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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예요" 술 먹튀했는데…업주는 당할 수밖에 없다?

입력 2023-12-12 18:14 수정 2023-12-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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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미성년자예요. 죄송해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수증 사진입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소주, 맥주, 하이볼 등 각종 주류와 안주 총 16만 7200원이 찍힌 영수증. 뒷면에는 쪽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실물 신분증 확인 안 하셨어요. 신고하면 영업정지인데 그냥 갈게요.'

글을 올린 게시자는 '남자 2명과 여자 4명이 먹튀하고 현장에 남긴 쪽지'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하면 업주가 처벌을 받는다는 점을 악용해, 음식값을 내지 않고 도망간 '먹튀'로 추정됩니다.

업주는 이들을 신고해 처벌받게 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에게 술 팔면 '영업정지' 처분


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업주 역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식품위생법 제44조 및 관계 법령에 따르면 식품접객업자는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반하면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는데요.

1차 위반 시에는 영업정지 2개월, 2차 위반 시 영업정지 3개월, 3차 위반하면 영업허가 취소 또는 영업소 폐쇄의 행정처분을 받게 됩니다.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 미성년자들을 가게에 들여 술을 판매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미성년자가 가짜 신분증을 들고 와 업주를 속인 뒤 술을 마셨다면 어떻게 될까요.

식품위생법 제75조에서는 '청소년의 신분증 위조·변조 또는 도용으로 식품접객업자가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폭행 또는 협박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행정처분을 면제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변조하거나 도용한 경우 이를 모르고 술을 판매했다면 면책받을 수 있지만, 처벌을 면제받는 비율은 3%에 불과하다. 〈사진=pixabay〉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변조하거나 도용한 경우 이를 모르고 술을 판매했다면 면책받을 수 있지만, 처벌을 면제받는 비율은 3%에 불과하다. 〈사진=pixabay〉

위조 신분증에 속아 팔았더라도…처벌 면제는 어려워


문제는 처벌을 면제 받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신명철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는 “판례를 보면 실물 신분증이 아닌 핸드폰 사진으로 찍은 신분증을 확인한 경우에는 업주가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실물이 아닌 이상 위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행정처분을 면제해주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 변호사는 또 “죄는 있지만 경미하다는 의미로 수사기관이 기소유예 처분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행정처분 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업주들은 영업정지를 피하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0~2022년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해 적발된 사례는 6959건이었습니다.

그중 행정처분을 면제받은 사례는 194건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적발 건수의 2.8%에 불과한 겁니다.

“실물 신분증으로 얼굴 대조해가며 엄격히 확인해야”


그렇다면 술을 구매한 미성년자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요.

술을 구매한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처벌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신분증을 도용하거나 위조한 데 대해서는 공문서 부정행사죄, 위·변조죄 등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죠.

이번 사례처럼 음식값을 내지 않고 도망간 경우에는 무전취식 또는 사기죄 등에 따라 처벌받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신명철 변호사는 “이번 사례에서 업주가 청소년들을 신고해 처벌받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점주 역시 영업정지 등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며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한 뒤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애초에 실물 신분증을 얼굴과 대조해 엄격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업자 부담 완화' 여론 많아…법제처 “올해 중 개정안 발의”

법제처는 나이 확인과 관련해 사업자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올해 안에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법제처는 나이 확인과 관련해 사업자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올해 안에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신분증까지 바꿔가며 나이를 속이는 미성년자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는 자영업자들. 이 때문에 법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습니다.

올해 초 법제처와 국민권익위원회는 만 나이 도입을 앞두고 사업자 부담 완화 방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는데요.

응답자의 80.8%가 '나이 확인과 관련해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업자의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부담 완화 방안으로는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업자에 대한 행정제재처분 완화'가 47.9%로 가장 많았습니다. 사업자에 대한 형사처벌 수준 완화 또는 벌금의 과태료 전환'을 선호하는 답변도 16.2%였습니다.

또 기타 의견으로 많은 응답자들이 '구매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죠.

법제처는 법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이 확인과 관련해 사업자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안을 마련해 올해 안에 발의한다는 계획인데요.

법제처 관계자는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변조해 법 위반을 고의로 유발할 경우 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는 면책규정이 모든 법령에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예를 들어 주류를 판매하는 식품접객업은 면책규정이 있지만 숙박업소는 면책규정이 없어 무조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업종마다 다른 면책규정을 보완해 여러 업종이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외에도 나이 확인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줄이기 위해 사업자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만약 신분증 제시 요구에 불응하면 업소 출입을 막는 등의 조치도 취할 수 있도록 법에 근거를 명시할 방침입니다.

다만 주류 구매자인 청소년에 대한 처벌 강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법제처 관계자는 “관련 법령을 준비하면서 연구용역을 진행했는데, 해당 연구용역에서는 술 등을 구매하는 청소년을 처벌하는 해외 입법례를 찾지 못했다”면서 “따라서 구매자 처벌보다는 판매자 처벌 면책 규정을 확대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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