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정용환의 중국은, 왜] #112 영화 세트장처럼?...반도체 '복제공장'

입력 2023-06-13 06:57 수정 2023-06-13 15:13

삼성전자 전 임직원ㆍ협력업체 직원들 기소
공장 설계도면 등 영업비밀 부정취득 등 혐의
삼성반도체 西安공장 인근 1.5km 건설 꾀해

MSㆍ중국 IT 기술협력의 상징 MSRA연구센터
기술 유출 우려에 정상급 인력 캐나다 이동 추진

“시간은 중국편 아니다”인식, 공세적 기술'탈취'
한국ㆍ대만 약한 고리, 기술 보안 장벽 높여야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삼성전자 전 임직원ㆍ협력업체 직원들 기소
공장 설계도면 등 영업비밀 부정취득 등 혐의
삼성반도체 西安공장 인근 1.5km 건설 꾀해

MSㆍ중국 IT 기술협력의 상징 MSRA연구센터
기술 유출 우려에 정상급 인력 캐나다 이동 추진

“시간은 중국편 아니다”인식, 공세적 기술'탈취'
한국ㆍ대만 약한 고리, 기술 보안 장벽 높여야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하루가 멀다하고 암약하던 산업 스파이들 덜미 잡은 뉴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겨냥한 기술은 국가가 핵심전략 차원으로 격상해 보호하고 있는 기술들입니다.

중국에 대해 미국의 첨단 기술 차단이 강화되고 네덜란드ㆍ일본의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중단이 현실화되는 시점과 미묘하게 맞물려 관심을 자극합니다.

12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설계도면을 빼돌려 중국에 '복제 공장'을 지으려던 전 임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다는 뉴스는 자못 충격적입니다. 장비 설계도나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기술 정도가 아니라 아예 통째로 공장 자체를 베끼겠다는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 전경. 〈사진=바이두백과 캡처〉

삼성전자 시안 공장 전경. 〈사진=바이두백과 캡처〉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 공정배치도(반도체 생산의 8대 공정 배치, 면적 등 정보가 담긴 도면), 반도체 공장 설계도면 등이 부정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도체 공장 BED는 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공간에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이라는군요.

기술 빼돌리기에 대한 사고와 접근법이 우주와 바닷속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거대한 세트장을 짓고 거기서 하나부터 열까지 디테일을 되살리는 SF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중국에 복제해 건설하려는 점에서 “개별적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과는 범행의 규모나 피해 정도 면에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스케일과 디테일 양방향에서 중국의 기술 유출은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국내 기업의 의료 로봇 기술 파일 1만 여건을 빼돌린 중국 국적 연구원이 경찰에 적발됐었고 지난 2월엔 삼성전자 기술을 빼돌린 뒤 반도체 세정 장비를 제작해 중국 기업과 연구소에 빼돌린 연구원 등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런 기술 유출 공격은 우리만 받는 게 아닙니다. 대만에서도 기술 유출 관련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고 네덜란드에서도 반도체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ASML에서는 한 중국계 직원이 자신이 관리하는 직원용 자료 데이터베이스에서 극자외선(EUV) 관련 데이터와 기술 정보를 빼낸 사실이 드러나 풍차의 나라에 회오리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인력을 빼 오고 기술을 감아오고 기술 기업을 차명 거래로 사들이는 방법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워왔습니다. 거대 시장을 미끼로 한 기술 거래도 종종 있었습니다.

LED와 5G 등 초고속통신, 가전제품에서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는 노하우를 지난 30년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왔습니다.

진검승부가 남았습니다. 반도체 전선입니다. 반도체는 설계ㆍ장비·소재ㆍ제조 분야별로 강자들이 정립돼 있고 기술 원천을 미국의 기업과 연구소들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180조원이 넘는 자금력을 앞세워 자국 기업의 R&D와 인수ㆍ합병에 쏟아부었지만 기술 장벽 앞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거대 시장을 앞세운 중국의 기술 확보 전략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기술 스파이전 뿐 아니라 반도체 기업 내부에서 틈새를 찾고 있습니다.

서방의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초격차로 무장한 핵심 기술이 아닌 한 사업 합리화 차원에서 얼마든지 중국과의 기술 거래에 응하는 게 비즈니스 요구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반도체 기술이 경제안보 차원에서 감시·감독이 더 강화되고 있어 지난 10여년처럼 시장과 자금력으로 기술을 확보하기는 녹록지 않은 형편입니다.

게다가 반도체ㆍAI 진영에서 기술 유출을 경계해 탈중국하는 흐름도 부각되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 크게 재미 봤던 미국 기업으로 스마트폰의 애플이 있다면 인터넷서비스 분야는 마이크로소프트(MS)였습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중국의 인터넷 통제 정책에 반발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반면 MS는 중국과의 기술 협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에서 90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80% 이상이 엔지니어 또는 연구원입니다.

MSㆍ중국 기술 협력의 심장부는 연구센터 마이크로소프트리서치아시아(MSRA)입니다. 알리바바 최고기술책임자 왕젠과AI기업센스타임의 최고경영자(CEO)인 쉬리(徐立)도 MSRA가 배출한 인재들입니다.

지난 주말 파이낸셜타임스(FT)는 MSRA의 정상급 AI 인력들을 캐나다 밴쿠버로 인사 이동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이 공세적으로 챗GPT와 같은 최신 AI 개발에 뛰어들면서 핵심 인력을 중국에 '탈취'당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띄우는 인사로 보입니다.

특히 미·중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MSRA가 기술 유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중국 당국의 보복 가능성을 무릅쓰고 전격적으로 인력 재배치를 단행한 걸로 보입니다.

중국 인터넷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미국 D램 업체 마이크론은 지난해 발 빠르게 상하이 D램 설계센터를 폐쇄했습니다.

〈사진= AP,연합뉴스〉

〈사진= AP,연합뉴스〉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 쟁탈전의 한 단면입니다.


LED와 초고속통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발톱을 가린 채 시장을 앞장 세우고 서방 기업들과 '밀당'을 해가며, 차곡차곡 기술 이전을 받아 기술 자립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반도체도 이 방정식이면 통한다고 봤을까요. 천문학적 자금력을 투입하면 아무리 반도체가 패권 기술이라 할지언정 그 아성이 무너지지 않을 리 없다고 봤을까요. 문제는 너무 일찍 본색을 드러냈다는 겁니다.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되면서 기술 자립 방정식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공식적인 기술 유입이 막힌 이상 이제 시간은 중국 편이 아닙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기술 탈취 공세가 앞으로 가관일 겁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기술 보안에 초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확보 양상은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