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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손길'로 전하는 길 위의 '희망'…노숙인 "원더풀 데이"

입력 2023-06-12 20:43 수정 2023-06-1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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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밀착카메라는 노숙인들에게 찾아온 가위손에 대한 얘기입니다.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과 수염만큼 웃음이 차오르는 얼굴들을, 이상엽 기자가 담았습니다.

[기자]

서울역 광장 한쪽에 의자가 놓였습니다.

흰 가운을 두른 여성이 앉았습니다.

[전막내 : 몰라. 예쁘게만 해줘.]

베테랑 미용사도 긴장됩니다.

[전막내 : 어? 피나? {가위에 베었어요. 예쁘게 잘라드릴게요.} 손이 아려서 예쁘게 잘라주겠어? 엄청 아리겠구먼.]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전막내 : 매일 얻어먹고 뭐 돌아다니는데 살아서 뭐하겠어. 맨날 울어. 안 우는 날 별로 없어.]

다리를 절뚝거리는 한 남성이 가만히 자리에 앉습니다.

수염을 깎고 활짝 웃더니 고개 숙여 첫 마디를 꺼냅니다.

[심수택 : {시원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동안 혼자였습니다.

[심수택 : 서울시청 지하도에서 7년 살고. 여기 서울역에서 8년 살았어. 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나 혼자일 뿐이야.]

모두 서울역에서 먹고 자는 노숙인입니다.

지팡이를 든 남성도 찾아왔습니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셌고 콧수염도 길게 자랐습니다.

해가 질 무렵 오늘의 마지막 손님입니다.

머리카락도 자르고 콧수염도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이필용 : 내가 오늘 모델이 됐구나.]

남성은 영어 강사였습니다.

하지만 오래전 외국에서 가족과 헤어진 뒤 서울역에 왔습니다.

[이필용 : {자기소개 한번 해보실까요?} 내 소개를? 나는 36년 9월 5일생. 여주 이씨. 이필용. 태어난 곳은 수원.]

오늘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필용 : 나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여기에 앉게 해줬는지 모르겠지만… {영어로 표현하신다면 오늘 하루가 어떠셨나요?} 원더풀 데이.]

이렇게 고단한 삶에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허진석/미용사 : 제가 미국에서 버스킹 커트를 하다가… 베니스 비치였는데 노숙인분들이 오시더라고요. 사람이 많은 이 장소에서도 어떻게 보면 소외계층들은 정말로 소외받는 구역에 있거든요.]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발톱을 다듬으면서 이해도 하게 됩니다.

[조현진/네일아티스트 :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아요. 이런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격차는 꾸준히 벌어졌습니다.

한번 무너지면 더 힘든 곳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희망이라도 볼 수 있는 노력들이 계속돼야 합니다.

밀착카메라 이상엽입니다.

(작가 : 유승민 / VJ : 김대현·김원섭 / 영상그래픽 : 이송의 / 인턴기자 : 김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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