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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 공개'까지 해도…양육비 지급률은 9%뿐

입력 2023-08-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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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사진=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75년생 김OO 씨·채무액 3350만원, 73년생 박OO 씨·채무액 1억 2550만원.

여성가족부가 오늘(30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람들의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총 4명의 실명과 나이, 주소와 직업, 밀린 양육비 액수가 공개됐죠.

이들 외에도 양육비를 주지 않은 57명은 출국이 금지됐고, 34명은 운전면허가 정지됐습니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에게 제재를 가하는 건 지난 2021년 7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아동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양육비 지급 이행률을 높이는 차원에서 정부가 제재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이 조치가 양육비 지급으로 이어지는 실효성 있는 제도인지를 두고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전체 양육비 미지급자 중 제재대상은 '극소수'


일단 정부의 제재를 받는 사람은 전체 양육비 미지급자 중 극히 일부입니다. 양육비 미지급 소송 절차를 따져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이 해체되면 양육비 지급 판결을 통해 양육자는 양육비 채권을 갖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요구할 수 있는 거죠.

만약 상대방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양육자(채권자)는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 소송을 낼 수 있습니다.

법원의 이행명령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감치 소송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감치 소송에서 감치 명령이 내려지면 양육비 미지급자(채무자)를 최대 30일 동안 구치소나 유치장에 가둘 수 있습니다.

감치명령을 받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이때 제재 조치를 신청할 수 있는 겁니다. 운전면허를 정지시키거나 출국금지, 명단공개 중 조치를 취해달라고 신청하는 거죠.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는 신청이 들어오면 사안을 심사해 제재대상을 결정합니다.

결국 정부의 제재 조치가 내려지기까지 양육자는 수차례의 소송을 거쳐야 하는 겁니다.

특히 감치 소송에서 감치 판결을 받아내야 제재 조치를 신청할 수 있는데, 채무자들이 위장 전입을 하는 등 송달 서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면 감치명령을 받기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해 피해를 보는 아동이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그 수를 감안했을 때 정부 제재를 받은 채무 불이행자 수는 턱없이 적다"고 지적했습니다.

구 대표는 "제재까지 가려면 보통 2~3년 넘는 시간을 소송에 매달려야 한다"면서 "양육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양육자들이 몇 년 동안 소송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너무 복잡한 이행 절차와 감치 판결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 결국 양육자들을 포기하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사진=중앙 DB〉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사진=중앙 DB〉

제재 받는다 해도 지급하는 사람은 8.9%뿐


어렵게 제재 조치까지 받아냈다고 하더라도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지난 2021년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정부의 양육비 채무 불이행 제재 조치를 받은 사람은 총 772명.

그 중 제재 조치를 받은 뒤 양육비를 전부 지급한 사람은 30명이었습니다. 전부가 아닌 일부라도 지급한 사례는 39명이었죠.

그러니까 양육비를 전부, 또는 일부라도 지급한 사람은 772명 중 69명, 9%도 채 안 되는 수준인 겁니다.

바꿔 말하면 91%가 넘는 사람들은 정부 조치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고 있는 겁니다.

제재가 약하다 보니 양육비 지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구본창 대표는 "정부가 명단을 공개한다고는 하지만 사진도 없고 주소도 완전히 특정되지는 않는다"면서 "미지급자가 특정되지 않는 명단공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운전면허 정지도 100일 동안만 정지될 뿐이고, 그마저도 생계형 운전자라고 하면 제재에서 제외한다"면서 "3개월만 지나면 다시 회복되니 시간을 끌고 버티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감치명령 없이도 제재 가능해야"…국회 논의는 아직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4월 제1차 한 부모 가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4월 제1차 한 부모 가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재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감치 명령' 제도를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길고 복잡한 소송 과정을 줄여 양육비가 빠르게 지급돼야 아동 생존권이 보장된다는 겁니다.

여성가족부도 지난 4월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만으로도 양육비 미지급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바뀐 건 없습니다. 여가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법안을 논의해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습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감치명령 없이도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논의는 아직 시작도 되지 못했습니다.

2021년 정부의 제재 조치가 시행된 뒤 제도를 보완하는 각종 법안들이 수십 건 발의됐지만, 역시 제대로 논의된 건 없습니다.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제재 조치도 실효성 있는 수준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이영 대표는 "미국의 경우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뿐 아니라 의사 면허증 등 전문 자격증까지 모두 정지시킨다"면서 "우리도 각각의 제재 조치가 가지고 있는 예외 조항들을 보완해 양육비 이행을 촉진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생계나 일상보다 아동의 생존권을 우선 생각해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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