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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로 받아야 할 존재"…'더 문' 김용화 감독의 인류애

입력 2023-08-26 06:58

'인류애 충전' 영화 '더 문' 김용화 감독 인터뷰
한국형 SF 도전 또 시행착오…아쉬운 성적 뒤 작품 의미
286억 우주 영화 완성도·판타지 아닌 현실 밀착 메시지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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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 충전' 영화 '더 문' 김용화 감독 인터뷰
한국형 SF 도전 또 시행착오…아쉬운 성적 뒤 작품 의미
286억 우주 영화 완성도·판타지 아닌 현실 밀착 메시지 '박수'

〈사진=CJ ENM〉

〈사진=CJ ENM〉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로 이어진 것일까. 한국형 SF 영화의 도전은 이번에도 흥행보다 제작 의의에 더 큰 힘이 실어졌다. '할리우드 우주 영화 못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기술력은 120% 증명했지만, 아쉽게도 현재 관객들이 원하는 극장 영화가 무엇인지, 그 심리는 읽어내지 못한 모양새가 됐다. 물론 그럼에도 '진짜 이 성적을 받는 게 맞냐'는 물음표는 분명 유효하다. 타이밍에 우주의 기운까지. 이번엔 모조리 작품과 엇갈렸다.

쌍천만 '신과 함께' 시리즈 이후 약 5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기에 더 씁쓸하다.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에서 '호(好)'의 위치에 있던 관객들에게는 더 더욱 서글픈 결과가 됐다. 올 여름 시장 빅4 중 한 편으로, 야심차게 등판한 '더 문'이 극장 관객수 50만 명으로 사실상 상영을 마무리 지었다.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SF 장르로,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따진다면 작품 한 편에 공들인 과정은 감히 단순하게 설명조차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언젠가, 누군가는 했어야 할 프로젝트. 김용화 감독이기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 문'에 대한, '더 문'을 향한 감독의 목적과 목표는 명확했고, 전매특허 인류애도 져버리지 않았다. 김용화 감독이 건네려 했던 위로,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꼭 받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숱한 작품을 했지만 늘 처음 하는 것 같다"며 숨기지 못했던 긴장감과, 시행착오 끝 받아 든 운명은 절치부심, 김용화 감독을 또 다른 새로운 길과 꿈으로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CJ ENM〉

〈사진=CJ ENM〉



-어느 때보다 많은 국내외 경쟁작이 여름 시장에 맞붙었다.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개봉 한 달 전부터는 생각이 단순 명료해 진다. '내 것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미 있는 도전에 최선을 다 했다면 후회는 최소화 되기도 한다. 극장 상황도 코로나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오히려 작품이 많을 때 장점도 있고 영화인으로서 '다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큰 건 모두 같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 작품을 만들 때마다 라이벌은 우리가 세운 목표 그 자체이기 때문에 경쟁은 그 다음이다."

-'비공식 작전'과 동시 개봉했다. 배우들과는 전작 '신과 함께' 시리즈 쌍천만 기록을 함께 세운 인연이기도 한데.
"처음엔 사실 조금 당황했다. 보통 사이즈가 큰 작품들이 개봉 시기를 정할 땐 배급사들끼리 서로 상의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가 특히 너무 위중한 상황이 됐다. 각 투자 배급사의 존폐 위기가 달려 있을 만큼. 개봉이 늦어진 작품들에 대해 '창고 영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사실 누가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었겠나. '비공식 작전'도 여러 부담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두 배우들도 그렇지만 김성훈 감독과도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최근 누리호 발사 성공을 비롯해 실제 우주 과학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주의 기운이 남다르다.
"시나리오를 쓸 때 '2030년 달 착륙 계획을 갖고 있다. 탐사선이 내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근데 지난해 발사 된 다누리(국내 첫 달 탐사선)에 대한 이야기는 몰랐다. 상상을 못했는데 그것도 성공을 했다. 실제로 초 고해상도 영상을 찍어 나사에 팔고 있다. '더 문' 시나리오를 판타지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실현 가능한 일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겠다'는 확신이 조금 더 들기는 했다. 나에게 우주의 기운은 '신과 함께' 때 이미 온 것 같다.(웃음)"

-한국형 SF, SF 장르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호불호는 여전히 갈리고 있다.
"여전히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고 계시고,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더 늦어지면 영원히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영화 형태로 남지 않을까' 아쉽기도 하더라. '신과 함께'를 제가 만든 것 이상으로 크게 반응하고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과거 잘했던 것을 열심히 하느냐, 새로운 응원과 도전의 목소리를 듣느냐'를 두고 고민하다 현재 우리의 기술적 완성도를 먼저 확인해 봤다. 덱스터에서 '승리호' '유랑지구' VFX 작업을 하면서 '이제는 우주로 나가도 되겠구나' 싶어 도전하게 됐다."

