 거뭇거뭇하게 살짝 올라와 안심했는데 촬영 때 뽀짝 해져서 왔더라. 그래도 내심 다행이다 생각했다. 뭔가 연하라고 해도 아이 같지 않고 어른스러운 매력이 있지 않나. 실제로도 진중하고 과묵해서 (연상과 같이) 붙여놨을 때 케미스트리가 좋은 것 같다."


-함께 연기하며 발견한 매력이 있다면.


"멜로를 안 해봤다고 해서 놀랐다. 위하준 배우가 출연한 전작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도 친해지고 싶어서 봤는데 임세미 배우와 연기할 때 눈이 너무 좋더라. 물론 악역 하는 것도 봤다. 근데 캐릭터가 초반 강하다가 임세미 배우 보고 눈이 휙 바뀌는 걸 보고 '지금까지 멜로 왜 안 했어? 이런 눈이 있는데'라고 말해줬다. 그때 얘기하면서 친해졌던 것 같다. 역시나 '졸업'에서도 잘하더라."

-롱테이크를 즐기는 안판석 감독의 작업 방식을 통해 깨달은 점이나 배운 점이 있나.

"현탁 원장님과 붙는 신에서 내가 완벽하게 대사를 외우지 않으면 현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준 배우와 싸우는 신 찍을 때 진짜 전투적인 마음으로 갔다. 감독님에겐 단 한 번의 기회 밖에 없다는 걸 아니 칼을 잘 갈아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싸우는 신은 특히 더 그랬다. 사람이 화가 나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이트 아웃이 되지 않나. 이럴 때도 국어 강사들이니 유려한 말로 싸워야 한다. 근데 너무 집중해서 그런지 찍고 나서 실제로 화가 나서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연극처럼 연습하고 한 방에 에너지를 몰아 터뜨리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의 촬영 방식에 빠져버렸다. 감독님은 억지가 하나도 없다. 시청자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기 위해 틈을 보여준다. 열어두는 연출 방식이 새로웠다."


-'졸업' 속 화제의 난로 키스 장면은 어떻게 탄생했나.

"처음엔 불 꺼진 학원가의 미드나잇 완결판 신이라고 생각했다. 준호가 젖지 않았나. 난로를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빨간불 켜지는 난로를 가져왔다. 주위 불이 다 꺼지고 빨간불 난로만 켜져 있으니 너무 낯선 느낌이라 '감독님 너무 빨간대요'라고 그랬다. 근데 감독님이 '려원 씨 교무실에 불이 꺼진 건 너무 익숙하고 빨간불만 켜진 건 익숙하지 않다고 하듯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익숙하게 찾아오는 게 멜로다. 낯설게 와서 멜로와 결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더라.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신으로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에 놀랐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유독 안판석 감독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입시'다.

"감독님은 '사람은 문학을 가까이해야 한다. 단순히 외우고 해내는 게 아니라 진짜 완벽하게 책을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배우도 문학을 가까이하고 배우려고 하고 지문 밖의 세계도 알려고 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런 소재에 공감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구멍이 하나도 없다. 훗날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될 거라고 얘기해 줬는데 감독님 자체도 재밌게 귀하게 촬영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

"'준호를 안 좋아할 수가 있나?'란 대사부터 혜진이가 스스로 자신을 가두고 있던 알에서 깨고 나온 느낌이었다. 물론 6부 엔딩에서 키스하고 그랬지만 혜진의 마음이 열리는 솔직한 계기는 이 대사라고 생각했다. 그 대사를 뜸 들이고 나눠서 했는데 내겐 그 대사가 감정의 터닝 포인트로서 중요했던 것 같다."


-전문직 캐릭터를 유독 많이 했던 이유가 있나.

"사실 마음속에 있는 걸 그때그때 말하지 못해서 집에 가거나 잠들기 전에 발작하는 스타일이다. 말을 화려하고 유려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게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란 작품에서 백여치 역을 소화할 때였다. 초반엔 표현이 잘 안 되어서 어려웠는데 그 부분에 대한 쾌감이 있더라. 그래서 나와 다른 전문직 여성 캐릭터를 좋아했다. 일기를 쓰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다. 일기 쓰며 생각을 정리했는데 간극이 좁혀져 가는 걸 느꼈다."

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정려원, 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서혜진과의 싱크로율은.


"막상 대본받았을 때는 반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촬영 끝나고 방송으로 봤을 때 70~80% 정도 되는 것 같더라. 사실 대본엔 '혜진 옅은 미소, 미소, 웃음' 이렇게 쓰여 있을 정도로 그럴 때만 웃고 잘 웃지 않는 캐릭터였다. 준호가 철이 없고 능글맞고 그런 캐릭터였는데 그 캐릭터도 위하준이란 배우를 통과하며 무게감이 있는 친구로 바뀌었다. 나까지 각 잡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실제 나를 좀 섞었다. 극 중 쓰여 있는 혜진이보다 가벼워 보일까 걱정했는데 붙여놨더니 나스러운 게 더 많이 나왔던 것 같다."


-결말에 대한 만족감은.

"그 안에서 정말 충실했다. 이미 표상섭 선생님에게 교육의 완벽함이 있고, 혜진이가 그 옆에 나란히 서기엔 준호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떠난다는 게 혜진이의 졸업을 완결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졸업'은 어떤 의미의 작품으로 기억될까.

"배우란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누군가 인정해 주고 검증해 줘야만 밖으로 보일 수 있는 직업이지 않나. 항상 그런 거에 불안함을 느꼈다. 감독님이 '컷, 다음신 갈게요' 그러면 확인을 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이번 드라마는 안 감독님이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니까 스스로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게 쌓이다 보니 '내가 잘했구나! 안 그랬으면 감독님이 그렇게 오래 연출했는데 다시 찍자고 하지 않았겠나!'란 생각이 들더라. 불확신에서 졸업했다. 작품 마지막 촬영 때 늘 후회가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이너프(enough), 이 정도면 충분해'란 생각이 들며 후회가 눈 녹듯 사라졌다. '정말 최선을 다했어'란 생각이 들며 '이래서 인생작인가. 나에게서 졸업하나'라고 스스로 느꼈던 것 같다. 이게 호기롭게 인생작이라고 했던 이유다."


-드라마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진짜 일하기도 편하고 너무 좋아졌다. 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주어지면 그 이상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과거엔 피곤해도 꾸역꾸역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장이 있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데도 게을러진 사람은 없었다. 한 번 밖에 없으니까 효율적인데 집중력이 달랐다. 많은 이들이 대본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큐에 들어가는 오케스트라 연주 같았다. 이게 너무 자연스럽게 이뤄져서 감사했다. 현장 가면서 '일하러 가는 게 이렇게 행복해도 돼?'라고 그럴 정도였다."


-이번 작품으로 출연자 화제성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시청률 순위도 순위지만 요즘은 화제성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계속 언급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좋은 거라고 하는데 내가 뭣도 모르고 1위를 하지 않았나. 근데 1위를 하고 나니 계속 1위를 하고 싶더라. 처음으로 화제성 순위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는데 마지막까지 1위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너무 행복했다."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이 현장에서 너무 복에 겨웠던 게 아닌가 싶다. '바로 다음 만나는 현장이 힘들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 거기서도 잘 해낼 것 같은데 배우가 매번 인생작을 만나는 건 아니다. 물론 자주 인생작을 만나는 배우들도 있긴 하지만 시청자분들이, 관객분들이 인생작이라고 말하는 것과 스스로 느끼는 것은 다르니까 좀 빠른 텀 안에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블리츠웨이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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