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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영역] 이강인, 바뀌어야 산다…솔직한 '축구 천재'에서 '성숙한 국대'로 가려면

입력 2024-02-22 05:00 수정 2024-02-22 13:40

'탁구 하극상' 더 이상 없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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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하극상' 더 이상 없으려면


런던에 가서 다시 한 번 사과한 이강인 선수와 이를 포용한 손흥민 선수.〈출처=손흥민 인스타그램〉

런던에 가서 다시 한 번 사과한 이강인 선수와 이를 포용한 손흥민 선수.〈출처=손흥민 인스타그램〉



축구 팬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아시안컵 '탁구 사건'. 이강인 선수가 직접 런던에 가서 사과하고, 손흥민 선수가 받아주면서 극적으로 봉합 됐습니다. '하극상 사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재발 방지입니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선수만 욕하고 끝날 게 아니라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짚어봐야 한다는 거죠. '탁구 몸싸움 사건'이 논란이 되며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강인 선수의 여러 과거가 재소환 되기도 했는데요. 오늘의 인물탐구영역은 '축구 천재' 이강인 선수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남은 과제에 대해서도 짚어보겠습니다.


'축구 천재'의 시작

'날아라 슛돌이' 시절 이강인 선수 모습.

'날아라 슛돌이' 시절 이강인 선수 모습.


이강인 선수가 '날아라 슛돌이(KBS N SPORTS)'로 대중에 얼굴을 알린 건 6살 때 일입니다. 축구를 시작한 건 1살 때라고 하는데,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공을 가지고 놀았다고 합니다. 태권도 사범인 아버지가 마라도나 팬이어서 마라도나 경기 영상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축구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어린 이강인 선수 머릿속은 온통 축구 생각으로 꽉 차 있던 것 같습니다. 이강인 선수가 이청용 선수를 꽤 좋아했나 봐요. 이청용 선수 하면 덧니가 특징이잖아요. 이강인 선수가 교정을 하려고 치과를 갔는데 "덧니는 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강인의 어머니는 '이청용 선수의 축구 실력이 덧니에서 나오는 줄 알았던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축구 훈련을 마치고 오면 태권도로 체력을 단련하면서 빠르고 탄탄하게 성장해 나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만으로 10살의 나이에 스페인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발렌시아 유스팀에 입단한 이강인은 승부욕이 무척 강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발렌시아와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이 경기를 했는데, 여기서 4대0으로 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은 '지구 방위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기로 유명했는데요. 이 팀에 와장창 깨져버린 겁니다. 인터뷰를 하는 1분 내내 눈물을 뚝뚝 흘려서 인터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급기야 진행자는 이강인을 달래는 모습이 연출됩니다.

4대0 패배에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 12살의 이강인. 〈출처=유튜브 'soo baeksang'〉

4대0 패배에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 12살의 이강인. 〈출처=유튜브 'soo baeksang'〉


진행자: 충분히 잘했고, 넌 앞으로 더 잘할 거야. 너는 정말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내는 선수야.
이강인: 훌쩍... 감사합니다.
-2013년 인터뷰 (당시 12살)


실바를 닮은 소년의 '월반 축구'

2018년 발렌시아 1군 데뷔 직후 이강인 선수 모습. 〈출처=발렌시아CF〉

2018년 발렌시아 1군 데뷔 직후 이강인 선수 모습. 〈출처=발렌시아CF〉



2017년, U-19 툴롱컵 준비를 위해 귀국한 이강인은 한국이 낯설어 보였습니다. 많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탓도 있었겠지만, 한국어가 다소 어눌했고 '제가'와 '저가'를 잘 구분해서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러 와서 좋고요"를 "저가 좋아하는…"으로 말했던 거죠. 몇 달 뒤 인터뷰를 보면 한국어가 훨씬 유창해졌지만, 16살 소년의 인터뷰는 이강인 선수가 얼마나 한국 문화와 멀어진 생활을 했는지 보여줬습니다.

그래도 뿌리까지 잊지는 않았습니다. 2018년, 툴롱컵에서 4~5살 많은 형을 제치고 베스트 4위에 들면서 축구계가 이강인을 주목합니다. 스페인 축구협회는 이강인에게 "귀화하면 병역을 면제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하죠. 그러나 이강인 선수를 설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강인 선수는 휴대폰과 가방에 태극기를 붙이고 다닐 만큼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열망하던 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발렌시아에서도 1군으로 올라갑니다. 일종의 월반을 한 겁니다. 발렌시아가 이강인에 대해 갖는 기대감은 엄청났다고 전해집니다. 다비드 실바를 닮은 발재간과 슛돌이로 입증한 스타성, 여기에 노력까지 더해졌으니 말이죠. 2019년 1월, 17세 327일의 나이로 한국 선수 중 가장 어린 나이에 라리가에 데뷔를 합니다. 이는 손흥민 선수가 가진 직전 최연소 기록인 18세 111일 보다 빠릅니다.


이강인이 '나쁜 팀원'이 된 과정


이강인 선수의 발렌시아CF 시절.

이강인 선수의 발렌시아CF 시절.

