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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4년 연기 인생 '소풍' 나문희의 진정한 프로 의식

입력 2024-02-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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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프로 의식이 빛을 발했다.

말이 필요 없는 국민 배우 나문희(82)가 영화 '소풍(김용균 감독)'으로 '영웅'(2022) 이후 약 1년 2개월 만에 관객들과 마주했다. 20년 지기 매니저에게 보답하고자 그의 아내인 조현미 작가가 직접 집필한 작품에 오랜 우정을 자랑하는 배우 김영옥과 함께 출연을 결심했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좋았으나 마음 한 구석에 '아픈 남편'이 자리했다. 생각이 분산되는 게 싫고 연기에 몰입하고자 '소풍' 촬영이 끝날 때까지 부산 남해에서 줄곧 살았다. 다만 취침 전에 늘 '여보 사랑해'를 외치며 남편의 쾌유를 바랐다. 촬영 종료 이후에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64년 동안 한결같은 연정으로 연기 외길 인생을 걸어온 나문희가 프로 의식을 발휘한 복귀작 '소풍'은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어린 시절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은심과 금순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여러 난관 극복 후 가족애, 우정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전한다.
[인터뷰] 64년 연기 인생 '소풍' 나문희의 진정한 프로 의식
-'소풍' 극본을 매니저의 아내가 집필했다고 들었는데.
"맞다. 내가 매니저를 내비게이션이라 부를 정도로 상황 파악을 잘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느 작품이 잘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더라. 그래서 매니저가 정하는 건 믿음으로 쭉 하고 있다. '소풍'도 처음에 봤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매니저가 20년 넘게 도와줬는데 나도 한번 크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함께하게 됐다."


-'소풍'으로 김영옥과 함께 호흡 맞춘 소감이 어떤가.
"애초 시작할 때 다른 배우들도 친하고 좋지만 이 작품은 호흡이 잘 맞아야 될 것 같았다. (김)영옥 언니는 바라만 봐도 무엇인가 느껴지는 돈독한 사이라 같이 했으면 했다. 그리고 영옥 언니와 나는 배고픈 시절에 연기를 했다. 그때 이미 인생 공부를 해 놔서 절실함도 있고 면역력도 나름 갖췄다."


-김영옥 배우가 거절할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배우 섭외도 고려했나.
"사실 처음에 영옥 언니가 ('소풍'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조건과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웃음). 이후 '김영옥 언니 안 하면 나도 안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기다렸다. 영옥 언니가 그래도 나를 생각하는지 (생각을 바꿔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소풍'의 차별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 작품은 우리 나이가 돼야 연기가 가능하다고 본다. 내 나이가 되니까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영옥 언니와 박근형 모두 내가 자부하는 클래식 배우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진한 인생'을 작품에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노년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사실적인 게 중요하다. 내가 맡은 인물에 가까운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 오랫동안 현장에 있고 집에 와서도 계속 대본 생각만 한다. 매번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과감하고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힘썼다."
[인터뷰] 64년 연기 인생 '소풍' 나문희의 진정한 프로 의식
[인터뷰] 64년 연기 인생 '소풍' 나문희의 진정한 프로 의식
-촬영 당시 남편이 투병 중이었는데 힘들진 않았나.
"촬영을 할 때 영감이 아팠다. 하지만 동생과 큰 딸에게 영감을 맡겨 놓고 (촬영장인) 부산 남해에서 줄곧 살았다. 한 순간도 다른 곳에 가 있지 않았다. 아픈 영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으나 생각이 분산되는 게 싫었다. 다만 저녁마다 '여보 사랑해' 하면서 잠들었다."


-지난해 12월 남편을 떠나 보냈다.
"영화 촬영을 다녀와서 보니까 상황이 나빠졌더라. 다른 작품에서 잠깐 나오는 걸 찍고 나니 영감과 보낼 시간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게 '백만송이 장미' 노래 가사와 맞더라. 미워하는 마음 없이 순수하게 사랑을 할 때 꽃이 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꽃을 피워 봤다."


-작품에서 다룬 존엄사, 연명치료 등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병원에서 이 사람이 회복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를 다 알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회복이 안 된다면 연명치료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남편이 아플 때 누워 있는 게 더 지옥 같더라. 우리 영감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보건소에서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승인을 해 준다고 하더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걸 받고 지옥에서 해방 됐으면 좋겠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OST에 참여한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를 관람하지 않았나.
"임영웅의 공연을 봤는데 사람이 녹을 수밖에 없더라. 하하. 진국인데 똑똑하고 배려심이 넘쳤다. 김영옥이 (임영웅) 찐팬 1호다. 속으로 '왜 이렇게 좋아하나' 싶었는데 내가 (콘서트에) 직접 가보니까 홀딱 빠지게 생겼더라.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는데 나한테 노래해 주는 듯 했다. 임영웅에게 많이 고맙다."


-'일산에 사는 호박고구마' 사연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편지를 썼다. '일산 사는 호박고구마'라고 썼는데 선택이 됐다. 그 자리에서 그걸 (임영웅이 직접) 읽어줬다. 나도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몇 번 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나문희의 연기 인생 전환점은 무엇인가.
"MBC '거침없이 하이킥'(2006)이다. 호박 고구마가 나를 이렇게 먹여 살릴 줄 몰랐다. 하하. 꼬마들도 나에게 '호박 고구마 할머니'라고 한다. 우리 손주가 11살인데 친구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얼마 전에도 12장을 해줬다. ('거침없이 하이킥' 출연) 전까지는 연기를 할 때 그 옷을 입혀놓고 그 대본을 주면 이렇게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나에게 요술봉이 있는 걸 깨달았다. 그걸 흔들면 '호박 고구마' 하고 나온다. 이후 연기할 때마다 요술봉을 흔들고 있다(웃음)."


-해외 진출 생각은 없나.

"어떤 감독님이 외국에서 교포 작품을 (촬영) 한다고 하더라. 거기에 할머니가 필요하다고 나한테 말해 '너무 좋다'고 했다. 이제 영감을 안 봐도 되니까 집에 식구가 없다. 날개 달고 연기하다 죽어도 되는 팔자가 됐다. 미국 촬영은 '아이 캔 스피크'를 찍을 때 해봤다. 당시 현장에서 그 사람들이 (외국에서) 어떻게 하는지 봤다. 조금은 당황했지만 말은 통하지 않아도 주어진 걸 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상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anghoo@jtbc.co.kr(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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