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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혁신이 필요한 상황…리더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

입력 2023-11-13 08:35 수정 2023-11-13 09:49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09)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 4주년 기획
녹색성장 15년, 탄소중립 선언 3년…전문가에게 묻다
현실로 찾아온 기후위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6)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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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09)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 4주년 기획
녹색성장 15년, 탄소중립 선언 3년…전문가에게 묻다
현실로 찾아온 기후위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6)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는 재앙입니다.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과학자들에겐 분명한 사실이고요. 모든 것은 그간의 예측, 그리고 반복했던 경고와 일치합니다. 유일하게 놀라운 점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뿐입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끔찍하게도, 고작 시작에 불과합니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역대 최고기온 기록이 새롭게 수립된 지난 7월에 한 말입니다. 온난화는 더 이상 극지방이나 적도 지역의 문제가 아닌, 한때 '사계절이 뚜렷한' 특징을 지닌 한반도의 문제로 다가왔죠. 농업생산성도, 어획량도, 노동 환경도, 수출 경쟁력도… 기후변화 그 자체뿐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2022년, 국내에서 구글을 통해 가장 많이 검색한 검색어는 '기후변화'였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카타르 월드컵, 우크라이나 사태 등 각종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가 국내 최다 검색 키워드로 선정된 겁니다. 단순히 '검색'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위기 인식'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연말, 161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샤이 탄소중립'? 조용히 높아진 기후 감수성〉에서 전해드렸듯, 시민 82%가 “기후변화는 일상, 사회경제활동, 재산 및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답했고, 90%가 “국가나 개인이 노력하면 기후변화 문제를 막거나 늦출 수 있다”고도 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미약하기만 합니다. 1998년, 첫 기후변화협약 대응 범정부 대책기구의 구성 이후 25년의 세월 동안 각종 기구가 만들어졌고, 대책이 발표됐음에도 말입니다. 지난 8월, 감사원조차 “정부는 미래 기후변화에 따른 중장기 위험 예측 없이 물·식량 분야의 기후위기 적응과 관련한 사업·정책 등을 수립·추진했다”고 감사 결과를 내놨을 정도였죠. 미래 기후변화로 물 부족이 심화하고, 쌀 생산성이 감소하는 등 주요 위험요인이 도출됐음에도, 이에 따른 적절한 대책 마련이 부족했다는 지적입니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도 이뤄내지 못했는데, 대책마저 미흡한 상황.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녹색성장 15년, 탄소중립 선언 3년이 흐른 상황에서, 최소한 다른 선진국들에 크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라도 따라가기 위해선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기후변화 대응의 각 분야별 전문가 11명과의 연속 인터뷰, 6번째 인터뷰이는 한국 최초의 환경전문 공익재단의 창립멤버로, 환경운동의 최일선에 있는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입니다.

Q) 대표님께선 오랜 기간 기후변화를 비롯한 각종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탄소중립에 앞서 녹색성장으로 거슬러 가보면, 국가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한 것도 어느덧 15년이 됐는데요, 그 사이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정책 여건이나 사회 전반의 관심도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이를 해외와 비교해봤을 땐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A) 지난 2006년, 스턴 보고서(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이 세계은행 수석경제연구원 시절 발표한 '기후변화의 경제학에 대한 스턴 보고서') 발간 직후, 환경재단은 〈Stop CO2 캠페인〉, 〈350 캠페인〉 등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없었고, 이 내용을 대중들에게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후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환경재단은 기후변화센터를 만들고, 이듬해부터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을 열어 10기에 걸쳐 운영했습니다. 운영 초반엔 해외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접했을 뿐,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기후변화라는 주제에 관심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녹색성장'이라는 주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7개의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허가한 것도, 지금은 허구이자 사기로 판명된 '클린 디젤'을 장려하며 경유 승용차를 권장한 것도 그때의 일입니다. 4대강 개발 역시, 생물다양성 등 생태적인 관점엔 반하는 일이기도 했고요. '녹색'이라는 표현과는 앞뒤가 안 맞는 면이 있던 겁니다.

15년이라는 세월 사이, 경제 성장에 비해 기후변화 정책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큰 변화로는 2021년 8월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사회 전반의 관심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시민 개개인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기후변화 대응이 앞자리에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사진: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사진: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과학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종종 사람들이 많은 곳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하곤 합니다. 팬데믹 이후, 그리고 최근 더욱 빈번해진 국내외 대형 산불이나 침수, 가뭄 등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걱정도 하고는 있지만, “날씨가 왜 이래?” 정도의 푸념에 그칠 뿐,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이나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관심도 국내 경제 상황처럼 '양극화'된 모습입니다. 관심이 커진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여전한 것이죠.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청년층, 주로 여성, 어린이, 환경단체 프로그램 참가자분들은, 이제 관심을 넘어서 정책의 부재에 분노하는 상황인 만큼, 기후변화 인식도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업의 경우, 팬데믹 이후, '글로벌 투자 큰 손' 블랙록의 영향으로 ESG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ESG를 실제 내면화하여 실행에 나서는 기업은 일부에 그칩니다.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만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죠. 또, 지금도 그렇지만, 해외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언론의 보도 방식 같습니다. 해외 주요 언론들은 기후변화 섹션을 따로 두고, 과학과 경제 측면에서 깊이 있게 '매일'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해외토픽처럼 사건·사고로 단발적 보도에 그치는 것 같아 매우 아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박상욱 기자가 이렇게 연재를 이어간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이고요.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사진: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사진: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Q) 이후로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와 지금, 우리 사회는, 정부는, 산업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아니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까요?


