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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극단적이었던 엔딩" 김강우, 박훈정 세계관 심폐소생

입력 2023-07-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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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튜디오앤뉴〉

〈사진=스튜디오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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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튜디오앤뉴〉


연기력은 매 작품 두 말 할 것 없지만, 재능이 막연하게 낭비되지 만은 않은, 누구에게든 기억될 만한 인생캐를 만났다.

영화 '귀공자(박훈정 감독)'를 통해 이른바 '박훈정 세계관'에 첫 입성한 배우 김강우(45)가 장르에 최적화 된 배우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극 중 원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는 재벌가 자제 한 이사로 분한 김강우는 심장 이식 수술을 위해 코피노 아들을 찾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살린 후, 그룹의 수장이 되려는 야망을 온 몸으로 표출한다. "악역이라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았다"는 김강우의 말처럼, 한 이사는 환경과 상황이 함께 만든 괴물로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물이다. 제3자에게는 거슬리는 모든 것을 처단하는 나쁜 인격체지만 한 이사 스스로는 해야 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박훈정 감독의 인생 역작으로 꼽히는 '신세계'(2013) 이후 오랜만에 박훈정 감독의 색채를 찰떡같이 소화한 배우다. 감독이 원하는 바, 관객이 기대한 바의 필요충분조건을 완벽하게 채웠다. 영화의 완성도, 캐릭터의 설정을 떠나 한 이사와 김강우의 궁합은 좋다. 언제나 열정 넘치는 연기를 펼쳤고, 악역을 처음 맡은 것도 아니지만 '왜 이제 만났을까' 싶을 정도로 김강우는 '귀공자'의 한 이사를 대체불가 캐릭터로 완성했다. 시작부터 다사다난 했던 작품이 결과적으로도 흡족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박훈정 세계관 속 김강우를 만난 건 꽤 짜릿했다. '귀공자'의 아쉬움을 연이어 재회한 '폭군'이 달래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 것도 이례적이다.


〈사진=스튜디오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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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튜디오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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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일부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박훈정 감독 세계관에 입성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나.
"어렵지 않은 시나리오라 술술 읽혔다. 단순하지만 캐릭터 색깔은 분명했다. 캐릭터마다 빨간색 파란색 흰색 까만색 같은 느낌을 명확히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직진하는 영화라 좋았다. 이런 시나리오는 오랜 만이었다."

-스스로는 빌런이 아니라고 했다.
"한 이사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지 남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욕망이 너무 커서 관객 입장에서는 다른 인물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무소불위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기도 하고.(웃음) 하지만 나는 자기 목적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어떤 지점에서는 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내가 악역이다' 하면 뭔가 전형적으로 흐를 것 같더라. 그래서 그런 생각을 최대한 배제했다."

-이전에도 악역을 비롯해 강렬한 분위기를 캐릭터를 여럿 선보였다.
"그럼에도 한 이사는 모험이었다. 완전 상남자에 마초 아닌가. 깔끔하고 젠틀하기만 하지도 않는다. 늘 이글이글 화가 나 있는, 수사자를 생각하면서 연기하기도 했다. 감독님도 그런 느낌을 원하셨던 것 같다."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을까.
"특정 레퍼런스를 잡지는 않았지만 서부극이 떠올랐고 예전 갱들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살리고 싶었다. 다만 국내 작품에는 그런 느낌이 많이 없을 것 같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장고'를 비롯해 해외 작품들을 조금 참고했다."

-무려 장총을 쐈다.
"'우리나라에서 총을 쐈을 때 사람들이 이질감 없이 받아 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초반에는 나도 똑같이 가졌다. 근데 감독님은 전혀 걱정을 안 하더라. '자신 있게 쏘면 괜찮아요'라고 해서 정말 앞 뒤 재지 않는 캐릭터에 맞춰 연기 했다. 배우로서는 현실에서 절대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연기로 표현할 때 재미를 느낀다. 장총도 그랬다. 이질감 별로 없지 않았냐.(웃음)"

-사전 준비를 했나.
"준비는 안 했다. 장총은 많이 쏴보기도 힘들 뿐더러, 촬영 전 어느 정도 반발력이 있는지만 테스트 했다. 예전 경험과 감독님을 믿었다."