〈사진=CJ ENM〉

〈사진=CJ ENM〉


-약 280억의 제작비가 들었다. 국내에서는 높은 수치지만, 할리우드 우주 영화와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게 마무리 했다.
"VFX 예산이라는 것이 프로덕션 비용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걸 빼놓고 우주와 달, 우주선 등을 포함한 영화들은 VFX 쪽으로 제작비가 50% 이상 쓰인다. '그래비티' 제작비가 1억 달러(한화 약 1343억 원) 넘게 들었으니 VFX에는 못해도 500억 원이 든 것이다. 우리는 61억 정도만 VFX에 맞췄다. 한국 영화 시장을 생각했을 때, 사용 가능한 예산 안에서 그 이상의 버젯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샷 수를 줄이되, 높은 품질로 완성도를 높였다. 하나의 장면 만으로 충분한 '극강의 4K로 올려보자'는 것에 승부수를 띄웠다."

-버추얼 스튜디오 촬영은 비중이 어느 정도였나.
"20% 정도를 목표로 했었는데, 실제로는 20%가 채 안 됐다. 덱스터가 운영하는 버추얼 스튜디오는 카메라 렌즈를 컴퓨터가 인식해 실시간 연동하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후에는 전체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인데, 이번에는 예산, 환경과 어느 정도 타협했다. 편집에서 삭제 된 장면도 있지만 게이트 웨이는 전부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달을 배경으로 했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별보다 달이 더 친근할 것이라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별 아닌가. 지구의 적당한 인력 때문에 존재하는 별이기도 하고. 사실 우리가 보는 건 달의 정면이고, 뒷면은 볼 수 없다. 때문에 달의 뒷면을 소재로 한 영화도 보지 못했다. 앞면은 정서적으로 따뜻한 판타지가 있는 반면, 뒷면은 칠흑 같이 어두운 공간이다. 극과 극의 양면이 영화적으로 좋은 설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고증도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달은 다른 별들과 달리 인류가 착륙도 했고, 관련 정보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한국이 그 만한 데이터를 갖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인데, 항우연(한국항공우주연구원) 천문연(한국천문연구원)에 자문을 구하기도 했고, 미국 나사(NASA)의 방대한 오픈 소스도 참고했다. 자료가 의외로 굉장히 관대하게 열려 있다. '더 문'에 나오는 별들은 실제 별이다. 나사에서 별을 긁어와 피사체와 정확히 합성해 우리 배경으로 활용했다. 12K 소스를 4K에 맞췄다. 어마어마한 화질이다.

스토리 관련 부분도 시나리오에서 세 군데 정도 의심이 될 만한 지점이 있어 검증을 받았다. 우주 영화를 만든다는 사람이 아주 무지몽매하게 준비하지는 않으니까.(웃음)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은 아예 쓰지 않았고, 의견도 내지 않았다. 때문에 유추해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드라마틱하고 다니내믹한 설정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확인은 필요했다. '이게 가능 합니까?' '달 뒷면이 정말 이럴까요?' '유성은 진짜 이렇게 내립니까?' 여쭤봤고, 과학자 분들이 상세하게 리뷰를 보내 주셨다. 물론 달 뒷면에 유성이 떨어지는 건 누구도 못 본 장면이지만 '그럴 법 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오히려 '영화 만드는 사람은 이런 발상도 하는구나'라면서 응원도 해주시더라."