A)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난 15년간 정부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탄소중립 선언을 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안타까움도 많습니다. 탈원전은 시민운동의 언어입니다. 선거 캠페인 동안 이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집권 후에까지 이를 이어간 것이 아쉽습니다. 원자력발전은 사양산업이고, 앞으로 경쟁력도 없는 철 지난 비즈니스입니다. 폐기물 문제는 영원한 숙제이고요.

그러나 지난 60년간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에 있어 원전의 역할이 컸던 것 또한 사실인데, 종사자들을 모두 범죄자로, 타도의 대상으로 몰아간 것은 누구에게도 실익이 없는 자세였습니다. 실제로 원자력발전 관계자든, 석탄화력발전 관계자든, 그 누구든 빨리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나설 '에너지전환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데, 친원전 대(對) 탈원전의 싸움으로, 외려 전환의 발목이 잡힌 꼴이 되었지요.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현 정부에선 친원전이 정책의 주요 기조가 되면서, 반대로 재생에너지 정책은 잠수 중이고요. 기후재난이 날로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산업계만 보더라도, 기관 투자자뿐 아니라 소액주주와 소비자 욕구의 변화로 이러한 전환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대기업들을 시작으로 점차 전환의 시동을 거는 상태인 것이죠. 정부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드라이브를 건다면, 산업계 또한 전환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 상황에선 눈치 보느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에너지 문제는 국가 경제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제발 정치권의 손이 타지 않게, 중립적·중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너무 꿈같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요.

Q) 국제사회와 '온실가스 40% 감축'을 약속한 시간인 2030년은 속절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가장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가장 부족하고,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일까요?

A) 우선, 지금은 산업 전반뿐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삶의 양식에 있어 혁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은 리더에 대한 신뢰와 그 리더의 방향 설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리더십은 원전 이야기만 하고 있죠. 이것이 정부와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매우 큽니다. 어느 공무원이 리더의 어젠다를 거스르고 재생에너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요. 어느 기업이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하고, 대대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나가겠습니까. 때문에, 리더의 생각을 바꾸는 전략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환경부가 여러 가지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규제기관이 입법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도 바쁠텐데, 시민단체처럼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캠페인은 시민단체에 맡기고, 카페에서 종이컵 하나라도 안 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그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지금의 편리하고도 풍요로운 생활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표현마저도 '빈티지'로 존재하게 됐으니까요. 이를 넘어서 에너지 자체를 청정에너지로, 에너지를 쓰는 시민들이 그 에너지로 인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때인 것이죠.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사진: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사진: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Q) 2050 탄소중립 달성 여부를 두고 볼 때, 여러 면에서 다른 선진국 대비 열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강점,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이를 통해 그저 '안 될 일'이라고 낙담하기보다 작게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A) 우리나라 청년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에너지는 대단합니다. 지금 주위에 퍼지고 있는 알맹상회, 보틀팩토리 등, 일찍이 친환경 메지지를 실제 생활에 접목한 이 여성리더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수이지만, 티핑 포인트를 지나서, 이런 삶의 방식이 기준이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Q)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있어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써 일반 시민 독자와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관계자, 입법을 하는 국회 관계자, 각종 활동의 주체인 산업계 관계자 각각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금은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할 때입니다. 누구 탓을 하기엔 시간도 없을뿐더러, 탓만 하다가는 정작 문제 해결도 어려워지죠. 당장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선거 과정에서 기후 매니페스토를 탄탄히 준비한 이들을 잘 감별해 선출하는 일일 것입니다. 변화하고 싶어도 선택할 대안이 없다면 누가 바뀌겠나요. 지금과 같이 개인의 삶의 변화를 요청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산업화로 촉발된 기후재난인 만큼, 또 다른 산업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기후 테크'에 대한 투자와 창업의 열기가 대단히 뜨겁습니다. 2000년대 초반, C테크(Climate, Carbon, Clean Technology) 투자를 시작한 L. 존 도어는 저서 〈스피드 & 스케일〉에서 기후재난보다 빠르고, 대규모의 기술혁신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2022년 5월, 스탠포드 대학에 1조 3천억원을 기부했죠. 이 기부금으로 아무 제약 없이, 학과라는 장벽 없이, 기후재난에 맞설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인 대학원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선 이런 학교가 나오기 어렵죠. 교수들끼리 융합도 어렵고, 학제간 연구도 잘 안되는 풍토입니다. 그래서 환경재단이 올해부터 기후 테크 스타트업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액셀러레이터가 되어, 잠재력 있는 청년들을 모아서 기후변화 교육 잘 시키고, 창업할 수 있게 투자를 해보려고 합니다. 법적으로 제한들이 있지만, 누구 눈치 볼 필요 없는, NGO만의 특성을 잘 살려보려 합니다.

“억만장자가 되려면, 억만명의 고민을 해결하라.” 엑스프라이즈 재단 피터 디아만디스 이사장의 철학입니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솔루션, 특히 탄소 감축 기술은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과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투자에 나서야 할 일입니다. 예비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게 촉진하는 교육은 NGO가 하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혁신이 필요한 상황…리더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 4주년 기획, 〈녹색성장 15년, 탄소중립 선언 3년…전문가에게 묻다: 현실로 찾아온 기후위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릴레이 인터뷰는 조명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18대 환경부 장관), 서정석 김앤장 ESG경영연구소 전문위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 이동근 서울대학교 교수(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장),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성창모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특임교수(녹색기술센터 초대 소장),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센터장, 이선경 대신경제연구소 ESG리서치센터장, 조공장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 등 11명의 전문가와 함께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혁신이 필요한 상황…리더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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