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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가이' 리키 파울러, 4년 5개월 만에 PGA 투어 우승

입력 2023-07-03 16:32 수정 2023-07-03 16:38

파울러는 어떻게 '오렌지족'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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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러는 어떻게 '오렌지족'이 됐나?

다소곳이 퍼터를 세우고 그립 끝에 두 손을 모은 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짧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눈은 짙은 썬글라스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은 갑자기 밀려 든 진한 감동으로 울컥했다.

2023 PGA 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우승한 리키 파울러. 연장전에서 버디펏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한 후 감격해 하고 있다.

2023 PGA 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우승한 리키 파울러. 연장전에서 버디펏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한 후 감격해 하고 있다.


'오렌지 가이' 리키 파울러가 한국시간으로 3일 새벽에 열린 PGA 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애덤 해드윈(캐나다), 콜린 모리카와(미국)와의 연장 접전 끝에 우승했다. 2019년 2월 피닉스 오픈 이후 4년 5개월 만의 투어 6승 달성이다.


최종 라운드를 20언더파 선두로 출발한 리키는 전반에 버디 3개로 3타를 줄이고, 후반 파 행진을 이어가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성공시키며 24언더파를 기록. 이날 하루에만 무서운 집중력으로 8타를 줄인 모리카와와 5타를 줄인 해드윈과 연장에 돌입했다.

연장전 티샷이 오른쪽으로 향하자 손을 들어 앞쪽에 신호를 보내는 리키 파울러

연장전 티샷이 오른쪽으로 향하자 손을 들어 앞쪽에 신호를 보내는 리키 파울러


433미터 파4 18번홀. 티샷을 날린 리키는 오른쪽 팔은 곧게 뻗어 볼이 우측으로 날아갔음을 알렸다. 반면 모리카와와 해드윈의 볼은 페어웨이에 사뿐히 떨어져 파울러의 우승 가능성은 또 멀어보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 내내 날카로웠던 리키의 아이언은 러프에 있던 볼을 핀 3.5미터에 갖다 붙였고, 정적 속에 친 마지막 버디펏이 홀컵 오른쪽을 타고 빨려들어갔다.


2019년 피닉스 오픈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자, 리키는 골프 팬들 사이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다 올 들어 이번 대회 직전까지 열린 4개 대회에서 세 번 톱10에 진입하며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달 열린 US 오픈에선 공동 5위로 경기를 마치긴 했지만 3라운드까지 1위를 달리며 리키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전 세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오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리키를 응원하러 온 갤러리가 상당했다. 응원하는 함성을 듣지 않아도 이들이 리키의 팬인 건 오렌지빛의 그들의 복장으로 알 수 있다. 오렌지는 리키의 상징색이다.

리키 파울러를 응원하는 갤러리. 리키와 같은 오렌지색 옷을 입고 있다

리키 파울러를 응원하는 갤러리. 리키와 같은 오렌지색 옷을 입고 있다


1988년 12월생인 리키 파울러는 2009년 PGA에 입회했다. 하지만 공식 대회 첫 우승을 미국이 아닌 한국 땅에서 이뤄냈다. 국내 골프 팬들이라면 2011년 천안 우정힐스에서 펼쳐진 제54회 코오롱 한국오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 파울러는 '초신성' 매킬로이와 경쟁을 벌여 6타차로 우승을 거뒀다. 특히 최종라운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렌지색으로 무장한 리키의 복장은 상대적으로 엄숙했던 당시 국내 골프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2011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리키 파울러가 우승 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1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리키 파울러가 우승 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리키 파울러는 2011 코오롱 한국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렌지색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리키 파울러는 2011 코오롱 한국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렌지색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이후 열린 대부분의 대회 마지막 날엔 여지없이 '오렌지족' 리키의 패션이 눈에 띄었고, 푸른 골프장에 핀 백일홍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루틴은 타이거우즈가 대회 최종일 빨간 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는 것과도 비교된다. 빨간 셔츠를 입고 공을 홀에 넣은 뒤 포효하는 타이거우즈의 모습은 골프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장면이다.

2012 웰스 파고 챔피언십 우승

2012 웰스 파고 챔피언십 우승

2015 PGA 투어 도이치방크 챔피언십 우승

2015 PGA 투어 도이치방크 챔피언십 우승

2017 PGA 투어 혼다 클래식 우승

2017 PGA 투어 혼다 클래식 우승

2019 PGA 투어 피닉스 오픈 우승

2019 PGA 투어 피닉스 오픈 우승


그렇다면 리키는 왜 오렌지색 복장을 고집할까?


그 답은 리키가 다녔던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대학들은 대체로 상징 색깔이 있다. 서부 명문인 스탠퍼드대의 '카디널 레드'나 마이클 조던의 모교 UNC의 '캐롤라이나 블루'가 대표적이다. 대학 풋볼 등 거의 모든 스포츠경기에서 선수와 학생들은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뛰고 또 응원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인 UNC의 상징색은 '캐롤라이나 블루'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인 UNC의 상징색은 '캐롤라이나 블루'다

리키가 다녔던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상징색은 오렌지다. 리키는 1학년 때 NCAA(전미대학체육협회)가 주관하는 골프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후로 오렌지 색상의 골프웨어를 즐겨 입게 된다. 리키가 '코브라-푸마 골프'와 계약을 맺은 건 2012년. 당시 리키는 "타이틀리스트와의 클럽 계약 종료 전부터 많은 용품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지만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코브라 푸마 골프다"라고 이야기했다. 코브라-푸마 골프는 골프계 또 한 명의 패셔니스타인 이안 폴터도 후원했는데, '골프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코브라-푸마 골프의 모토에 끼와 실력을 겸비한 이 두 선수의 캐릭터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리키 파울러가 2023 PGA 투어 로켓 모기지 챔피언십에서 우승 후 딸 마야를 안고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리키 파울러가 2023 PGA 투어 로켓 모기지 챔피언십에서 우승 후 딸 마야를 안고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솔직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 든다. 어깨 위에 놓여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올해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고 훌륭한 골프를 했다. 그래서 우승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US오픈에선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지금 딸, 아내와 함께 챔피언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4년 4개월 29일 만에 거둔 PGA 통산 6승. 리키는 두 살이 채 안 된 딸 마야를 안고 방송 인터뷰를 하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슬럼프에 빠진 건 공교롭게도 2019년 10월 육상선수 출신의 앨리슨 스톡과의 결혼과 시기적으로 맞물렸다. 하지만 이번 우승으로 지독한 우승 가뭄을 극복했고 그 영광과 고마움을 가족에게 돌렸다.

리키 파울러가 2023 PGA 투어 로켓 모기지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7번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리키 파울러가 2023 PGA 투어 로켓 모기지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7번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리키 파울러의 다음 목표는 올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라이더컵 출전이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유럽과의 대항전인 라이더컵에 자력으로 출전하기 위해선 라이더컵 스탠딩이 6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리키는 이번 로켓 모기지 클래식 우승으로 현재 12위에 올라 있다. 쉽지 않아 보이는 목표지만,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건 그의 이 한마디 때문이다.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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