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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저절로 나오지"…매일 그림 그리는 '92세' 화가 할머니

입력 2024-02-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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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아흔두 살 화가가 마을에서 배워 그린 그림들입니다. 충북 옥천에 사는 이학무 할머니는 눈이 침침하고, 손이 떨려도, 10년 전 처음 잡은 연필로 주위에 따뜻함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몽글터뷰 이상엽 기자입니다.

[기자]

[내 이름은 이학무. 내 나이는 91. 설 쇠면 92]

[이학무/화가 할머니 : (할머니가 마을에서 화가로 알려졌어요) 글쎄 그린다고 그렸더니 화가가 돼버렸어]

[이학무/화가 할머니 : (저 할머니 찾으려고 서울에서 3시간 운전해서 왔어요) 찾아온 것도 신기하고. 내가 뭐라고 이렇게 찾아왔나 싶기도 하고]

[이학무 할머니 아세요?]

충북 옥천의 한 산골마을입니다.

이곳에 92세 화가 할머니가 산다고 합니다.

[주민 : (경로당이 있네. 물어봐야겠다. 계세요? 안녕하세요. 식사하세요? 혹시 이학무 할머니 아세요?) [누구 할머니? (이학무 할머니 아세요?) 이학무가 없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화가는 안다고 합니다.

[주민 : (아니면 성함 말고 혹시 이 마을에서 그림 그리는 할머니 안 계세요?) 아 저 너머에 있어요. 여기는 없어요. 복지관도 열심히 다니고. 그림도 참 잘 그리고. (그래요?) 네. (그 할머니를 직접 만나봐야겠어요.) 이 동네 넘어가면 이쪽 동네에 있어요. 나한테 언니지. (혹시 학무언니한테 하실 말씀 있으세요?) 없어.]

달이 뜨고 밤이 깊었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이학무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할머니 집에 와보니 여기저기 스케치북이 보입니다.

모두 할머니가 그린 그림들입니다.

이제 눈이 잘 안 보이고 손도 떨리지만 다시 연필을 잡습니다.

오늘은 고양이를 그립니다.

[이학무/화가 할머니 : (고양이 이름은 뭐예요?) 응? (고양이 이름) 이름. 글쎄. 나비. (나비라고 지으실 거예요?) (고양이 좋아하진 않으세요?) 좋아는 안 해]

할머니는 언제 어디서 처음 그림을 그렸을까.

10년 전 어느 날 동네 복지관이었습니다.

[이학무/화가 할머니 : (내가) '그림 그리는 것 좀 보면 안 되겠느냐' 그러니까 (복지관 직원이) '왜 안 되냐고' 날 데리고 미술반으로 가더라고. 스케치북, 지우개, 연필 다 주면서 하라고. 그날부터 시작한 게 오늘날까지]

가장 잘 그리는 그림은 꽃입니다.

[이학무/화가 할머니 : 보라색도 있고 분홍색도 있고 라일락도 여러 가지 색이 있어]

이렇게 그린 그림은 모두 필요한 곳에 나눴습니다.

아직 할머니 자신을 그리진 않았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학무/화가 할머니 : (할머니도 그려본 적 있으세요?) 안 그려봤어. (왜 안 그리세요? 예쁘시잖아요.) (왜 그릴 생각 안 하셨어요?) 뭐하려고 그려. 그린 게 더 낫네 그럴까봐. 내가 나를 그리면 더 예쁘게 그릴 테지. 실물보다]

할머니는 2남 1녀 중 막내로 자랐습니다.

국민학교만 졸업해 글을 잘 배우진 못했습니다.

집안의 막내로 또 가정의 엄마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자식들이 출가한 뒤 홀로 살며 외롭고 불행하다 느낀 때도 있었습니다.

행복하고 싶어 웃음 치료도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연필과 스케치북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그림이 할머니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 겁니다.

[이학무/화가 할머니 : 웃음 치료하는 건 없었어. 아무 걱정이 없어지니까 웃음이 저절로 나오지. 열심히 살다 보면 다 살게 되고 행복해지고 그래. 마음이 행복하지.]

[이학무/화가 할머니 : 학무야. 너 참 잘 살았다. 열심히 참아가며 잘 살았어. 고마워]

할머니는 내일도 그림을 그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학무/화가 할머니 : (저를 그리시면 어떻게 그리실 거예요?) 잘 그려주면 또 그려달라고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못생기게 그려줄 거야. 다시 그려달라 소리 안 하게. (잘생겼는데 못생기게 그리기 쉽지 않잖아요)]

[쵤영 김진형 / 제작 이정민 / 디자인 이정회 황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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