-한 이사의 엔딩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죽을 자리를 스스로 잡는 느낌이기도 했다.
"나도 꼭 한번은 말씀 드리고 싶었다. 그게 뭐냐면, 그 소파로 간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우스운 일이다. 바닥에 나자빠져 죽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한 이사이고 그 사람의 가오인 것이다. '여기는 내 공간이고 나의 영역이고 내가 왕이다. 죽어도 내 자리에서 이 모습으로 죽을 것이다' 수사자가 어떻게 죽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코끼리는 죽을 때 자기 영역으로 가서 죽는다고 하더라. 동물적인 느낌으로 '죽어도 너에게 나약한 모습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것을 담아내고 싶었다."


-애초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해진 엔딩이었나.
"죽는 건 이래나 저래나 죽는 건데(웃음) 방법이 좀 달랐다. 원래 버전이 조금 더 극단적이었다. 한 이사가 창문을 깨고 절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촬영에 여의치 않았고, 표현하기도 쉽지 않아 감독님께서 최종 선택하게 된 것이 현재 버전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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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자도 그렇지만 한 이사의 수트핏도 만만치 않다. 특별히 준비한 부분이 있다면.
"감독님이 '남성적인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물마다 의상에서 오는 매력도 신경을 많이 쓰시더라. 선호 씨가 연기한 귀공자 같은 경우는 쓰리피스까지 딱 차려 입은 정장이고, 나는 한겨울임에도 셔츠를 걷고 베스트만 입는, 좀 더 남성적인 느낌의 의상이었다. 신경 쓴 건 아무래도 배가 나오면 안되니까 안 나오게 노력한 정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배가 좀 나오더라. 어깨 사이즈도 유지하려고 했다."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가운색은 직접 골랐나. 가운 입고 장총을 쏜다.
"귀엽지 않았나. 하하하. 의상 팀과 고심해서 골랐다. 처음에는 다소 밋밋한, 수건 같은 느낌이었는데 업그레이드가 많이 됐다. 천도 수입 천이고 돈 많이 들여서 제작 했다고 하더라.(웃음) 맨발이기도 해서 유일하게 걸친 가운에 신경을 썼다. 사실 '슬리퍼라도 신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제안을 했는데, 한 방에 무시 당했다. 감독님께서 '상남자는 맨발이어야 한다'고 하시더라."

-상황에 따라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전하기도 한다.
"돈 보내는 장면은 애드리브였던 것 같다. 살다 보면 웃기려고 웃긴 것이 아닌데 웃긴 순간이 발생하지 않나. 굉장히 긴장되고 엄숙한 순간에 빵 터지는. 사실 그 상황에서 한 이사는 웃기고 자시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다급하고, 이글이글 화가 불타오르는데 아닌 척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위 말해 저렴한 부분이 툭 튀어 나온 것이라고 본다."

-평소 감정이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는 편인가.
"아니다. 난 오히려 반대로 간다. 왜 코미디언 분들이 평소에는 말 수도 없고 내성적인 분들이 많다고 하지 않나. 집에 가면 조용히 계신다고. 나도 캐릭터와 일상은 확실히 다르다. 센 악역 연기를 한다고 해서 집에서도 그러지는 않는다.(웃음)"

-첫 시사회 날 긴장한 김선호를 다독여줬다고. 눈에 보였나.
"내가 원래 시사회나 영화를 볼 때 관객 반응을 잘 살피고 많이 본다. 특히 언론시사회는 영화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최대한 분위기를 파악해 보려고 한다. 나도 매 번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엄청 긴장하고 민망해 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은 사이즈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보인다. 그 날 선호 씨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몸을 들썩이면서 '후~ 후~' 하더라. 처음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근데 진짜 긴장을 많이 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냥 관객이 됐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봐'라고 했다."

-김선호 고아라 강태주 등 후배들과 호흡 맞췄는데.
"현장은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연한 말이지만 촬영장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열심히 한다. 다만 '귀공자' 같은 경우는 액션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다른 작품에 비해 더 불사르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인데, 의욕이 앞서다가 혹여나 다칠까 봐. 열심히 해도 너무 열심히 하더라. 그런 부분에서 아주 작은 조언 정도만 했다. 오히려 내가 그 친구들의 에너지와 의욕을 배웠다"

-김선호는 김강우와 연기할 때 무서웠다고 하더라. 캐릭터 관계에 맞춰 긍정적인 기싸움을 놓지 않으려 했다고.
"우리가 제대로는 마지막에만 붙는다. 그 전까지 모든 에너지를 아주 단단하게 당겨진 줄처럼 팽팽한 느낌으로 갖고 가야 했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면 이 영화의 재미는 끝난다. 지지 않는 기싸움은 당연히 필요했고. 서로 집중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무서울 건 없었을텐데?(웃음)"

