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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킬러문항이 뭐길래?...'사교육 원흉' vs '변별력은 필요'

입력 2023-06-19 17:39 수정 2023-06-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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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하나 푸는 데 30분 걸리더라고요. 뭐 이렇게까지 문제를 꼬나 싶었죠”-수능만점자


“출제자 해설을 듣고 나서야 알겠더라. 이게 풀라고 낸 문제인지 분노가 차올랐다”-전직 교사

수능 킬러문항을 풀어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초고난도 문제'를 뜻하는 킬러문항은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 틀리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한 문제란 평가를 받아왔죠.

실제 이런 킬러문항의 오답률은 90%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능이 오지선다형으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찍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교사들도 잘 못 푸는 '킬러문항'

 
킬러문항으로 꼽히는 2019년 수능 국어 31번 문제

킬러문항으로 꼽히는 2019년 수능 국어 31번 문제


실제 문제를 예를 들어볼까요.

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31번 문제입니다. 많은 학생이 지문을 읽다 포기했다는 전설의 킬러문항 가운데 하나인데요. 만유인력을 다룬 지문인데 다시 한번 살펴봐도 이게 국어문제인지 물리문제인지, 아니면 지구과학문제인지 헷갈립니다.

지문을 잘못 이해한 선택지를 고르라는 문제인데 그 지문이 몇 번을 읽어도 어렵습니다. '밀도가 균질하거나 구 대칭인 구를 구성하는 부피 요소들이 P를 당기는 만유인력들의 총합은, 그 구와 동일한 질량을 갖는 질점이 그 구의 중심 O에서 P를 당기는 만유인력과 같다'라는 마지막 구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개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당시 현직 국어교사들도 이 문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문제는 이게 그냥 포기하거나 찍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인데요. 일반문제도 아니고 배점이 3점이나 되는 중요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로 수능등급이 나뉠 수도 있는거죠. 이런 킬러문항을 풀기위해서는 개념 이해보다는 문제풀이 방법과 정확하게 푸는 연습, 고난도 문항에 대한 반복적인 훈련을 해야 합니다.

결국 학교 수업이 아니라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킬러문항 한 두 문제로 합격이 갈리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사교육에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이 해마다 커졌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교육에 칼 빼든 정부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수능'이라는 기치로 킬러문항에 칼을 빼 들면서 교육계에서는 커다란 혼돈이 예고됩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킬러 문항과 관련해 “수십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며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는데요. 킬러문항을 기반으로 족집게 수능기술로 배를 불려 온 사교육 시장의 '이권 카르텔'을 무너뜨리겠다는 목표입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역시 “공정한 대학수학능력평가(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겠다.” 킬러문항 없애는 것을 공식화했습니다.
 
2022년 사교육비 총액은 역대 최고치인 26조원을 기록했다〈사진=연합뉴스〉

2022년 사교육비 총액은 역대 최고치인 26조원을 기록했다〈사진=연합뉴스〉

 

킬러문항 없애면 사교육 사라질까?


하지만 킬러문항 폐지가 정답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어디까지가 초고난도 문항이고 어디부터 아닌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평가원은 매년 수능을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풀 수 있는 수준으로 냈다고 밝혀온 바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공교육 바깥에서 출제되는 '킬러 문항 금지'를 명령한 만큼 출제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내기 어렵게 되니 앞으로는 당연히 '쉬운 수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거죠.

그럼 쉬운 수능은 수험생들을 구제하는 정답이 될까요? 아쉽게도 그러진 않을 듯합니다. 쉬운수능으로 수능등급과 표준점수가 상향평준화 되면 입시결과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능에 있어서 최소한의 변별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불수능은 시험을 치르는 순간이 지옥이지만, 물수능은 입시가 지옥이 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진학정보를 얻기위한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지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2023 정시 합격전략 설명회'에서 배치 참고표를 보며 입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학부모들이 '2023 정시 합격전략 설명회'에서 배치 참고표를 보며 입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입 경쟁구조 해결이 우선


지난해 우리나라 입시관련 사교육비는 26조원까지 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은 대학입시라는 경쟁 구도 속에서 성공 또는 생존의 문제로 바뀐 지 오랩니다. 또 공교육이 경쟁요소를 줄이려 해도 대학입시 체제 앞에서는 모든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고는 합니다. 공교육 강화를 위한 교육정책이 늘 변죽만 울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킬러문항 폐지는 발상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단순합니다. 입시를 둘러싼 종합적인 대책마련 없이 '킬러문항 폐지'를 외치는 것만으로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없애기는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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