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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살 찌푸려지는 정당 현수막, 서울도 뗀다…국회 법 개정은 '안갯속'

입력 2023-12-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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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정권 이완용의 부활인가!'
'OOO판 더 글로리, 죄지었으면 벌 받아야지'
'50억 도둑놈들 특검하라'

오늘부터 서울시에서는 특정인의 실명을 표시해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없습니다.

혐오나 비방, 모욕이 담긴 내용을 써서도 안 되며, 걸 수 있는 정당 현수막 개수도 제한됩니다.

서울시가 이런 내용을 담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오늘부터 공포·시행했습니다.

국회가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법안 처리를 손 놓고 있는 사이, 지자체들이 조례를 개정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당 현수막 철거에 나선 겁니다.

지난 8월 국회 앞에 걸려있던 정당 현수막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국회 앞에 걸려있던 정당 현수막들. 〈사진=연합뉴스〉

'특정인 비방·모욕 안 돼'…조례 위반하면 강제 철거


이번에 통과된 서울시 조례안에는 현수막에 혐오, 비방, 모욕, 인종차별, 불법을 조장하는 내용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당 현수막의 경우 지금처럼 별도로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며 장소 제한 없이 게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수 제한이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구별 행정동 개수 이내로 제한되는 거죠.

또 현수막 내용에 특정인의 실명을 표시해서 비방하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특정 단체를 비방하는 내용도 없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위반한 현수막이 있다면 각 자치구 판단에 따라 현수막을 철거 명령하거나 직접 제거할 수 있습니다.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후 민원·안전사고 끊이지 않아

 낮게 걸린 현수막 줄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걷는 행인들.〈사진=이지현 기자〉

낮게 걸린 현수막 줄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걷는 행인들.〈사진=이지현 기자〉


서울시의회가 이런 조례안을 만든 건 난립하는 정당현수막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시민 안전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당 현수막도 원래는 일반 현수막처럼 허가와 신고를 거쳐 지정된 장소에만 걸 수 있었는데요.

지난해 6월 여야 국회의원들은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했습니다. 정당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과 달리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장소나 개수에 관계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지난해 말 이 법이 시행된 이후 현수막 난립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아이들 등하굣길에 혐오와 비방 표현이 섞인 현수막이 여럿 걸려있어 시민들 민원이 끊이지 않았죠.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옥외광고물법 시행 3개월 동안 6515건이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은 법 시행 이후 3개월 새 1만 4197건으로 2.2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시민들 안전도 위협받았습니다. 너무 낮게 걸린 현수막 줄에 보행자 목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법 개정 이후 시민들의 안전사고도 8건 발생했습니다.

여론도 싸늘했습니다. 서울시의회가 지난 9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78%는 '정당 현수막이 정당 정책이나 정치 현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답했습니다.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해 정당 현수막을 관리해야 한다는 응답도 84.5%에 달했습니다.

결국 국민의힘 소속 허훈·이성배 서울시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달 개정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울산시 관계자가 울주군 범서읍의 한 전봇대에 걸린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울산시 관계자가 울주군 범서읍의 한 전봇대에 걸린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시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가장 처음 정당 현수막 규제 조례를 만든 건 인천시였습니다.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설치 개수도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소 이내로 제한하며, 현수막 내용에는 혐오와 비방이 없어야 한다는 게 조례안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인천에 이어 광주, 울산, 대구에서도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조례를 시행하고 있고, 조례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지자체도 여럿이죠.

“조례만으로 강제 철거 쉽지 않아”…실효성 있을까


다만 지자체들의 조례안이 정당 현수막 난립을 막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옥외광고물법에선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지 않고 있는데, 조례만으로 이를 강제철거하거나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 행안부는 가장 먼저 조례를 개정하고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에 나섰던 인천시를 대법원에 제소하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요.

시의 조례가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에 저촉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후 대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긴 했지만, 다른 지자체들도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상황.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자치구에서 민원 등을 판단해 자체적으로 철거 결정을 내리긴 하겠지만, 쉽지 않다고들 이야기한다"며 "법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자치구 판단으로 특정 정당 현수막을 떼는 게 부담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년부터 규제한다더니…옥외광고물법, 국회서 계류 중

지난 10월 국민의힘은 전국 길거리에서 정쟁성 현수막을 모두 철거하고 이와 유사한 목적의 각종 당내 태스크포스(TF)도 대폭 정리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국민의힘은 전국 길거리에서 정쟁성 현수막을 모두 철거하고 이와 유사한 목적의 각종 당내 태스크포스(TF)도 대폭 정리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무분별하게 내걸린 정당 현수막을 제한하려면 결국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국회는 지난달 정당 현수막에 일부 제한을 두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소관 상임위(행정안전위원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개정안은 정당 현수막을 읍면동 별 2개 이내로 설치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보행자나 교통수단의 안전을 해치는 장소에는 현수막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수막에 담긴 혐오나 비방 표현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을 두지 않았습니다.

강병원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1소위원장은 "이 법에서는 정당 현수막 내용을 규제할 수는 없다"면서 "여야가 본회의장에서 고성과 피케팅을 하지 않기로 신사 협정한 것처럼 정당 현수막 내용도 국민들에게 정치 불신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긍정적인 내용, 정책 중심으로 바꿔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초 행안위를 통과한 법안은 원래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아직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오는 20일과 28일에 본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법사위도 맞춰 열릴 것"이라며 "다만 해당 안건이 상정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정치활동에 제약이 되는 법안에는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회 법 통과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고, 민원도 끊이지 않아 지자체들이 조례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례안에 담긴 내용은 모두 법에서 규정한 범위 내에서 만든 것으로, 상위법에 위배되는 사항은 없다"며 "조례를 벗어나는 정당 현수막은 지자체가 충분히 철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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