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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의 중국은, 왜] #114 국적 세탁 '밀수 반도체'

입력 2023-06-20 06:57 수정 2023-06-20 14:32

뒷문 열린 러 반도체 제재망
日반도체 제3국 우회해 유출

지난 1년간 1400억 규모
중국 통해 70%, 韓도 경유

반도체=최첨단 군사 기술
경제ㆍ안보 차원으로 격상

규제ㆍ제재 장벽 있어도
기술 탈취 공세엔 틈새

법적 제도적 방어벽 높이고
범정부 차원 인력관리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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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 열린 러 반도체 제재망
日반도체 제3국 우회해 유출

지난 1년간 1400억 규모
중국 통해 70%, 韓도 경유

반도체=최첨단 군사 기술
경제ㆍ안보 차원으로 격상

규제ㆍ제재 장벽 있어도
기술 탈취 공세엔 틈새

법적 제도적 방어벽 높이고
범정부 차원 인력관리 시급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제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반도체를 몰래 들여오다 들킨 모양입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19일 보도인데요. 요약하자면 일본제 반도체가 러시아에 불법으로 유입된 사례가 적어도 89건, 15억엔(약 135억원) 규모였다고 합니다.

불법 유입 경로는 70%가 중국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업체를 동원해 일본 반도체를 구매한 뒤 이를 러시아에 되판 거죠. 한국과 튀르키예도 우회 경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서방의 대러 제재로 반도체 수급에 구멍이 생긴 러시아가 밀수망까지 동원한 건데요. 전쟁까지 하는 마당에 군사 무기 개발에 필수재인 반도체 수급이 안 되니 급하긴 했던 거 같은데요.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반도체는 현대 군사무기 기술 개발에 필수불가결한 핵심 부품입니다. 프로세서든 메모리칩이든 반도체 기술과 군사 기술은 정비례해서 발전해왔습니다.

두 부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1980년대였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전의 패러다임이 개막한 것도 불과 30~40년 밖에 안됐다는 얘기입니다. 70년대만 해도 반도체 기술이 구사된 군사 무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 수준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등장한 무기들과 비교 불가였습니다.

미군은 1973년 월남전에서 황급히 철수했습니다. 현격한 전력차와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정글의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8년 뒤 걸프전에선 족탈불급의 군사력으로 현대전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첨단 IT 전쟁으로 말이죠.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전투함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사진=셔터스톡〉

전투함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사진=셔터스톡〉


전쟁 개시의 신호탄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었습니다. CNN을 통해 생중계로 봤던 토마호크의 타격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토마호크의 개발 시점이 1983년인데 이 시점이 묘합니다. 일단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91년 걸프전에 첫선을 보인 토마호크는 마치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운전하는 자동차처럼 지형지물을 우회하면서 타격 목표로 향하기 때문에 방공 레이더망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전 초기 촘촘한 방공망을 뚫고 상대의 전략 목표물을 공습하려면 적잖은 조종사의 피해가 불가피합니다.
 
토마호크 미사일이 지형지물을 피해 항로를 비행하는 개념도. 〈사진=셔터스톡〉

토마호크 미사일이 지형지물을 피해 항로를 비행하는 개념도. 〈사진=셔터스톡〉

조종사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멀리서 고정 목표를 때리기 위해 개발된 미사일이 토마호크입니다. 전투함 또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데 사거리가 1250∼1500㎞에 이른다고 합니다.

1973년 월남의 정글에서 비교 불가의 전력차와 가공할 네이팜탄에도 불구하고 황급히 철수했던 미군이 18년 만에 전쟁 수행의 콘셉트를 뒤집었습니다.

현재전의 패러다임을 바꾼 토마호크는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는 미사일이라는 개념으로 개발됐습니다. 정밀 타격용 무기체계입니다.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간다? 날아가는 동안 수많은 지형지물을 인식해서 실시간으로 발사 전 입력된 목표물과 비교하면서 '맞다, 틀리다'를 판단해 알아서 날아간다는 말인데요.

그 많은 정보를 분석한 뒤 날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판단까지 끝내 목표물을 정확하게 때린다는 것은 고도의 연산과 컴퓨팅 작업이 미사일의 헤드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월남전에선 교량 하나를 폭파하는데도 큰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조종사들이 피격되거나 날아간 미사일이 엉뚱한 곳에 처박히곤 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칩워(Chip War,크리스 밀러 저, 노정태 옮김)』의 한 대목입니다.

"북베트남의 마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165m의 철교는 방공 시설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리 주변에 패인 800여개의 자국을 헤아려봤다. 그게 다 미군 폭격기나 (저성능 유도 시스템) 로켓이 만들어 낸 것으로 하나 같이 과녁을 맞추지 못해 생긴 흔적이었다."
 
〈사진=네이버 캡처〉

〈사진=네이버 캡처〉

아무튼 인도차이나 정글에서 맥을 못 추던 미군의 전쟁 수행력이 토마호크 등 정밀 유도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전환점을 맞은 건데요. 83년이면 73년 월남전 철수 이후 1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짧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반도체의 비약이 있었습니다. 반도체가 해마다 배 이상 성능이 개량되면서 급격한 군사 기술 향상을 끌어냈던 겁니다. 반도체 기반의 강력한 유도 시스템을 탑재한 미사일들이 개발됐고 정밀 타격의 혁신을 구현했습니다.

반도체는 이렇게 최첨단 무기의 개발과 고도화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기술력의 관건인 거죠.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의 밑그림을 그린 미국 국무부의 보니 젠킨스 군비통제ㆍ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지난 4월 반도체와 군사 기술의 확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자율무기체계 개발, 핵폭발 모델링과 미사일 모의실험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필요한 프로그램, 그리고 주민 감시장비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자력갱생에 총력전을 펴고 있습니다. 냉전 당시 소련은 자국 반도체 제조 업체를 키워 보려 대대적인 지원에 첩보전까지 동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이 설계ㆍ소재(일본)ㆍ장비(유럽, 일본)ㆍ제조(한국, 대만)까지 일원화된 공급망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연구시설을 짓기로 했다. AMAT가 7년간 최대 40억 달러(약 5조2720억원)를 투자해 짓는 이 시설에선 AMAT의 첨단 반도체 장비 개발이 이뤄진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오른쪽 첫번째)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있는 세계적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방문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연구시설을 짓기로 했다. AMAT가 7년간 최대 40억 달러(약 5조2720억원)를 투자해 짓는 이 시설에선 AMAT의 첨단 반도체 장비 개발이 이뤄진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오른쪽 첫번째)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있는 세계적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방문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반도체가 이렇게 첨단 군사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반도체의 소재ㆍ장비ㆍ제조 공정이 미·중 전략 경쟁과 기술 갈등으로 지정학적 취약성에 노출돼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발신합니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과 중국의 자력갱생 반도체 생태계와의 패권 경쟁입니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습니다.

기술 확보를 위해 자금과 시장을 동원해 총력전을 펴고 있습니다. 취약한 고리가 대만과 한국입니다. 누적된 교역과 인적ㆍ사업적 네트워크로 침투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용이합니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얼마 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고위 임원을 지낸 제조 공정의 전문가가 중국에 삼성전자의 복제 공장을 세우려다 발각돼 검거된 사건은 충격과 공포를 안겼습니다.

기술 탈취와 산업 스파이는 경제ㆍ안보 사안입니다. 보안 장벽을 높이고 세밀히 감시한다고 기술 유출을 다 막아낼 수 없습니다.

범정부 차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중대한 안보 사안으로 총력전 태세를 정밀하게 구축해야 하는 일이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중국 반도체 진영의 기술 자력갱생 현황은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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