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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논란 大환영? '치악산' 제목 고집보다 불쾌한 홍보 방식

입력 2023-08-3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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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논란 大환영? '치악산' 제목 고집보다 불쾌한 홍보 방식

오랜만에 불편하고 불쾌하고 더 나아가 처참한 '하수'의 홍보 마케팅 방식을 보고 있자니 측은함조차 사치가 된 모양새다. 이슈와 화제성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에도 선은 있다. 찰나의 관심에 잠식된 행보는 결국 독이 됐다.

영화 '치악산(김선웅 감독)'이 개봉 전부터 비호감 도마 위에 올랐다. '무관심보다 나은 비난'이 목적이었다면 일정 부분 성공이다. 하지만 엉망진창 과정에 의한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고, 당연히 '과연 영화는 얼마나 잘 나왔을까'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지고 있다.

'치악산 괴담' '토막 시신' 등 자극적 문구와 함께 공개한 개봉 고지 이후에도 특별한 존재감이 내비치지 못했던 '치악산'이 갑자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받게 된 건 토막 난 시체를 그대로 그려 넣은 포스터가 시작이었다.

해당 포스터는 토막 난 사람의 시체 형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단순 잔혹함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괴함과 역겨움을 선사했다. 이미 공개가 됐음에도 정보 제공용 기사에 차용하지 못할 정도로 의도가 불분명한 포스터는 이슈를 위한 이슈라 하더라도 이를 직접 제작한 감독의 사상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를 적극 활용한 '치악산' 측의 홍보 방식은 더 최악이었다. '김선웅 감독이 공식 사과문을 냈다'고 하면서 보도자료 타이틀은 '네티즌의 뜨거운 갑론을박'으로 내걸고 '신선한 충격이라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4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등 문구를 사용했다.

무엇보다 당시는 도심 곳곳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등 범죄가 매일 뉴스를 장식하던 시기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었고, 이를 떠나 포스터 자체도 심의가 걸려야 할 만큼 단순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치악산' 측은 사태의 심각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준비된 수순처럼 마케팅을 펼쳤다.

애초 포스터가 일제히 퍼지게 된 경위부터 "개인 SNS에 게시한 개인적 용도의 콘셉트 아트가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 온라인에 배포된 경로와 방식에 관계없이, 해당 이미지를 보고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께 정중히 사과 드린다"는 김선웅 감독의 사과까지 진정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은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해의 범주는 이미 넘어섰지만, 힘겨우면서도 치열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스크린에서 '어떻게든 작품을 알리기 위해 애쓴다'는 취지가 아주 보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치악산' 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치악산이라는 실제 지명에 대한 원주시와의 갈등을 키우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치악산'은 40년 전, 의문의 토막 시체가 발견된 치악산에 방문한 산악바이크 동아리 산가자 멤버들에게 일어난 기이한 일들을 그린 리얼리티 호러 영화로 소개되며 '1980년 18토막이 난 시신 10구가 잇따라 발견됐다'는 치악산의 괴담을 소재로 한다.


원주시와 원주 치악산 구룡사 신도연합, 원주시관광협의회 등은 지난 28일부터 사실상 매일 기자회견을 열며 '치악산' 측의 움직임에 반발을 표하고 있다. 이들은 실화도 아닌 괴담으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를 우려하며 '치악산' 제목 변경과 대사 삭제·묵음 처리, '허구의 내용' 고지 등을 요청했다.

'곡성' '곤지암' 등 실제 지명을 사용한 영화가 없었던 것도 아니기에 논의에 따라 잘 해결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지만 여기에서도 '치악산' 측의 마케팅 포인트가 발목을 잡았다. 해결 되지 않은 협상 과정을 보도자료로 배포해 역시 노이즈 마케팅으로 써먹은 것.

사실 '치악산' 제목에 대한 원주시의 움직임은 토막 시체 포스터 공개 전부터 지역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여기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포스터가 기름을 부었고, 원주시와 여러 협회, 시민 단체 모두를 들끓게 했다. 이에 개봉까지 버티려는 '치악산' 측의 알맹이 없는 해명들은 무용지물이 됐다.

원주시 측은 "회의 석상에서는 시의 제안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뒤돌아서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행태를 보면 협상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살고 원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무시하고 위협하는 행위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 신도연합도 "공식 입장마저 홍보 수단으로밖에 사용하지 않는 영화 제작사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치악산의 대찰로 꼽히는 구룡사 주지 해공스님은 "영화 홍보 전략이라 생각하는 제작사에 타격을 줄 수 있도록 상영 금지 요청과 보이콧을 전개할 생각이다"고 항의했다.

실제 원주시를 비롯해 단체들은 '치악산' 개봉과 상영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치악산' 측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31일 오후 공식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를 강행한다. 내달 13일 개봉 변경 의지도 아직은 없다. 일부 시민 단체는 시사회 현장을 직접 찾아 개봉 연기와 내용 수정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곡성'도 '곤지암'도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힘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하지만 "15세 관람가로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다"는 '치악산' 측의 일부 설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선정적 홍보 문구들과 토막 시체 포스터 제작에 물음표를 달게 만들 뿐더러 마지막 보루인 결과물에 대한 기대도 힘 빠지게 한다. 과연 작품으로 모든 이슈를 설득하고 납득하게 만들 수 있을지 '치악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영화보다 더 매섭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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