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돈 쓰는 법도 알려줘야"…자립준비청년에겐 교육도 절실

입력 2023-09-11 18:24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아동보호시설에서 받던 한 달 용돈이 4만~10만원 정도예요. 그걸 아껴 쓰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큰돈이 들어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죠."(신선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활동가)

'자립준비청년'들이 겪는 고충입니다.

자립준비청년이란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를 받다가 보호가 종료돼 자립하는 청년을 말합니다. 현재 법적으로는 만 24세까지 시설에 머무를 수 있죠.

청년들이 홀로서기를 잘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는 보호가 종료된 뒤 5년 동안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자립정착금 1000만~1500만원을 1회 지급하고, 보호 종료 후 5년간 매달 자립수당 40만원을 지원하는 겁니다. 이외에도 주거 지원이나 의료비 지원, 취업 지원 등을 하고 있죠.

정부와 지자체는 매년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내년부터는 자립정착금을 2000만원으로 늘리고, 자립수당도 매달 5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물론 자립준비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지원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액수만 늘어나는 경제적 지원이 도움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자립준비청년과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오늘(11일) 국회에서는 '자립준비청년의 지속가능한 자립, 국가의 책무입니다'라는 주제로 정책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오늘(11일) 국회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지원 정책간담회. 〈사진=이지현 기자〉

오늘(11일) 국회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지원 정책간담회. 〈사진=이지현 기자〉

"큰돈 한 번에 다 쓰는 경우 많아…일찍부터 경제교육 필요"


한때 자립준비청년이었던 신선 활동가는 최근 정부의 지원금액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청년들의 경제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신 활동가는 "자립준비청년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 단순히 돈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그 돈을 다 썼을 때의 막막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만난 자립준비청년들은 큰돈이 들어왔을 때 잘 쓰기 어려워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최근 지원책이 경제적 지원에만 몰려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변성환 제주자립지원전담기관 기관장도 "매달 생활비 7만원 정도를 받던 친구들이 저축을 해 봤겠냐"며 "수중에 있는 돈은 다 써도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지원금이 한 번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다 써 버린다"고 했습니다.

변 기관장은 "금융지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라면서 "지원금을 늘리려면 그에 앞서 아동기 때부터 체계적인 금융경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열여덟 어른' 캠페인. 〈사진=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캡처〉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열여덟 어른' 캠페인. 〈사진=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캡처〉

"유년시절부터 꾸준한 심리상담 이뤄져야"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0년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의 50.0%는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최근 국무조정실이 19~24세 일반 청년을 대상으로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험'을 물었을 때 '그렇다'는 답변은 2.4%에 불과했죠.

어린 시절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부모의 사망 등을 겪은 뒤 보호시설에서 지내다가 자립을 준비해야 하는 청년들은 심리적으로 더 취약합니다.

정부에서는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등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이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역부족이라고 현장에서는 지적합니다.

배승민 인천길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20년 넘게 쌓인 청년들의 심리적 문제를 10회 정도의 심리상담으로 푸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어린 시절부터 꾸준하고 연속적으로 전문 심리 상담이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선 활동가도 "어린 시절 가정이 해체될 때에도 돌보지 않았던 마음인데, 성인이 다 돼 이미 닫혀버린 상태에서 꺼내놓으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며 "가정이 해체되고 사회적 편견으로 혼란스러웠던 유년기 때부터 심리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락 두절' 청년 20.2%…"적극적으로 발굴해야"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매년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청년은 2000여 명. 정부 지원을 받는 자립준비청년은 올해 7월 기준 1만 1403명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 20.2%는 연락이 두절돼 지원을 받을 수조차 없습니다. 특히 친인척 등의 가정에서 보호를 받던 가정위탁 자립준비청년의 연락두절률은 30%에 이릅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매년 1회 전화로 청년들을 모니터링 하는데, 번호가 잘못됐거나 연락을 회피하는 경우는 도움을 줄 수 없는 겁니다.

가정위탁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친인척이 지원금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어 일부러 연락을 회피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립준비청년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허 조사관은 "일부 지역 지원전담기관에서는 청년들에게 유용한 식품 꾸러미를 지속적으로 보내 마음의 문을 열게 하거나, 전화가 안 되면 우편을 보내 청년들에게 연락을 취한다"면서 "특히 생활고로 전화 연락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는 만큼 지원기관이 지자체나 경찰 등과 협력해 적극적으로 청년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청년들을 지원하는 전담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도 시급한 문제입니다.

허 조사관은 "지원전담인력에게 높은 경력과 직급을 요구하면서도 보수기준은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춰져 있지 않다"며 "낮은 처우와 명확하지 않은 보수 기준 때문에 지원전담인력 충원율은 89.4% 정도이고 이직도 잦은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종사자 처우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내년 예산안에 지원전담인력을 확충과 인건비 확대가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