-유성우가 떨어지는 신은 굉장히 현실감 넘쳤다.
"물리적 충격도에 대해 시뮬레이션 한 나사 데이터가 있다. VFX 슈퍼바이저가 여러 데이터 접목하고 계산해 완성했다. 다만 드론 추력에 대한 부분은 사실 달은 공기가 없어 불가능한 것이 맞다. 하지만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을 위해 꼭 필요한 설정이라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CJ ENM〉

〈사진=CJ ENM〉



-도경수가 이미 많은 것들을 보여준 배우이기는 하지만, 300억에 가까운 대작 주인공으로 선택했을 땐 감독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의견이 조금 다를 수 있는데, 나는 첫 영화 때부터 '주연은 굳이 노바디가 아닌 이상에야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는 상태에서 잠재적 가치를 아직 많이 보여주지 않은, 어떤 이미지 정립이 안 된 배우가 맡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모든 영화를 그렇게 캐스팅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습니다'라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가 완성도 있게 나온다면 영화 배우로서 아주 큰 스타성 갖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다. '더 문' 역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도경수 아니면 상상할 수 없다'는 반응을 얻을 자신이 있었다. 영화를 잘 만들었을 때 이미지 후광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주저 없이 캐스팅 했다."

-육체적이 고생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몸을 잘 쓰는 부분까지 염두한 캐스팅이었나.
"'세상의 모든 배우는 모든 연기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캐스팅을 할 때 경수 배우의 어떤 운동 신경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 친구가 노래를 그렇게 잘하고 춤을 그렇게 잘 추는 친구인 줄 몰랐다. 그 유명한 '으르렁'도 '신과 함께' 캐스팅을 하고 나서 들었다.(웃음) 극중 황선우 대원이 엄청난 고생을 하는데 그게 줄 하나 채운 것이 아니다. 기본 6개 정도 채워서 무술 팀, 와이어 팀과의 호흡도 맞춰야 한다. 근데 그 팀들이 놀랄 정도로 경수 배우가 잘해줬다. 코어 근육이 없으면 못하고 진짜 운동 신경이 뛰어나지 않으면 못하는데 해내더라."

-김래원과 이이경은 초반 깜짝 등장해 오프닝 시퀀스를 담당했다.
"김래원은 학교 후배다. 내가 데뷔하기 전 이미 하이틴 스타였고,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다. 학교 다니 땐 잘 몰랐고, 밖에 나와서 친해졌다. 어느 날 '형님 작품에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출연 시켜 달라'는 말을 하더라. 감독으로서 고맙지 않나. 라인업을 보다 ''더 문'에 우정 출연 해줄래?' 부탁을 하게 됐고, 흔쾌히 '오케이' 답변을 줬다. 현장에 와서는 ('신과 함께') 이정재 씨 만큼 후회를 하더라. 우주복을 입고 와이어 탈 줄은 몰랐다고. 하하. 우정 출연은 확실하게 우정이 생겨야 한다. 하는 둥 마는 둥 카메오 출연이라면 '굳이'라는 생각도 있다. '없었던 우정도 더 생기게 해줄게'라면서 혹독하게 함께 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EBS 특강을 보다가 우주를 관찰하는 박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 인간적 갈등은 어떻게 해소하세요?'라는 질문에 '살다 보면 당연히 여러가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땐 소주 2~3병을 사들고 갈등이 생긴 사람을 불러 잠깐 나가자고 한다. 어떤 산에 올라가면 광활한 우주가 보인다. 거기에 앉아 소주 한 잔을 건네면서 대화를 나눈다'고 하더라. 그런 분마저도 '별을 보면 내 스스로가 미진해지고 숭고해 진다'면서 '여러 분도 그렇게 해 봐라'라는 조언을 건네시더라.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너무 작다. 우린 그 안에 먼지 만큼도 안 되는 존재다. '시야를 넓혀 관계를 살펴보면 좀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박사님의 이야기에 큰 울림을 느끼기도 했다. '더 문'의 플롯 안에 추가적으로 연결한 부분들이 있다."

-스토리의 전체적인 플롯은 결국 '구출'이다. 클리셰로 보일 수 있는 소재와 설정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을 것 같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50가지 플롯'이라는 책이 있는데, 작품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이 50가지 안에 다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탈출과 구출도 당연히 그 범주 안에 있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새로운 것을 하려다 이상한 선택은 안 했으면 한다. 도전과 시도를 놓고 본다면 '미스터고' 같은 설정이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분명히 있지만 많은 공부를 한 것도 사실이다. '더 문'은 내가 느낀 용서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다. 구출은 서브 플롯이다. 거기에 달을 보고 우주를 보는 체험 속에서 2시간 내 각 인물의 서사와 관계성을 촘촘히 넣어야 했다. 시나리오에는 있었지만 최종 편집에서 빼낸 것들도 있다."