-김선호와 호흡은 어땠나.
"김선호라는 배우는 굉장히 장점이 많은 배우더라. 선호 씨가 연기한 전작들을 보지 못하고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딱 보면 스위트하지 않나. 멜로 연기를 잘하는 친구인 줄로만 알았는데 액션도 엄청 잘하더라. 연극도 많이 하고 무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았다. 그러한 배우와 두 작품 연속 함께 한다는 건 즐거운 작업이다"

〈사진=스튜디오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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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까지 박훈정 감독, 김선호와 그대로 함께 했다. 캐릭터가 달라져도 연기하는 배우가 같기 때문에 기시감에 대한 우려도 있었을 것 같다.
"감독님도 같은 고민을 하셨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박훈정 감독님 작품 속 캐릭터들이 강하지 않나. 세고 평범하지 않다. 다른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야 하고. 그래서 고민이 되기도 했다. 나 역시 처음엔 감독님께 '걱정 된다' 말씀 드렸지만 '이런 이런 부분에서 그런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답을 주셨고, 나 역시 그것에 수긍했다. 나중에 작품을 보면 이해하고 납득하게 될 것이다."

-큰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까.
"'귀공자'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나부터 비주얼과 말투, 걸음걸이를 싹 바꿨다. 선호 씨도 마찬가지고. 인물 색깔이 아예 180도 다르다. 감독님은 아마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런 재미도 있더라. '귀공자'에서는 선호 씨와 실제로도, 캐릭터로도 친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맞붙는데, '폭군'은 친분이 있는 상태에서 대립한다. '귀공자'를 같이 한 것이 도움이 됐다."

-'귀공자'에서 박훈정 감독이 뜻한 바를 가장 잘 받아 먹고 표현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라. 본인이 생각하기엔 어떤가.
"사실 감독님은 현장에서 많은 디렉팅을 주는 분은 아니다. '시나리오 읽어봐 주세요' 하셨고, 내가 읽은 후 감독님을 뵀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감독님의 생각을 물으면 '현장 와서 놀다 가세요'라는 식으로 말씀 한다.(웃음) 그 인물이 어떤 색깔을 보여야 하는지, 어떤 관계 설정이 주목돼야 하는지 정도는 설명해 주지만 오히려 디테일한 부분은 전적으로 맡겨 주셨다. 나도 감독님과 처음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막연히 '현장에서 굉장히 예민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원시원하게 진행을 하시더라. 배우의 의견도 많이 수용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래서 '폭군'까지 협업이 이어진 걸까. 궁합이 잘 맞아 보인다.
"감독님도 나도 중간 작업 없이 '귀공자'를 끝내자마자 '폭군' 촬영에 들어갔다.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아니고.(웃음) 궁합이라고 하면 난 좋다. 솔직히 작업 자체가 쉽지는 않다. 감독님에게 굉장히 기댈 수 있는 작업이 있는 반면, 박훈정 감독님의 현장은 내가 많이 준비를 해야 리드미컬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는 오히려 편했던 지점도 있다. '귀공자' 땐 '왜 이렇게 말씀이 없으시지' 스스로 의구심이 있었다면 '폭군' 때는 '이렇게 말씀을 안 하시는 건 좋다는 것이구나'라는 걸 알았다. 내 장점 아닌 장점을 이미 알고 계시니까."

-'귀공자'는 촬영 전 김선호의 개인적 이슈가 있었다.
"제가 연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별의 별 일을 다 겪으며 왔다. 하하. 캐스팅은 연출자와 제작진의 결정이고, 배우는 그 안에서 자기 캐릭터만 신경 쓰면 된다. (그 사건에 대해) 내가 언급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감독님의 선택이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서 '내일의 기억' 서예지, '귀문' 김소혜 등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파트너 이슈가 아쉬웠다.
"내 팔자 아닐까 싶다.(웃음) 그걸 뭐 '피해가야지 한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싶다. 항상 평탄하지 만은 않고, 그럴 수도 없으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고. 무던 하지는 않고 나도 굉장히 예민한 축에 속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조금씩 일희일비하지 않게 바뀌는 것 같다. 1, 2년 하고 말 일도 아니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쌓아가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때마다 '이것으로 뭔가 내 인생에 어마어마한 방점 찍을 것이다'는 식의 생각도 예전보다 많이 지양하는 편이다."

-SNS는 직접 하는 것인가.
"회사가 해주는 것 같지 않나. 아니다. 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이다. 하하. 특별할 건 없지만 소통의 창구로 쓰고 있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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