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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의 중국은, 왜] #99. '21세기 베를린', 대만…투키디데스는 틀렸나

입력 2023-05-01 06:57 수정 2023-05-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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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공모함 산동호 갑판에 계류 중인 J-15D 전투기.[사진=트위터 캡처]

중국 항공모함 산동호 갑판에 계류 중인 J-15D 전투기.[사진=트위터 캡처]

20세기 동서냉전의 한복판이 베를린이었다면 21세기 베를린은 어디일까요.

미ㆍ중 갈등의 핫스팟입니다. 그 옛날 이 섬에 기착했던 포르투갈인들이 아름다운 섬이라고 이름 붙였던 포르모사, 대만입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대통령이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촉발됐는데요.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적 해결 지지' 같은 구경꾼적 관점이 아니라 어떤 행위에 대한 찬반을 드러내는 이해 상관자적 시각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발언이 나오자 야권이 반발하고 중국 외교부의 '전랑'들이 발끈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가나가와현 남부 사가미만 일대에서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 주관 국제 관함식에서 자위대 소속 호위함 이즈모가 선두에서 운항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일본 가나가와현 남부 사가미만 일대에서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 주관 국제 관함식에서 자위대 소속 호위함 이즈모가 선두에서 운항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대만해협이 미ㆍ중 갈등과 충돌의 최전선이 된 느낌입니다. 그간 첨예한 갈등의 현장이었던 남중국해나 신장위구르 지역, 홍콩을 제치고 그나마 현상이 잘 유지되던 대만해협이 불길한 미래의 열점으로 부상한 겁니다.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까요.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미국 주류의 시각입니다. 미국은 왜 이렇게 생각할까요.

신간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원제: Danger Zone, 위험 구간)』는 관성화된 이 질문에 도발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경제 성장이 둔화, 침체된 중국이 마지막 기회의 창이 닫힐지 모른다는 초조함 때문에 무모한 팽창 전략을 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진=네이버 제공]

[사진=네이버 제공]

이른바 '정점에 이른 강대국의 함정'입니다. 간간이 외신을 통해 회자되던 이 개념을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교수와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풍성하게 근거를 덧붙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두 저자는 미국 국방부를 비롯해 각종 국가안보 기관에 자문하고 있는 현역 외교ㆍ안보 분야 핵심 전략가입니다.(※ 여담이지만『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는 언론인 출신 역자가 번역해서 그런지 읽는 맛도 있고 대중적 표현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해 술술 읽히는 게 미덕입니다.)

지난 8일 중국 동부전구 소속 공군기가 이날 대만 주변에서 돌입한 '날카로운 칼날(聯合利劍)연합 훈련' 중 공중급유를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 중국 동부전구 소속 공군기가 이날 대만 주변에서 돌입한 '날카로운 칼날(聯合利劍)연합 훈련' 중 공중급유를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Danger Zone』은 투키디데스 함정의 결론에 도전합니다. 일단 투키디데스 함정부터 잠시 얘기하고 가겠습니다.


미ㆍ중 충돌 가능성을 언급할 때 '투키디데스의 함정' 개념이 종종 인용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언급하면서 '중국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도전국이 부상하면 기존 패권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하곤 한다는 패턴을 개념화한 건데요. 신흥 패권국이 기성 패권국에 도전할 때 전쟁의 위험이 커진다는 얘긴데요. 강대국간의 충돌 원인을 해부한 설득력 있는 프레임입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저서『예정된 전쟁』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한 사례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이전한 역사를 조명했습니다.

이동식 발사차량에서 지대함 '하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 Naval News 캡처]

이동식 발사차량에서 지대함 '하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 Naval News 캡처]

결론은 패권 이행 과정에서 폭력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건데요. 시진핑이 매료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대가 알아서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나, 삐뚫어질테다' 엄포를 놓을 수 있으니 얼마나 '신박한 착상'으로 봤겠습니까.

즉, 충돌을 회피하도록 완충 지대를 만들고 상황을 관리하면 미·중간에 잘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속내는 시간을 벌어 군사적ㆍ기술적 역량을 더 강화하겠다는 뜻입니다.

