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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행복 방송'으로 칭찬 민원 491건 받은 기관사…차창 비치는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타인라인]

입력 2023-08-07 14:18 수정 2023-08-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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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칭찬 민원 491건 받은 6호선 김정주 기관사
ㅣ'행복 방송', 터널 속 외로움 버티게 한 원동력

김정주 기관사는 6호선에서 가장 많은 민원을 받은 기관사입니다. 20년간 491건(8월 3일 기준)이나 받았습니다. 놀라운 건, 전부 '칭찬 민원'이라는 점입니다. “기사님!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나요?” 한 번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얼굴도 모르는 기관사에게 수백 명의 승객이 마음을 전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20년 경력의 6호선 김정주 기관사

20년 경력의 6호선 김정주 기관사


“무덥고 습한 날씨에 짜증이 나기 쉬운데요. '가장 의미 없이 보낸 하루는 한 번도 웃지 않고 보낸 하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러 더 웃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고 하니, 건강한 웃음으로 보내시는 하루 되시길 응원합니다.”

계획한 일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만큼,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오늘도 자신을 믿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힘내시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김 기관사는 10년 넘게 '행복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승객에게 행복을 주는 안내 방송입니다. 각자의 짐을 안고 열차에 오른 승객들에게 늘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격려하는 말들을 건넵니다. 이 말들은 승객들의 마음에 가닿아 희망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힘든 일들은 모두 열차에 두고 내리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인 셈입니다.
 
'행복 방송'을 위해 수첩에 적어놓은 멘트들

'행복 방송'을 위해 수첩에 적어놓은 멘트들


열차 내 스피커를 통해 승객들에게 전하는 방송, 일방향 소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위로를 건네받은 승객들은 '고객의 소리'를 통해 긴 편지를 적어 보내기도 하고, 열차가 정차하는 짧은 시간에 기관사석으로 달려가 창문으로 '엄지 척' 사인을 보내고 가기도 합니다. “말씀 안 해주시면 저도 사실 모르거든요. 직접 표현해주시니 정말 감사하고 힘이 되죠.”

노하우도 생겼습니다. 소음이 적은 구간에서만 방송하는 것, 그리고 두괄식이 아닌, 미괄식으로 멘트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승객이 이어폰을 끼고 있다 보니, 처음부터 좋은 말을 하게 되면 못 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인사로 방송이 시작된다는 걸 알린 뒤, 이어폰을 뺄 때쯤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말하는 식입니다. 좋은 글귀를 기록해두었다 써먹기 위해, 영화나 책을 볼 때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 건 덤입니다.
 
승객에 '엄지 척' 사인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는 김정주 기관사

승객에 '엄지 척' 사인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는 김정주 기관사


때로 어떤 말들은 돌고 돌아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합니다. “차창에 비치는 제게 하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기관사라는 직업은 긴 시간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일이거든요. 실제로 마음의 병을 얻는 동료 기관사들도 있죠. 저 역시 사람이다 보니 감정적으로 힘들 때가 있는데요. 저는 방송하면서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글들을 모아두고, 계속 보잖아요. 저 스스로 하는 말 같아 위로가 많이 돼요. 제가 20년을 버텨온 건 어쩌면 이 방송 덕분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베테랑 기관사이지만 여전히 '출입문을 안 열고 지나가는 악몽'을 주기적으로 꾼다는 김 기관사. 어두운 터널은 매일 달려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혹여 사고가 날까 매 순간 긴장한 채 기관사석에 앉지만, 기관사로서 자부심은 20년째 한결같습니다. “어디 가서 제일 크고 비싼 차 몰고 다닌다고 말해요. 집까지 안 갈 뿐이지만요. 농담이고요. 저뿐 아니라 저희 기관사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 베스트 기관사로서 승객분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저희 믿어주시고 즐겁게 이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 기관사는 오늘도 시민의 발이 되어 터널을 돌고 돕니다.

■[타인라인]은 어느 한 가지에 몰두한 '타인'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더 많은 '타인'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JTBC 어니언 스튜디오' 를 구독해주세요!
■ 타인라인 출연 문의 = lee.sunhwa@jtbc.co.kr

(기획: 이선화 / 제작: 김동건 / 촬영: 김동건 안다빈 / 디자인: 천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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