순탄할 줄 알았던 발렌시아와의 생활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마르셀리노 토랄 감독과의 관계 때문이었는데요. 토랄 감독은 "17세가 발렌시아 1군에서 꾸준히 뛰긴 어렵다. 아직 이강인의 자리는 없다. 뛸 자격이 생기면 뛰게 해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인터뷰한 겁니다. 그런데 이때가 이강인이 국가대표로 엄청 잘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2019년, U-20 월드컵에 나가서 준우승에, 골든볼을 받아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발렌시아 팬들도 이강인의 실력을 알아보았고요. 발렌시아 CF가 국왕컵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날 무수히 많은 팬이 감독에게 "이강인을 써! 이강인을 써! (Saca Kang-In Lee! Saca Kang-In Lee!)"라고 외치는 장면은 한국 축구 팬들마저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소속팀에만 오면 '아직 어려서 안 돼'라고만 하니, 급기야 국내에선 이런 질문까지 받게 된 겁니다.

기자: 발렌시아에서 설 자리가 없잖아요? 더 많이 뛸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도 있고….
이강인: 그건 모르죠. 아직 시즌이 안 시작했으니까 상황을 봐야지….
-2019년 인터뷰 (당시 18살)

기자의 말투는 공격적이었고, 10대에 불과했던 이강인의 표정도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주변에선 팀을 옮기라는 조언도 쏟아졌고요. "이강인이 이적 결심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죠. 그러자 토랄 감독은 "다음 시즌 계획에는 이강인이 있다"고 수습합니다.


'아들'에서 '왕따'로


문제는 이러는 와중에 토랄 감독이 교체됐다는 겁니다. 직전 시즌에 국왕컵 우승까지 했던 감독이 경질되니까 경질의 원흉으로 이강인과 토레스 선수가 꼽힙니다. '발렌시아 축구단은 아시아 시장 진출을 노리는데 이강인을 안 쓰면 어떡하느냐', '유소년 출신 선수들을 더 많이 기용하라'는 게 당시 구단의 입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토랄 감독을 신뢰했던 동료 선수들과 불화가 시작되는데요.
2020년 9월, 셀타 비고와의 경기. 프리킥을 차는 문제로 같은 팀 가야와 언쟁을 벌이는 이강인의 모습. 〈출처=마르카 캡쳐〉

2020년 9월, 셀타 비고와의 경기. 프리킥을 차는 문제로 같은 팀 가야와 언쟁을 벌이는 이강인의 모습. 〈출처=마르카 캡쳐〉


그전까지는 "팀 선수들이 이강인을 아들처럼 대해준다" 이런 인터뷰가 있었던 반면, 이후에는 주장 파레호 선수 등과 껄끄러워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2020년, 기회를 더 얻고 싶은 이강인과 아직 그가 못 미더운 베테랑 선수들의 갈등이 불거지죠. 프리킥을 차고 싶어 당시 주장 가야와 언쟁을 벌이죠. 라커룸에서 13살 많은 수비수 자우메 코스타와 언쟁을 벌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불운이 겹칩니다. 후임 알베르트 셀라데스 감독도, 하비 가르시아 감독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납니다. 팀은 강등 위기에 빠졌고 선수들의 갈등은 깊어집니다. 원래 이강인과 발렌시아의 계약은 2022년까지였지만, 이강인은 1년 먼저 마요르카로 떠나기로 하고요. 이강인은 발렌시아와 결별하면서 계약 보너스를 포기하는 대신 미래의 이적료를 선택하기로 하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런 내용도 공개됩니다.

"제가 발렌시아에 도착했을 때 이강인은 이미 팔렸고, 함께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강인이 나쁜 팀원이라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놀랐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이강인과 이틀 간 훈련할 수 있었는데, 저는 코칭 스태프에게 그가 최고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를 내보내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호세 보르달라스 감독, 전 발렌시아CF 감독 (2023년)


4명의 감독 vs. 클린스만


3년 사이 4명의 감독(토랄, 셀라데스, 가르시아, 보르달라스)을 겪은 '왕따 시절'과 '해줘 축구'로 방관만 한 클린스만 감독.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선수들 사이에 오해와 불신이 쌓이는 전개는 이번 '탁구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감독의 리더십 부재'라는 환경에서 '세대 갈등'이 표출됐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여기에 이강인의 '솔직한 성격'이 사건을 키웠다는 시각이 더해집니다. 발렌시아 시절, 구단의 전설 펠만은 이강인에게 조언을 남겼는데 "이강인은 화를 내기도 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이강인 나이에 흔한 일이 아니"라며 인성적으로 더 완성되어야 함을 강조했죠.

이강인과 함께 팀을 꾸려본 적 있는 한 감독은 "내가 겪은 이강인은 순수하고 착하다. 인성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형 동생 개념이 약하고 승부욕도 강해서 2~3살이 아니라 나이 차가 10살 가까이 나는 선수들과 마찰이 생겼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건 스승의 가르침, 감독의 리더십인데 외국인 감독이 우리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막내 천재'로는 충분하지 않다

20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요르단과 한국의 경기. 손흥민과 이강인이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요르단과 한국의 경기. 손흥민과 이강인이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강인 선수와 손흥민 선수의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됐지만 그럼에도 이번 '탁구 사건'은 팬들에게 충격이었고 "이강인을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강인 선수가 이제 더는 막내도 아니고,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라면 그에 걸맞게 사리 분별을 해야 한다는 게 팬들의 눈높이입니다. 국가대표라면 '인내할 줄 아는 성숙함'을 갖추라는 요구인 거죠. 이번 일이 그 눈높이에 맞는 선수로 재도약할 계기가 될지, 오랜 기간 이어온 오름세가 꺾이는 뼈아픈 순간이 될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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