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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디커플링의 원심력...'세계의 공장'도 탈중국

입력 2023-04-18 06:57 수정 2023-04-18 11:54

미ㆍ중 충돌 2라운드 산업 재편 가속화
소재ㆍ부품 원산지 까다로운 규정 적용
'집토끼' 中공장도 인니ㆍ동남아로 이전
양극재 재료 中전구체 공장도 새만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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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패션쇼에 출품된 작품들. 중국 섬유산업계는 고객사들의 요청으로 탈중국 압박을 받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패션쇼에 출품된 작품들. 중국 섬유산업계는 고객사들의 요청으로 탈중국 압박을 받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공급망 디커플링 시대입니다.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은 썰물을 타고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습니다. 디커플링이라는 거대한 흐름 밖에 있다간 비즈니스를 날려 먹을 수 있다는 리스크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국 본토 기업까지 이 썰물 대열에 올라타는 기류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칼럼에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겠습니다.

벌써 17년도 더 된 얘기인데요. 2006년 12월 장쑤성 롄윈강의 산업 단지 조성 사업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칭다오 공항에서 내려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을 이동했습니다. 장쑤성은 광동성과 전체 성시자치구 가운데 지역 GDP 수위를 다투던 명실상부한 산업 1번지입니다.

당시 장쑤성 정치 1인자인 성 서기는 성장률 등 실적이 잘 받쳐줘 늘 승진이 보장되던 자리였습니다. 이 때문에 장쑤성 서기는 콧대도 높고 미래도 보장된 그야말로 잘 나가는 유력자 후보군 또는 최고 권부 라인 인사들로 채워지곤 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간담회 형식의 프리젠테이션 자리에서 당시 장쑤성 서기는 염전을 메워 산업공단을 만드는 이유와 한국 기업이 올 경우 혜택을 설명했습니다. 그때 나눴던 대화입니다.

“염전은 국유지이기 때문에 개발 비용(토지 보상비)이 안 든다. 주변 산을 깎아 염전을 매립하고 있으니 곧 광활한 부지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한국에서 가까운 산동성에도 산업단지가 수두룩한데 교통이 불편한 여기까지 투자 수요가 있을지 미심쩍다.”

“아직 개발 초기라 값싼 인력이 넘쳐 난다. 산동성 칭다오, 옌타이, 장쑤성 쑤저우 등 기존 개발 도시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롄윈강을 주목할 것이다.“


“왜 그런가.”

“개발이 집중됐던 곳은 규제의 벽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물류망과 값 싼 부지, 풍부한 공업용수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장쑤성 서기가 개발에 성공한 쑤저우의 부지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추가 외자 유치를 위해 같은 성의 새로운 개발지를 찍어 세일즈하는 자리였던 겁니다.

[그래픽=두산백과 캡처][그래픽=두산백과 캡처]
롄윈강은 진시황 때에도 유명했던 염전 지대였습니다. 국가 재정의 중요한 축이었던 염전 산업을 독려하고 점검하기 위해 진시황이 세 차례나 이 곳을 찾았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염전이 컸는지 짐작이 됩니다.

염전 매립 작업이 끝나면 확보가 예상되는 부지 면적은 950만평. 여의도의 4배 면적이라고 합니다. 개발할 만한 땅은 도처에 있었고 값싼 부지와 저렴한 인건비는 중국의 경쟁력이었습니다.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롄윈강에서 출발하는 신아시아유럽철도의 시작점을 알리는 기념비. 롄윈강 부두에 하역된 화물은 이 철도를 따라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까지 운반된다. [사진= 중앙포토]롄윈강에서 출발하는 신아시아유럽철도의 시작점을 알리는 기념비. 롄윈강 부두에 하역된 화물은 이 철도를 따라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까지 운반된다. [사진= 중앙포토]
행정가인 성장이 아닌 권력 서열을 따지고 권위에 밝은 정무직 성 서기가 유연한 자세로 휴일 현장에 나와 세일즈에 열을 내던 모습이 기억에 선합니다.