-기준은 무엇이었나.
"블라인드, 모니터링 시사 반응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상한 범위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영화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하면 무엇에 더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지 드러나게 돼 있다. 감정도 뭔가 단어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선이 굵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선우와 아버지의 관계도 보다 심플하게 정리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영화가 완성됐다."

〈사진=CJ ENM〉

〈사진=CJ ENM〉



-'신파'라고 표현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있기에 매 작품 나올 수 있는 스토리 아닐까 싶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은 있을 것 같다.

"따듯한 시선이라기 보다는(웃음) 나는 나를 포함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위로 받아야 할 존재라 생각한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원통하고 아픈 사연이, 희망했고 승리했고 성공한 것보다 더 많지 않나. 요즘 뉴스를 봐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개개인의 아픔과 사연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한 부분을 영화도 위로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감정적으로 과했을 때 느낀 것을 '신파'라는 의견으로 표현하시는데, 영화는 기본적으로 희로애락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 '느닷없냐, 아니냐' '플롯 안에 녹아있는 이야기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10명이 영화를 보고 10명 모두 만족한다면 베스트겠지만 그런 영화는 사실 본 적이 없다. 한 번에 5점 만점이 나올 수도 없고. 다만 나는 매 순간, 매 프레임이 소중했고 감정적 측면은 조심히 다뤘다. 산만함 보다는 깊숙한 감정 하나를 깊은 쪽으로 파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영화적인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OTT가 대세 반열에 오른 시대에서 '체험형 영화'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옛날부터 말씀 드린 부분인데, 내 관점에는 OTT 환경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극장 문화를 조금 더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TV 드라마에 쓰여지는 예산과 비교해 극장 영화를 통해 느끼는 만족감이 컸다. 지금은 드라마,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가 웬만한 영화를 능가한다. 그렇다면 자명해진다. 극장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극장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결과적으로는 시청각적 차별화다. TV, 특히 OTT는 비강제적인 조건에서 보다가 잠깐 쉬면서도 콘텐트의 질을 느낄 수 있다. 그와 달리 몇 시간의 집중력이 꼭 필요한 영화는 '관객이 극장까지 와야 하는 이유'를 작품으로 증명해야 한다. '두 시간의 체험형, 몰입형 콘텐트를 만드는 것이 확률적인 측면에서는 낫지 않나' 싶다."

-다음 작품도 기술적 진보에 방향성을 두게 될까.
"엄청 의연한 척 하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그러면 아내가 나를 가만히 관찰한다. 내가 신경을 많이 쓰고 예민해 하니까 며칠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오빠 도전은 그만해'(웃음) 아무 말도 못하고 집에서 나왔던 기억이 난다. 늘 '흥미로운 것을 한다'고 말하는데, 52년을 그렇게 말하면서 살다 보니 어떤 사상이 됐다. 똑같은 기회 비용이 주어진다면 잠깐 쉬는 동안 로맨틱코미디 같은 작품도 하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있다. '라라랜드'를 보면 그런 영화도 만들고 싶고, 근데 살다 보니 인생의 좌표가 이렇게 흘러왔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도 아내가 나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질문으로 반문을 하게 되더라. 내 자아도 '한 두 작품 정도는 편하게 가자' 고민에 쌓여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판타지를 별로 안 좋아한다. 하하. 15년 전 영화 전문 매거진에서 '인생 영화 10편을 뽑아 달라'고 해 보낸 적이 있는데 그걸 봐도 판타지는 한 작품도 없다. '부기나이트' '사이드 웨이' 등 전부 휴먼 드라마나 로코 성향이 강하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좌표나 목표를 세우고 가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도 한다. 작품이든 인생이든 뭐든 많이 규정 짓지 않고 살려 노력하고 있다."

-할리우드 진출 계획은 어느 단계인가. 시간이 조금 흐르긴 했지만 마블 히어로 창시자 스탠 리(Stan Lee) 제작사와 '프로디걸'로 할리우드 데뷔를 준비 중이었다.
"하다가 중간에 조금 관계가 복잡해지는 일이 있었다. 스탠 리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판권 소유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일단 그 작품의 연출은 고사한 상태다. 지금도 에이전트를 통해 제안이 들어오긴 하는데,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영화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크다.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할리우드를?' 같은 작품과 마음이라면 한국에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리 말로 연출하기도 버거운데.(웃음) 혹 할만한 제안은 아직 없었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금까지 영화를 시켜 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세대가 교체 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한데,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와 한국 영화를 발전시켜줬으면 좋겠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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