지난 8일 날카로운 칼날 연합 훈련에서 인민해방군 전투기가 공중급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연합뉴스]

지난 8일 날카로운 칼날 연합 훈련에서 인민해방군 전투기가 공중급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연합뉴스]

이에 대해 베클리와 브랜즈 교수는 지금은 상황을 관리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저자들이 보는 중국이 미국과 위험한 경쟁을 불사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①영향권을 확대하려는 지정학적 열망, ②굴욕을 딛고 천하의 중심으로서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역사적 서사, ③자유주의적 국제규범이 반자유주의적인 중국 국내 관행을 위협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에 맞서게 되는 이념적 이유에서 답을 찾습니다. 저자들은 중국이 현상변경 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사태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실기할 수 있고 오히려 전쟁이 4~5년 앞으로 임박했다는 절박감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점에 이른 강대국의 함정' 개념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중국은 국력이 피크를 쳤기 때문에 앞으로 기회가 영영 없을 것이라 속단할 수 있다는 겁니다.

2014년 실사격 훈련 중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이지스 순양함 USS 샤일로(Shiloh)함에서 하푼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 미 해군 제공]

2014년 실사격 훈련 중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이지스 순양함 USS 샤일로(Shiloh)함에서 하푼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 미 해군 제공]

”고도성장이라는 기적을 만든 5가지 요인이 있다. 중국에 호의적인 세계, 개혁ㆍ개방정책과 세계화의 절묘한 조화, 효율을 중시했던 세련된 전제정치, 생산성에 최적화된 인구구조, 경제가 이륙할 때 필요한 기초 자원이었다. 이제는 이 5가지 조건이 모두 악화됐다. “


경기침체와 미국 주도의 지정학적 견제ㆍ포위ㆍ봉쇄라는 쌍둥이 족쇄 앞에서 시진핑에게 주어진 시간과 선택지는 줄어들 일만 남았다는 겁니다.
산동함에서 이륙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전투기. [사진= AFP,연합뉴스]

산동함에서 이륙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전투기. [사진= AFP,연합뉴스]


실제로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면서 중국을 전략적 틀 안에 묶어 놓기 위해 기술ㆍ경제안보 차원의 연합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나토나 2차세계대전 중 있었던 소련까지 아우르는 '대동맹'처럼 반중국 단일 연합체가 출현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문제는 서구 세계에서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반중국 결속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이러한 전략적 역풍을 중국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입니다.

역사에서 장기간 경제 상승 끝에 급격한 하락을 경험한 나라가 지정학적 포위를 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면 패턴이 있는데 중국이 지금 이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입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서 연합 훈련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서 연합 훈련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였고, 일본은 진주만 기습에 앞서 '어떤 경우엔 눈을 감고 뛰어내릴 정도로 용기를 내야 한다'며 절박감을 드러냈습니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중국도 기회의 창이 닫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절박하게 군사적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베이징의 옥외 전광판에서 연합훈련 뉴스를 방송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베이징의 옥외 전광판에서 연합훈련 뉴스를 방송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물론 중국이 과연 정점을 친 게 맞느냐, 맞다 하더라도 정점을 치면 1ㆍ2차 세계대전 때처럼 바로 하강 곡선을 타고 미끄러지는 걸 중국에게 일반화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은 남습니다.

이런 의문에도 여전히 어떻게 전개될 지 몰라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는 것은 그간 '중국은, 왜' 칼럼에서 반복적으로 짚었던 대만해협과 한반도 문제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본질적 특성 때문입니다.

대만해협의 파고가 높아지면 북ㆍ중 밀착이 강화됩니다. 연쇄 작용으로 한ㆍ미ㆍ일의 안보 협력도 주목받게 됩니다. 이렇게 대만 문제는 한반도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입니다.

두 사안에는 상충하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직조되어 있습니다. 해협이든 반도든 한 쪽에서 균형이 무너지면 다른 한 쪽도 파상적인 영향권으로 끌려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지난 10일 캐나다 의회 국방위원회 존 맥케이 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대만 차이잉원 총통을 예방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0일 캐나다 의회 국방위원회 존 맥케이 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대만 차이잉원 총통을 예방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그런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때 대만 지도부가 보여준 조건 반사식 반응일 겁니다.


사건이 터지자 남태평양을 순방하던 대만 총통도 밤 비행기로 급거 귀국합니다. 중대한 안보 위험 상황으로 인식한 겁니다. 중국이라는 플레이어로 인해 한반도와 대만의 안보는 이렇게 맞물려 돌아갑니다.

29일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국제 심포지엄 참석 차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했다. [사진= AP, 연합뉴스]

29일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국제 심포지엄 참석 차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했다. [사진= AP, 연합뉴스]

미ㆍ중 패권 갈등에 한반도의 남북한이 연루돼 있는 현실의 엄중함과 우리의 활로 찾기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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