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야쿠르트 못 사준 게 아직도...아들 미안해" 5·18 실종 이창현군 명예졸업

입력 2024-05-17 16:45 수정 2024-05-17 16:52

1980년 휴교령 당시 집 나선 뒤 행방불명
어머니 "아들 나타난다면 목숨 팔아서라도"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1980년 휴교령 당시 집 나선 뒤 행방불명
어머니 "아들 나타난다면 목숨 팔아서라도"

〈사진=5·18 기념재단〉

〈사진=5·18 기념재단〉


실종된 이창현군은 44년 전인 1980년, 광주 양동국민학교 신입생이었습니다. 삼 남매 중 둘째였는데 유달리 정이 많았다고 부모는 기억합니다.

음식을 해 주면 '엄마 맛있어, 사랑해' 하면서 끌어안곤 했어요. 그 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어머니 김말임씨)

그해 5월 17일 광주에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이군은 19일, 화장품 외판원을 하던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집을 나섰습니다. 건축업에 종사하던 아버지는 당시 완도에 있었습니다. 그런 뒤 이군을 어디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눈을 감으면 피를 질질 흘리는 아이를 누군가가 던져주는 모습이 보였어요. 아이가 '엄마'하고 들어오는 상상을 했어요. (어머니 김말임씨)

백방으로 찾아 헤맸지만 이군은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듬해 자녀들과 광주를 떠났습니다. 어머니 김말임씨는 “학교다니는 애들이 '창현엄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견딜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알이 빠지려 해서, 광주에선 살지를 못하겠더라”라고 떠올렸습니다.

2018년 5월, 이창현군의 아버지 이귀복씨가 묘비를 쓰다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8년 5월, 이창현군의 아버지 이귀복씨가 묘비를 쓰다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군은 1994년 뒤늦게 행방불명자로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이군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1997년 국립 국립 5ㆍ18민주묘지 내 행불자 묘역에 묘비를 세워 기리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매년 이군의 묘비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가족에게 전달된 명예졸업장. 〈사진=연합뉴스〉

가족에게 전달된 명예졸업장. 〈사진=연합뉴스〉


이군이 다니던 광주 양동초등학교는 오늘(17일) 오전 명예졸업식을 열고 이군의 가족에게 명예졸업장을 전달했습니다. 양동초는 여러 차례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려 했으나 이군의 제적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번번이 무산됐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군의 아버지가 1988년 5ㆍ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을 신청했을 때 제출한 제적 확인증을 지난해 5ㆍ18민주화운동진상조사위원회가 확인하면서 성사가 됐습니다.

명예졸업장 수여식에서 인사하고 있는 이창현군 어머니 김말임씨. 〈사진=연합뉴스〉

명예졸업장 수여식에서 인사하고 있는 이창현군 어머니 김말임씨. 〈사진=연합뉴스〉


오늘 명예졸업식엔 이군의 누나와 어머니가 참여했습니다. 어머니 김씨는 "생각도 못 한 졸업장을 만들어주시니까 정말 감사하다"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이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습니다.

창현아, 엄마가 옛날에는 어렵고 힘들게 살았어. 너무 어려워서 야쿠르트를 못 사준 것이 지금도 가슴이 아파. 지금은 네가 내 앞에 나타나면 내 목숨을 팔아서라도 다 해주고 싶어. 용서해 달라고 안 할게. 엄마가 잘못했고, 미안해.


영상취재 : 장정원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