외국 자본의 투자 유치에 성(省)간 경쟁이 치열하던 2000년대의 전형적인 중국 산업단지의 풍경입니다. 이런 경쟁의 축적물이 '세계의 공장' 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주축을 이뤘던 수출 공룡 중국이었습니다.

거의 20년 전 얘기를 길게 쓴 이유는 '롄윈강의 염전벽해' 못지 않게 격세지감을 절감하게 되는 뉴스들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외자 유치, 세계의 공장 시대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이젠 공급망 디커플링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AP, 연합뉴스][사진= AP, 연합뉴스]
17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함께 보겠습니다. 미·중 지정학적 갈등이 던진 유탄에 제조 산업 부문이 커다란 지각변동의 와중에 있습니다. 외자 기업은 진작 탈중국 흐름에 올라탔고 요즘은 중국 본토 기업까지 탈중국 아니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지경에 몰리는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가장 큰 온수기·보일러 업체 중 하나인 광둥 반워드 뉴 일렉트릭은 미국 고객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이나 태국 등에 해외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루우콩 회장은 FT에 “미국과 유럽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공급망 변화에 고심하고 있다”면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는 올랐는데 원가는 낮출 수 없어 결국 해외 이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군요.

중국의 섬유업체인 루타이섬유 등도 동남아시아에 공장 신설을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홍콩에서 지난주 열린 글로벌 소비재전자 전시회에서는 일부 중국업체들이 자사 부스 입구에 베트남이나 다른 나라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고 FT는 전했습니다.

블룸버그도 중국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탈중국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 등이 중국 업체와 냉각 부품, 브레이크 시스템 등 각종 부품 생산 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업체에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역외 국가에 공장을 지으라고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말이 제안이지 최후 통첩이나 다름 없습니다.

새만금 개발 조감도. [사진=새만금개발청]새만금 개발 조감도. [사진=새만금개발청]
장쑤성에 기반을 둔 한 전기자동차 충전 부품 제조업체의 한 매니저는 “최근 본사를 방문한 유럽 고객사들로부터 해외공장 설립 계획에 대한 질문을 첫번째로 받았다”면서 “공장을 이전하거나 거래를 접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중국 배터리 원료(전구체) 기업도 있습니다. LG화학은 17일 중국 화유코발트와 전북 군산 새만금에 1조2000억원 규모의 전구체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합니다.

중국 기업이 한국에 합작 공장을 세우는 이유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타격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입니다. IRA 세부 규정에 따르면 중국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광물을 채굴하더라도 FTA 체결국에서 가공해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산 배터리 업체 CATL의 제품이 탑재된 전기차. [자료=CATL] 중국산 배터리 업체 CATL의 제품이 탑재된 전기차. [자료=CATL]
전구체 역시 광물로 취급돼 향후 한국에서 생산·가공하면 IRA에 따른 보조금 수혜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인 거죠.

외자기업은 이미 가속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애플은 베트남이나 인도로 생산기지를 점차 옮기고 있습니다. 애플은 폭스콘에 이어 페가트론을 인도에서 아이폰 14를 생산하는 협력업체로 선정했습니다. 아이폰 제품의 7% 정도를 인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라북도 군산시 새만금국가산업단지. [사진= LG화학]전라북도 군산시 새만금국가산업단지. [사진= LG화학]
코로나 때 전면봉쇄에 따른 공장 셧다운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동남아나 인도가 중국에 비해 인건비 경쟁력은 있지만 중국만큼 공급망이 취약해 원가 부담을 가중 시킵니다. 셈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중국 대열에 올라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미·중 대결 국면에서 중국 사업 리스크가 표면화된 이상 서둘러 분산시키는 게 안전하겠다는 판단이 섰다는 뜻일 겁니다.

'세계의 공장' 차이나 시대가 황혼을 물들이며 저물어 갑니다. 디커플링의 시대는 어떤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지 지켜보면서 다음 얘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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