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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이건 너를 기억하는 방법이야"

입력 2023-04-09 11:39 수정 2023-04-0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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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보도 캡쳐 〈사진=JTBC〉JTBC 보도 캡쳐 〈사진=JTBC〉


“춤은 자신감이 절반이거든. 내가 최고시다.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다!”

교복을 입은 50대 여성들이 무대에 섰습니다. 랩을 하고 춤을 추고, 관객을 향해 손을 내밉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엄마들입니다. 살림하거나 자영업을 하던 평범한 엄마들이 피해자에서 투사로, 투사에서 7년 차 연극배우로 변모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일곱명의 엄마들로 꾸려진 4.16 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3년을 기록한 영화 [장기자랑]이 지난 5일 개봉했습니다.

“엄마가 대신 그 무대에 서서 한번 놀아볼게.”

2015년 만들어진 '노란 리본'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200회 넘는 공연을 해왔습니다. 연극 '장기자랑'은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교 2학년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엄마들이 직접 단원고 교복을 입고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영화 '장기자랑(2023)'의 한 장면. 〈제공=영화사 진진〉영화 '장기자랑(2023)'의 한 장면. 〈제공=영화사 진진〉

이런 과정을 엮은 영화 [장기자랑]은 익숙한 피해자 서사를 비껴갑니다. 엄마들은 울부짖고, 투쟁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재능 있고 사랑스럽고, 때로는 강인한 7인 7색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밤늦도록 걸그룹 영상을 보면서 춤 연습을 하고, 배역이 불공정하다며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지난 1일, 안산 보노마루 소극장 백스테이지에서 엄마들을 만났습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기억하는 엄마들을 더는 울지 말고 봐 달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관련기사 : [D:이슈] "웃으며 봐줘요"…세월호 엄마들의 연극 도전기 | JTBC 뉴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21200&pDate=20230405

JTBC 보도 캡쳐 〈사진=JTBC〉JTBC 보도 캡쳐 〈사진=JTBC〉

■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Q : '세월호 엄마들이 연극을 하고 싶어한다'는 얘기에 극단이 시작됐다고.

김태현(극단 '노란리본' 연출) : 2015년이었다. 어머님들이 처음부터 연극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금 이야기가 와전됐다(웃음). 그래도 이왕 만났으니 연극이 가진 어떤 재미남을 통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코미디 대본 위주로 “한번 읽어나 봅시다”라고 제안했다. 어머니들이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Q : 연극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이미경(영만 엄마) : 어느 날 갑자기 참사를 겪고 상상할 수 없는 삶이 펼쳐졌다. 연극을 하면서 삶이 많이 바뀌었다. 모든 트라우마가 완전히 치유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슬픔을 덜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극을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장기자랑(2023)'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진진〉영화 '장기자랑(2023)'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진진〉

박혜영(윤민 엄마) : 연극을 하며 의식적으로 밝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순간 제 얼굴에 억울하고 화난 감정이 굳어져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내 마음이 어떨지언정 겉으로는 우중충하고 슬픈 사람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김명임(수인 엄마) : 살림하던 엄마들이 처음으로 연극을 하니 본인만 진지하고 옆에서 보면 그게 다 개그고 코미디다. 매 순간, 하는 사람 빼고는 다 웃었던 것 같다.

Q : '피해자다움'을 벗어난다는 의미는?

이미경(영만 엄마) :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는 늘 슬퍼야 하고 울어야 하는지 스스로 되물었다. 유가족다움을 강요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예전에도 평범했고, 지금도 평범한 사람인데 참사로 인해 원치 않는 특별한 사람이 된 거다. 이 영화는 그런 고정관념을 벗어나 우리가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사랑하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순덕(애진 엄마) :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도 일반 사람과 똑같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다. 그냥 아이를 잃은 보통 부모로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가해자는 잘살고 있는데 피해자는 왜 아파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

박유신(예진 엄마) : 아이들은 과연 자신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우울해 하거나 슬퍼하는 것을 바랄까. 더군다나 엄마가 그러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길게 가려면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우는 건 예진이가 우는 것이고, 내가 웃는 게 예진이가 웃는 것이다. 그래서 더 즐겁게 웃으려고 노력을 한다.

 JTBC 보도 캡쳐. 〈사진=JTBC〉 JTBC 보도 캡쳐. 〈사진=JTBC〉

“이건 너를 기억하는 방법이야”

Q :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은?

박혜영(윤민 엄마) :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다. 저는 지금도 윤민이와 함께 사는 것 같다. 어린 모습의 윤민이가 매일 꿈에 나온다. 윤민이는 제 마음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김도현(동수 엄마) : 연극을 하다가도 울컥한다. 엄마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귀엽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 때가 있다. 그 모습이 아이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놀았겠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난다.

Q : 영화 촬영에 응한 이유는?

박혜영(윤민 엄마) :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 활동 방법을 바꾸고, 기억하는 방식을 새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연극이 그런 것이다.

김명임(수인 엄마) : 연극은 아이들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더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장기자랑(2023)'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영화 '장기자랑(2023)'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

Q : 관객에게 바라는 점?

이미경(영만 엄마) :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세월호에 대한 아픈 기억보다는 따뜻하고 예쁜 배우들을 만난다고 생각하고 찾아달라.

김순덕(애진 엄마)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이고 참사다.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주변의 엄마, 아빠를 보듯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접해달라. 연극에도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영화 '장기자랑(2023)'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진진〉영화 '장기자랑(2023)'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진진〉

Q : 앞으로의 바람은?

최지영(순범 엄마) : 이태원 참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어차피 우리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 아이들을 통해 세상이 좀 더 안전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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